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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디렉션 - 사진작가 이준희 직업 에세이
이준희 지음 / 스미다 / 2025년 11월
평점 :
이준희의 에세이를 읽으며.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빛과 디렉션>은 사진 기술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문장의 섬세함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산문집이라고 말하기에도, 이 책의 문체는 비교적 직선적이다. 이준희의 글은 자신의 태도와 방향을 설명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그만큼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기 규정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에게 양가적인 인상을 남긴다. 작가의 입장이 분명하다는 점에서는 신뢰를 주지만, 아직 이 인물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독자적 경험이 충분히 펼쳐지기 전에 확인이 먼저 제시되면서, 글은 때때로 설명에 가까워지고, 독자는 그 설명을 따라가기 위해 잠시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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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지점을 단순한 결함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은 애초에 다듬어진 결과물을 보여주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방향을 말하기 위해 어떤 언어를 선택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에 가깝기 때문이다. 초반부의 직설적인 문장들은 아직 정제되지 않은 상태의 태도처럼 읽히며, 이 특별함은 책 전반에 걸쳐 하나의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이준희가 스스로를 '소셜 포토그래퍼'라고 부르는 방식 또한 이 흐름 안에 놓여있다. 일반적으로 소셜 포토그래피는 개인의 미적 성취보다 사회적 맥락과 공공성을 전제하는 사진 실천을 의미한다. 사진은 결과물이 아니라 개입의 방식이며, 사진가는 관찰자라기보다 관계의 내부에 위치한 기록자가 된다. 이준희에게 이 명칭은 직업을 설명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는 기준에 가깝다.
장애인 스포츠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이나 지역 프로젝트 <춤추는 사상>과 같은 이력은 이러한 기준이 선언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 것이가보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먼저 제안한다. 이 지점에서 '소셜 포토그래퍼'라는 호칭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방향표처럼 읽힌다.
책은 음악을 전공했던 시절과 방황의 시간, 카메라를 들고 떠난 방랑의 경험을 차례로 호출한다.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콘트라스트'라는 단어는 빛을 다루는 작가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이다. 다만 초반부에서는 이 개념이 독자가 화자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쌓아올릴 수 있는 확신에 앞서간다 다소 관념적으로 머무는 인상을 남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글쓰기 자체가 점전적인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중반부에 이르러, 특히 '빛의 디렉션'이라는 장을 기점으로 문장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아마도, 달라지게 느낄만큼 서사를 넘어서 공명을 준다. 현장에 대한 서술, 그의 신념과 경험이 낳은 철학, 그가 쌓아올린 인문학적 소양등이 목에 힘을 주지 않아도 잔잔히 녹아들어 감동을 주고, 그가 느낀 깨달음에서 배움을 얻게 한다.
...그렇기에 카메라 셔터를 누를수록 더 진실하고 선한 것을 탐구하게 된다. 빛을 담으려고 노력 속에서 그림자의 존재를 인지하듯, 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둠의 의미 또한 깨닫는다. 빛과 어둠이 뗼 수 없는 관계인 것 처럼, 선과 악 또한 그러하다. 이것이 내가 사진가로서 빛과 어둠을 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빛과 디렉션> 184쪽 이준희
사진 한 장에 실린 의미가 다층적이고 입체적이면서도 공감역역이 넓고 깊을수록 사진가로서 본질에 다가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으로 치면 파인 다이닝 쯤 될 것이다. 생각하지 못한 이색적인 식재료들을 조화롭게 혼합하고, 그 각각의 맛이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는 음식. 하나의 맛이 다른 맛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서로 맛을 배가시키고, 맛의 둘레가 넓여져서 사람들이 해석할 여지가 많은 입체적인 음식.
<빛과 디렉션> 267쪽 이준희
초반부의 직설성과 다소 과잉된 자기 설명이 경험과 단단한 삶의 태도는 자신의 세계관과 함께 작품 속으로 팽창하고 응축되며 작품들로 피어난다. 문장의 설명이 자신의 아티스트로서의 신념으로 작품속에서 빛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책에서 가장 강한 울림이 텍스트가 아니라 사진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책의 중간중간 배치된 사진들은 인쇄라는 물리적 제약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감정의 밀도를 유지한다. 이 작품을 빛의 정보값이 가장 적게 소실된 상태에서 볼 수 있길 바라게 될 만큼. 확실히 글을 읽다가 문득 멈추게 되는 순간은 작가의 서사 때문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혹은 작가가 사진찍기의 기술 중 하나로 설명하는 '낯설게 하기'가 그의 거친 텍스트와 비견되어 그의 작품이 너무 낯설도록 아름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확신하게 된다. 이 사람은 사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매체가 요구하는 방식에 가장 잘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 그가 소망하는 대로 세계적인 사진가가 되어 빛과 어둠을 장악하고 그가 믿는 형태의 사진 작품을 만들게 될 거란 생각도 하게 된다. 그가 말해온 명징함과 분명한 콘트라스트는 텍스트보다 이미지에서 훨씬 설득력있게 구현된다. 특히 204페이지에 실린 사진은 긴 여운을 남기며, 이 책 전체를 통과한 감각을 응축한 장면처럼 남는다.
"문법을 파괴하려면 문법을 알아야한다." 사진의 문법을 파괴하는 나의 촬영 경험들은 사진의 문법, 즉 기술적인 부분들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존 사진의 틀을 부수는 사진을 만들고 싶다면, 기술을 마스터하라. 문법을 잘 알아야 틀을 깨는 문장을 과감하게 만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