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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 - 그림의 길을 따라가는 마음의 길
장요세파 지음, 김호석 그림 / 파람북 / 2022년 11월
평점 :

장요세파의 수녀님의 김호석 화백의 그림에 대한 세 번째 그림 에세이라고 하는데
앞 선 두 그림 에세이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수녀님의 <그림이 기도가 될 때>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에세이를 통해 김호석 화백의 수묵화를 알게 되어 너무 좋았다.
'엄마 손' 작품은 수녀님의 느낌처럼 가슴이 정말 먹먹해지는 그림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 거칠어지고 굵어진 엄마의 손이 오버랩되면서
울 엄마 손도 저렇게 쪼글쪼글해지겠구나 싶은 게 가슴이 찡해졌다.
모든 사랑을 퍼붓고 그 어떤 것도 아낌없이 자식에게 쏟아부은 어머니의 투박한 손에서
온전히 자신을 소진해 사라져가는 그 모습이 정말이지...
속은 다 비우고 형체만 남은 모습, 그 알맹이가 자식일 것이라는 수녀님의 말씀에 숙연해졌다.
너무나 태연하게 우물 안에 앉아있는 개구리를 위에서 그린듯한 '헛디딤, 균열의 무의식' 작품에서
편안하게 틀 속에 몸을 넣고 있을수록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아래로 무너져감을 보는
수녀님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할 수는 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삶이 새로워지고 생명에 윤기가 흐르게 하려면 우물을 깨야만 한다.
실제 그릇은 깨지면 못 쓰지만 삶의 그릇은 터지면서 넓어진다며, 부서짐과 깨짐의 가치를
깨닫는 일 앞에 자신을 세워야 한다는 수녀님의 조언이 따끔하게 느껴졌다.
손등에 화상을 입으면 부드러운 것으로 스쳐도 비명을 지르지만,
상처가 없으면 못으로 긁어도 조금 아플 뿐이라며 외적 상황이 자신을 건드린다면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니 억울할 것이 없다는 수녀님의 작은 통찰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픈 건 외적 상황이 아니라 나 때문이구나,
내 탓이오, 내 탓이오~를 되새기게 되었다.

몸을 뒤틀고 있는 전복의 모습에서 모든 고통이 진주를 빚어내지는 않는다는 수녀님의 말씀에
한순간 멍해졌다. 전복 속껍질의 오묘한 색깔 속에 바다빛인 듯 어떤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며,
천연 흑진주의 빛깔이 왜 그리 슬픈지 바닷물이 한 방울 흘러내릴 것 같았다며,
아픔을 굴리고 굴린 슬픔 섞인 아름다움 속에서 세월호 아이들과 그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린
수녀님의 이야기가 전복을 볼 때마다 떠오를 것 같다.
사랑으로 가득한 고통 속에 오색영롱한 진주알, 우리를, 우리 세대를 고귀하게 하는 진주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