준주
조양희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제 강점기와 태평양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청년들이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순응하며 삶의 변화를 맞고 삶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나라와 이념을 떠난 사랑과 휴머니즘을 보여 주며 청년들의 꿈과 사랑, 좌절과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준주의 일대기를 통해 잘 드러났다.

 

대구 만석꾼의 손녀 장준주는 보통학교 담임이었던 일본인 오가와 선생의 도움으로 

열아홉 살에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 선생에게 붙어 유학 간다고 쑤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준주는 친일파란 말을 들을까 무서워 좋은 기회를 접고 방에만

가만히 있으면 결국 도쿄의 방직공장밖에 못 간다며, 여자도 배울 수 있는 신시대의 도래에

감사하며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자신의 엄마처럼 아기 낳고 죽는 임산부들을 살려내겠노라

작심하는 준주의 모습이 참으로 다부졌다. 자기를 길러준 젖엄마 유모와 헤어져

미지의 세상인 일본에서 의학 공부를 하러 홀로 현해탄을 건너는 준주의 당찬 모습에

희망이 느껴졌다. 유모의 외아들 현서 오빠와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외삼촌에게 입적해

함께 자라 친오빠와 같은 사촌 진석 오빠, 아우도리 사치라는 일본 가수가 된 절친 행자를 

만날 수 있는 일본에서 어떤 일들이 준주에게 펼쳐질지 기대가 되면서도 

그 시절 여자 혼자 괜찮을까 조마조마했다. 진석의 부친은 수십만 편의 전답을 

일본 정부에게 내어 주면서 그 재산 중 자녀의 교육비는 정부에서 따로 주기로 했다. 

그 학비와 생활비가 노동운동과 반전 운동 조직으로 넘어갈 것을 염려하여 

모리 순사가 진석을 처치하기 위해 준주의 유학 길을 뒤따르니 더욱 불안해졌다.

 

현서 오빠가 알려준 미나도에서 우동을 먹으며 도오루와 샤오륜이라는 두 청년들과

스쳐지나갈 때 이 청춘들은 어떤 인연으로 얽히게 될지 궁금해졌다.

얼굴도 모르는 진석을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온 중국인 청년 샤오륜 역시

조국의 자유와 독립과 관계가 깊은 듯 하고, 중국을 비롯해 도쿄에서 활동하는

많은 학생들이 의심받고 유학생들을 통한 만주 투사들에게 전달되는 독립자금을

막기 위해 일본 앞잡이들이 강제 입대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시절이라 

역사가 스포라고 나라가 다 다른 청년들이 우정과 사랑, 배신과 믿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마주칠지 괜스레 더욱 더 긴장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만석꾼의 손녀이지만 부족한 유학비 마련을 위해 미츠코시 백화점 화장품 모델 일을 하면서 

도쿄 T대학 의학부의 유일한 조선인 여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는 준주의 모습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준주를 사랑하게 된 T대학 건축학부 도오루와

도오루에게 집착하는 야요이를 보며, 준주와 도오루의 사랑을 훼방놓기 위해

야요이가 어떤 악랄한 일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어떤 사람들이 희생될지 조마조마했다.

야요이와 모리순사로 인해 강제 입대당한 진석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의 부인의 출산을 위해 도와주는 준주를 보며 이렇게 또 세상은 이어지고 변하겠구나

희망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실제 역사 속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신한 사람들이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독립군들과 후손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은 경우가 많아 불안하기도 했다.

준주가 한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며 이토록 소중한 생명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것을

봐야 할 부모들의 마음을 가늠해보는 대목은 가슴이 아팠다.

 

 

왕족과 가문에 목을 멘 어머니와 군대가 우선이 아버지 사이에서 외롭게 자란 야오이가

어리광을 못 버리는 것이 자기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했던 아키타의 화재 때 받은 충격때문이기도

할 것이라는 죄책감에 도오루는 야오이에게 모질게 대할 수가 없었다.

아키타 여관의 화재로 도오루의 어머니, 어머니와 쌍둥이 동생인 료오코 이모는 딸 하루를 잃었고

그 료오코 이모가 오가와 선생의 부인이고, 죽은 이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절의 주지스님 황호랑이

준주의 친부라니 세상은 참 넓고도 좁았다. 촘촘하게 얽혀 있는 인물들을 보며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어 전세계인들이 일제 강점기 때의 통탄할 사건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딸을 끔찍하게 여기고 군대에 충성하는 야요이의 아버지 혼조 장군이

진석을 살려달란 도오루의 부탁을 들어줬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댓가로 도오루가 종군 기자로

전쟁터를 가게 되었지만,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던 일본인들이 더 많았기에 나중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진석이 하와이에서 계속 독립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은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그치만 그 처참한 전쟁 속에서 나쁜 일본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도오루 같은 청년들도

있었으니까 다행이다 싶었다.


'전쟁에서의 죽음은 국가를 위한 고귀한 의무니, 전사니 말들 하지만 돌아서면 누구의 기억에서조차

오래 남지 못할 젊은 날의 슬픈 희생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오로지 그가 살아서 돌아오길 절실하게

바랄 뿐이었다.'는 준주의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일본 패잔병을 고발하는 첩자가 들끓는 상황에서도 샤오륜과 크리스가 부상당한 도오루를

피신시키고 도오루를 살리기 위해 하와이에서 홍콩까지 온 진석까지 합류하게 되니

이렇게 해피엔딩이 실현될까 싶은 것이 소설에서라도 실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게 되었다. 그치만 일본 패잔병을 고발하는 첩자들 역시

일본인들 손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노 때문임을 잘 알기에 전쟁의 생생한 원과 한이 박힌

깊은 상처들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준주와 일생을 함께 하고 싶지만 둘이 사랑의 도피를 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전쟁이 아니라 미래에 다시 만나 더 소중한 시간을 살기 위해 헤어짐을 선택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의미가 깊었다. 도오루가 살아서 귀행하는 것도 과분한 행운이고,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숭고한 목숨을 바친 전우들에게 빚을 지는 것이기도 하고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종군 기자로서 알려야 할 의무도 있으니까 말이다.


독립한 조선에 병원 시설을 다시 세워 준주는 소망을 이루게 되었을지,

일본으로 돌아간 도오루는 무사했을지 그 뒷이야기도 응원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숭고한 청춘들의 삶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