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자들
최성환 지음 / 책들의정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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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국 자본시장에서 벌어졌던 주가조작, 정보 유출, 권력과 시장의 유착 사건들이 서사의 뼈대를 이룬다. 특히 최근 정권 시기에 드러났던 각종 주가 비리 논란과 시장 왜곡 사례들이 그대로 투영돼 있어, 독자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현실의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았던 진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재배열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고발문이나 르포처럼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 사건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인물과 관계를 약간 비틀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만든다. 그 결과 독자는 특정 사건의 진위를 따지는 대신, 왜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정보는 어떻게 선택적으로 흘러가고, 책임은 어떻게 분산되며, 결국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 결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서사 속에서 선명해진다.

9년간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저자의 이력은 이 소설을 현실 쪽으로 단단히 끌어당긴다. 시장의 언어, 공시의 맹점, 리포트 뒤에 숨은 이해관계가 과장 없이 묘사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에 의해 읽힌다. “어디선가 본 장면”이라는 느낌이 반복되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최도진이 제시하는 코스피 5,000 시대는 이 소설의 탈출구다. 앞에서 보여준 비리와 왜곡의 축적 위에, 그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시장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할 것인가. 그의 제안은 낙관도 선동도 아니다. 제도 개편, 산업 구조, 신뢰 회복이라는 조건이 갖춰질 때만 가능한 미래로서 제시된다.

이 책은 현실을 닮았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끝까지 읽히는 소설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시된 코스피 5,000과 새로운 10년에 대한 비전은, 지금까지 반복돼온 현실을 멈출 수 있다면 충분히 도달 가능한 미래처럼 보인다. 이 허구가 언젠가 더 이상 허구가 아니게 되기를 바라게 만드는 점,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강한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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