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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자들
최성환 지음 / 책들의정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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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국 자본시장에서 벌어졌던 주가조작, 정보 유출, 권력과 시장의 유착 사건들이 서사의 뼈대를 이룬다. 특히 최근 정권 시기에 드러났던 각종 주가 비리 논란과 시장 왜곡 사례들이 그대로 투영돼 있어, 독자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현실의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았던 진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재배열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고발문이나 르포처럼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 사건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인물과 관계를 약간 비틀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만든다. 그 결과 독자는 특정 사건의 진위를 따지는 대신, 왜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정보는 어떻게 선택적으로 흘러가고, 책임은 어떻게 분산되며, 결국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 결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서사 속에서 선명해진다.

9년간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저자의 이력은 이 소설을 현실 쪽으로 단단히 끌어당긴다. 시장의 언어, 공시의 맹점, 리포트 뒤에 숨은 이해관계가 과장 없이 묘사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에 의해 읽힌다. “어디선가 본 장면”이라는 느낌이 반복되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최도진이 제시하는 코스피 5,000 시대는 이 소설의 탈출구다. 앞에서 보여준 비리와 왜곡의 축적 위에, 그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시장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할 것인가. 그의 제안은 낙관도 선동도 아니다. 제도 개편, 산업 구조, 신뢰 회복이라는 조건이 갖춰질 때만 가능한 미래로서 제시된다.

이 책은 현실을 닮았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끝까지 읽히는 소설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시된 코스피 5,000과 새로운 10년에 대한 비전은, 지금까지 반복돼온 현실을 멈출 수 있다면 충분히 도달 가능한 미래처럼 보인다. 이 허구가 언젠가 더 이상 허구가 아니게 되기를 바라게 만드는 점,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강한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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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자들
최성환 지음 / 책들의정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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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국 자본시장에서 벌어졌던 주가조작, 정보 유출, 권력과 시장의 유착 사건들이 서사의 뼈대를 이룬다. 특히 최근 정권 시기에 드러났던 각종 주가 비리 논란과 시장 왜곡 사례들이 그대로 투영돼 있고, 미래에 비전까지 그린 탄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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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디렉션 - 사진작가 이준희 직업 에세이
이준희 지음 / 스미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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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에세이를 읽으며.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빛과 디렉션>은 사진 기술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문장의 섬세함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산문집이라고 말하기에도, 이 책의 문체는 비교적 직선적이다. 이준희의 글은 자신의 태도와 방향을 설명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그만큼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기 규정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에게 양가적인 인상을 남긴다. 작가의 입장이 분명하다는 점에서는 신뢰를 주지만, 아직 이 인물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독자적 경험이 충분히 펼쳐지기 전에 확인이 먼저 제시되면서, 글은 때때로 설명에 가까워지고, 독자는 그 설명을 따라가기 위해 잠시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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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지점을 단순한 결함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은 애초에 다듬어진 결과물을 보여주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방향을 말하기 위해 어떤 언어를 선택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에 가깝기 때문이다. 초반부의 직설적인 문장들은 아직 정제되지 않은 상태의 태도처럼 읽히며, 이 특별함은 책 전반에 걸쳐 하나의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이준희가 스스로를 '소셜 포토그래퍼'라고 부르는 방식 또한 이 흐름 안에 놓여있다. 일반적으로 소셜 포토그래피는 개인의 미적 성취보다 사회적 맥락과 공공성을 전제하는 사진 실천을 의미한다. 사진은 결과물이 아니라 개입의 방식이며, 사진가는 관찰자라기보다 관계의 내부에 위치한 기록자가 된다. 이준희에게 이 명칭은 직업을 설명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는 기준에 가깝다.


장애인 스포츠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이나 지역 프로젝트 <춤추는 사상>과 같은 이력은 이러한 기준이 선언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 것이가보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먼저 제안한다. 이 지점에서 '소셜 포토그래퍼'라는 호칭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방향표처럼 읽힌다.


책은 음악을 전공했던 시절과 방황의 시간, 카메라를 들고 떠난 방랑의 경험을 차례로 호출한다.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콘트라스트'라는 단어는 빛을 다루는 작가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이다. 다만 초반부에서는 이 개념이 독자가 화자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쌓아올릴 수 있는 확신에 앞서간다 다소 관념적으로 머무는 인상을 남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글쓰기 자체가 점전적인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중반부에 이르러, 특히 '빛의 디렉션'이라는 장을 기점으로 문장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아마도, 달라지게 느낄만큼 서사를 넘어서 공명을 준다. 현장에 대한 서술, 그의 신념과 경험이 낳은 철학, 그가 쌓아올린 인문학적 소양등이 목에 힘을 주지 않아도 잔잔히 녹아들어 감동을 주고, 그가 느낀 깨달음에서 배움을 얻게 한다.

...그렇기에 카메라 셔터를 누를수록 더 진실하고 선한 것을 탐구하게 된다. 빛을 담으려고 노력 속에서 그림자의 존재를 인지하듯, 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둠의 의미 또한 깨닫는다. 빛과 어둠이 뗼 수 없는 관계인 것 처럼, 선과 악 또한 그러하다. 이것이 내가 사진가로서 빛과 어둠을 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빛과 디렉션> 184쪽 이준희


사진 한 장에 실린 의미가 다층적이고 입체적이면서도 공감역역이 넓고 깊을수록 사진가로서 본질에 다가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으로 치면 파인 다이닝 쯤 될 것이다. 생각하지 못한 이색적인 식재료들을 조화롭게 혼합하고, 그 각각의 맛이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는 음식. 하나의 맛이 다른 맛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서로 맛을 배가시키고, 맛의 둘레가 넓여져서 사람들이 해석할 여지가 많은 입체적인 음식.

<빛과 디렉션> 267쪽 이준희


초반부의 직설성과 다소 과잉된 자기 설명이 경험과 단단한 삶의 태도는 자신의 세계관과 함께 작품 속으로 팽창하고 응축되며 작품들로 피어난다. 문장의 설명이 자신의 아티스트로서의 신념으로 작품속에서 빛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책에서 가장 강한 울림이 텍스트가 아니라 사진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책의 중간중간 배치된 사진들은 인쇄라는 물리적 제약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감정의 밀도를 유지한다. 이 작품을 빛의 정보값이 가장 적게 소실된 상태에서 볼 수 있길 바라게 될 만큼. 확실히 글을 읽다가 문득 멈추게 되는 순간은 작가의 서사 때문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혹은 작가가 사진찍기의 기술 중 하나로 설명하는 '낯설게 하기'가 그의 거친 텍스트와 비견되어 그의 작품이 너무 낯설도록 아름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확신하게 된다. 이 사람은 사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매체가 요구하는 방식에 가장 잘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 그가 소망하는 대로 세계적인 사진가가 되어 빛과 어둠을 장악하고 그가 믿는 형태의 사진 작품을 만들게 될 거란 생각도 하게 된다. 그가 말해온 명징함과 분명한 콘트라스트는 텍스트보다 이미지에서 훨씬 설득력있게 구현된다. 특히 204페이지에 실린 사진은 긴 여운을 남기며, 이 책 전체를 통과한 감각을 응축한 장면처럼 남는다.


"문법을 파괴하려면 문법을 알아야한다." 사진의 문법을 파괴하는 나의 촬영 경험들은 사진의 문법, 즉 기술적인 부분들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존 사진의 틀을 부수는 사진을 만들고 싶다면, 기술을 마스터하라. 문법을 잘 알아야 틀을 깨는 문장을 과감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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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경제자립 프로젝트 1 : 금융 활용의 기술 - 첫 월급부터 자산으로 만드는 돈 관리법
이혜경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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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경제자립프로젝트 : 1 금융활용의 기술>
이혜경 지음
아날로그 출판

*지난 주에 대학 동기를 만나러 연희동에 놀러갔는데, 마침 책도 거의 다 읽었겠다 싶어서 리뷰도 정리할 겸 들고 나갔다. 아래 대화는 실제 있었던 대화에 약간의 각색을 더한 버전이다.

”요즘 어떤 책 읽었어?“
_RF 쿠앙 소설도 읽고, 중국어 독학한지도 거의 1년이라 그런지 정치나 역사, 패러다임 쪽 책들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더라고. 그러다 서평단도 새로 시작했는데, 피드에 <2030 경제자립 프로젝트 : 금융활용의 기술>이 딱 떠서 바로 신청했어. 요즘 경기 흐름도 그렇고, 다들 ‘지금의 월급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지?’가 최대 고민이잖아. 그런 질문 흐름을 정확히 읽은 책이 피드에 나타난 느낌?

”언니 나도 이번에 귀국해서 직장 처음 시작하잖아. 나도 이런 책 읽어야 하는데…“
_그래서 들고왔지. 최근 서평단으로 읽은 실용서들 중에서도 추천 상위권에 들어. 경제 실용서는 결국 “최신 정보 + 바로 적용 가능한 구조”가 핵심인데,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꽤 안정적으로 갖추고 있어.

책의 기본적인 독자는 제목처럼 2030세대, 그리고 너처럼 정기적 현금흐름을 처음 갖게 된 사회초년생이야. 저자가 25년차 금융 전문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문장이 불필요하게 빙빙 돌지 않고, 핵심 정보만 정확히 추려낸 문장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 실제로 읽다 보면 금융 언어의 진입장벽을 많이 낮춘 책이라는 게 바로 느껴져. 그래서 ‘나는 돈을 진짜 하나도 모른다’는 친구들한테 선물해도 잘 읽힐 입문서야.

“그래서 어떤 내용인데?”
_전달 방식이 되게 명료해. 강의식 설명의 장점이 있어서 독자의 질문 동선을 정확히 예측한 구성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일단 ‘벌고, 아끼고, 모으고, 쓰고, 투자하고, 빌리고, 갚고, 대비한다’라는 8개의 흐름으로 돈 이야기를 재배치하는데, 이 구조가 초년생이 처음 월급을 다룰 때 부딪히는 모든 고민을 자연스럽게 포괄해.
그래서 읽다 보면 ‘아, 돈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구나’라는, 말 그대로 재무 세계의 전체 지형도가 잡힌다.

게다가 2025년 기준으로 청년층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정책 정보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서, 월급 이후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한 번에 조망할 수 있어.

”아, 그러면 사회초년생에서 살짝 넘어간 나 같은 사람은 보기엔 좀 아쉬운 부분도 있겠네?“
_아니지. 사회초년생은 단순히 갓 졸업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경제활동을 처음 시작한 시점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하는 거야. 그리고 보통 실용 금융서는 절약, 가계부, ETF 같은 ‘부분 기술’에 집중하는데, 이런 책을 먼저 읽으면 전체가 잘 안 보이거든. 그에 비하면 이 책은 ‘돈 폴더 자체’를 새로 만드는 느낌으로 전체 구조를 먼저 잡아주는 타입이어서 오히려 더 기본기가 탄탄해져.

“물론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해.”
_예를 들어 연금저축. 이게 중도 해지하면 세금혜택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상품 구조에 따라 원금 회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리스크가 있는데, 책에서는 그 부분을 다루지 못했어. 금융회사 안내문 수준의 중립적 언급 정도? 이건 책의 설계가 ‘깊이보다 넓이’를 택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고... 입문자용 로드맵이 목표니까 위험지대의 디테일은 자연스럽게 빠져 있더라. 하지만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 꽤나 많다는 아이러니. 디테일이 그렇다는 얘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여 페이지 안에 이 정도 정보 압축도를 유지하는 건 진짜 쉽지 않은데, 저자는 취재 감각과 편집 감각이 합쳐진 문장력으로 그걸 해낸 책이야. 독자가 궁금해할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문장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대로 드러나고, 읽는 동안 독해 피로도가 거의 없어.

나는 서평단이라고 해서 예쁜 말만 쓰는 스타일이 아닌데, 내 기준에서 보자면 이 책은 지금의 위치와 이해도에 딱 맞게 추천 가능한 책이야. 첫 월급을 받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막막한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출발선 역할을 해줄 거야.

“책 읽고 그래서 뭐가 달라지긴 했어?”
_ 맞다, 이 책에서 하라고 한 것 중 가장 먼저 실천한 건 ‘가계부쓰기’야. 요즘엔 돈관리 앱이 워낙 많긴 한데, 직접 써보는 거랑은 다르지. 진짜 신기한게 구매한 가계부에 그 가계부 제작자가 “00의 핵심은 선저축입니다.”라고 썼는데, 이 책에도 같은 맥락의 구절이 있었어. ”선저축 후 생활과 절약“ 이라고. 내가 첫 가계부를 쓰게 된 계기가 된 책이라고 기억하게 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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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꽃 위픽
정이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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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에 적힌 한 단어 짜리 유서와 인도행 티켓. 내 여행의 유일한 이유였다.
무국적자가 되고 싶던 나날을 기억한다. 너와 나에게 흑백논리에 불과한 분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국적도, 성별도, 어쩌면 이름까지도. 우린 인지적 편의를 위한 라벨들을 거부했다. 영혼을 위한 이름은 아니었으니까. 단 한 가지로도 표현할 수 있는 존재 양식이란 없기에 우린 초라한. 명칭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정이담의 <환생꽃>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논 바이너리로, ‘너’는 트랜스젠더로 이 세상을 살았고, ‘나’는 ‘너’를 사랑해왔다. 그런 너의 죽음으로 나는 그의 죽음을 추적해 나간다. 이 글은 내가 너를 추모하기 위해 떠나는 인도행이었다. 이 글을 읽으며 나 또한 그 애가 생각이 났다. 그 애가 자주 하던 말들이 정이담의 <환생꽃> 곳곳에 퍼져있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해할 수 없는 그 애의 심경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볼 수 있었다.

글은 넘치게 화려했다. 주인공 ‘나’는 무채색을 좋아하고 죽음을 택한 연인인 ‘너’는 화려한 색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를 추모하는 그의 심경은 무채색보단 짙고 화려한 색감의 꽃과 같았다. 십 대에 내가 나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북받쳐 오르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들처럼, 그를 추모하는 ‘나’의 글은 그렇게 넘치고 넘치다 못해 환각상태에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만약에 마약을 하는 사람의 뇌를 추적할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이 들 수 있겠다. 십 대에 내가 나의 꿈에 도취되었던 것처럼.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 사람이 돌연 죽음을 맞이할 때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보고 싶다.
긴 꿈이 이어졌다.
총천연색의 꽃이 건물을 무너뜨린다.
그 사이…… 네가 서 있었다. 꽃으로 만든 면사포가 드레스를 입고 나를 향해 웃는 너.
꽃에 짓눌려 질식하는 사람들 사이,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오직 너만 사랑을 고백했다. 종교, 자본, 편견, 혐오, 무지가 사랑을 대처하기 이전의 역사를, 네가 고백했다.
세상이 우리의 고백을 금지한다면 어디에도 없는 결혼식을 올리자. 주례는 노숙자에게 부탁하고, 청첩장은 죽어버린 연인들의 이름만 적자. 가장 낯선 결혼식을 올리자. 침수되는 꽃들이 우리의 하객. 주례사는 창백한 혀들을 갈가리 찢을 때 들린다. 당신들의 꽃, 그 꽃을 죽이고 괴물을 움켜쥘 거야 날개 뽑힌 천사가 힘을 보태겠지 아니 키스한 후 죽이고 싶다 이런 숭고한 감정 우주 속의 사랑 거름들이 마침내 바람 속을 기는 밤, 그 밤의 말미에, 꽃은 불탈수록 신선한 냄새가 난다 태초부터 축복이던 연인들의 향기를 알아차리면 꽃은 새벽으로 돌아오겠지 수없이 환생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꽃을 겨누는 동안.



글을 읽으며 슬픈 마음이 들었다. 예민하고 나의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고 휘청이던 그 작고 여리면서도 악을 쓰는 그 애가 떠올랐다. ‘여자가 대체 뭔데?’ 난 그 애의 그런 말들이 가엾으면서도 꼭 그렇게 저항을 해야 해? 꼭 세상에 인정받아야 해? 생각하면서도. 그 애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 이후 알게 된 여러 작품들과 유튜브 속 그들을 살펴보며, 그 애의 생각들을 조금씩 이해했다. 지금 이 책처럼. 그들의 입장이 한 번이라도 되어보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그런 슬픔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저울대에 올라가야 하면서도 그렇게 올라가길 마침내 자처하는. 귀찮게 저항하고 소리를 지르는 그들의 무지갯빛을. 그들에겐 성이 이슈겠지만, 누구나 각자 이 세상의 저울과 라벨로 분류되는 것에 저항하는 것 하나쯤은 있지 않나. 우리가 얼마나 사회에 제대로 소속되었기에 의기양양하게 그들의 존재를 다름으로 분류하나. 우리또한 저나름의 소수자로 살고 있으면서.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소의 귀에 박힌 플라스틱 라벨처럼. 학교, 직장, 성별, 나이, 국적, 종교, 자본, 출신…….


‘보호’란 ‘가해자’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중략)
만약 우리의 다양성을 남김없이 드러내도 존중받는 사회라면, 성향과 지향을 이유로 공격하거나 추행하지 않는 사회라면, 타인의 입장에서 다양한 경계를 상상할 수 있는 사회라면 모두의 숨통이 트일 텐데, 더위에도 앉지 못하는 남자들과, 그들의 접근을 막는 성벽처럼 둥글게 좌석을 둘러싸고 창밖만 바라보는 여자들 속에 하릴없이 실려 이동했다. 그들은 내 이방인 다운 헤어스타일에 시선을 몇 번 주었다. 그건 차라리 한 가지 특징을 과도하게 오독하는 일보단 나았다. 난 점점 삶을, 이 여행을 판단할 수 없었다.


제3의 성, 작가는 그 자신을 제3의 성이라고 불렀다. 글이 좀 과격하고 낭만적이고 넘치는 낱말들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세상은 사람을 그들의 편의로 분류하고 주된 분류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인정하지 않지만. 사실 이 세상을 제대로 분류하려고 하면 남성, 여성이란 간편한 말들로는 그들을 제대로 분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 보호의 울타리 어디에도 두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 “사람의 몸은 언젠가 노쇠하며 수만 가지로 변한다. 우리의 몸은 필연적으로 경계를 건넌다. 자연은 원래 혼란하다. 그걸 이분법 안에 두고 정상이라 부르는 일은 인간의 오만이다. 통제를 위해서만 발명된 구분을 숭상하는 건 우습다. 세상엔 100만 개의 신, 100만 종류의 여성, 100만 분류의 남성이 필요하다. 제3, 제4, 제5와 제6의 성이 발생하고, 제11의 성과 제13의 성이 동반자가 되어 ‘남성’같은 개념 따위 가장 작고 초라해질 때에야 영혼엔 자유가 찾아올지도.”

그가 여행하는 인도라는 지리의 문화적 특성상 특히나 여성의 인권이 바닥에 있기에 좀 더 적나라하게 여성이란 존재가 존재만으로도 불온할 수밖에 없는 현실. 거기에 성 정체성마저 내려놓고 그에 목소리를 내며 분개한다.

인도 여행 중 그가 발견한 인도에서 신에게 바치는 푸자 꽃처럼. 연약하고 부드럽기보다 눈이 아플 만큼 쨍한 노랑, 자주, 주황…… 불꽃처럼 강렬한 마리골드. 현란하고 극적인 꽃 더미 같은 건 이 글도 마찬가지라 여겨졌다. 변두리에도 걸쳐 있지 못한 배척되는 소수자이지만 그 무엇보다 강렬한 색채를 띠는. 그래서 이 회색 도시에 그들이 배척되는 걸까, 그들이 뒤섞일 수 없는 화려한 색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글이 역시나 화려하고 극적이고 또 시적이다.


본색을 드러낸 꽃들이 세상을 활보한다. 바닥의 검은 것들이 꽃인지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우박처럼 쏟아재는 꽃이 전봇대를 무너뜨린다. 그림자마저 꽃의 색으로 찬란하다. 배가 아팠다. 강한 본능을 간직한 장이 꿈틀거리며 몸부림친다. 난 왜 아직도 살고 싶을까. 살고 싶어도 되나. 이미 지옥이나 다름없는 이승에서 무엇을 위해 생명을 이어야 하나. 눈물은 증발했다. 인간에게 눈물은 사치다. 인간은 신에 가까운 것들을 수없이 죽였다. 그 결과 더 많은 신들이 태어났다. 아마 너도 저 너머에서 꽃의 신이 되었을 테지. 경계와 차원을 넘나들고, 더 많은 사랑을 피우는 존재로 진화했겠지.


그가 인도행을 선택한 이유는 그 사람이 인도에 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제3의 성을 인정한 나라였다. 여행을 하면서 그는 ‘히즈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히즈라는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환경에서 생식기를 제거한다. 생식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그 대신 타인에게, 특히 새로 태어난 아기와 그 가정에 축복을 내리는 능력이 생긴다. 히즈라가 기도하면 불임이던 곳에 아기가 태어나기도 한다. 그게 바로 바후차라 마타의 신성을 물려받은 히즈라의 숙명이다. 인도의 신들은 여러 인격을 가졌고, 대부분은 양성적이다. 그 신격을 물려받은 존재가 바로 #히즈라 다.

그는 히즈라가 죽으면 어떤 식의 장례를 치르는지, 히즈라가 죽으면 그들이 영세에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알고자 한다. 난 아마도 이 대목이 히즈라의 운명이 그 자신과 그녀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히즈라의 신성을 그들이 물려받은 것은 아니지만, 신성을 제외하곤 그들과 별다를 것이 없는. 3억의 신과 공존하는 인도에서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좀 더 이해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왜냐면 이해할 수 없는 건 계속해서 머리에 남아있기 마련이고.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선, 제대로 그를 추모하기 위해선 몸을 비행기에 실어 인도로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에 정확한 대답을 해줄 거라고 믿었던 그루는 이미 죽었다. 그녀의 유골이 담겨있던 병은 실수로 깨트려 강가로 흩어졌다. 히즈라가 거짓말을 했고 그녀는 그 도중에 방황한다.

강가에서 팔려나가듯 늙은 남자에게 결혼을 강매당하는 어린 소녀를 바라봤다. 어린 소녀의 언니가 급사하게 되었는데, 인도에는 신부의 지참금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돈을 갚을 여력이 되지 않으니 어린 나이에도 팔리듯 결혼할 처지에 놓였다. ‘나(차이)’는 이 장면을 보며 분개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너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실패했고, 갠지스강에 머리를 담가 보았지만, 그저 비릿하고 역겹게 오염된 물에 불과하다. 그 강가에서 힘없이 팔려나가는 소녀를 바라보다가, ‘나’ 차이는 그녀가 몰래 이 결혼에서 도망갈 수 있게 노를 건넨다.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족쇄같이 목을 휘감던 꽃목걸이와 장신구를 벗어던지며 그 결혼으로부터 탈출한다. 소녀의 해방을 도운 건 마치 ‘내’가 이 세상에 여성의 육신으로 태어나 얻은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고픈 그의 소망이 담긴 것이 아닌가. 죽음을 함부로 선택할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를 이해할 수도 없지만. 소녀를 탈출시키며 세상이 부여한 여성성에서 벗어나고픈 그녀만의 의식이 아니었을까.

위픽의 다른 시리즈였던 조예은의 <만조를 기다리며>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떠나는 추모의 여행.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어투도, 모든 것이 사뭇 달랐다. 글이란 낱말이 500여 쪽이나 되게 모여있다고 해서 괜찮은 서사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란 걸 위픽과 근래에 읽었던 책을 통해서 여실히 느꼈다. 처음엔 위픽 시리즈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분량은 너무 작고, 책도 작고, 이게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이젠 좀 알 것 같다. 기간과 분량이 제한된 상황에서 작가들이 펼칠 수 있는 역량의 다양성을 관찰하는 것이 하나의 유희가 되었다. 짧은 시와 열댓 권의 대서사가 담긴 책을 두고 무엇이 더 훌륭한가 운운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 글의 가치란,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란 쪽수나 분량의 문제가 아니구나. 시간의 제약 때문에 완성도를 더 올리지 못한 게 아쉬울 수 있지만. 그동안 작품이 될 수 있지만 작품이지 못했던 이런 작은 단편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작가라면, 이 위픽 시리즈에 도전한다는 것이 작가로서 큰 의미를 가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두꺼운 책의 정가와 이 책의 정가가 같다는 것에 나는 더 이상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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