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영미소설,SF/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켄 리우. ★★★★★. 20200719-22. 420p
: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작가의 한국판 오리지널 SF 단편선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저자의 미출간 단편 중 데뷔작을 포함해 총 12편의 작품을 엄선하여 엮은 책이라고 한다.
표지를 처음 봤을 땐 기묘하면서도 살짝 오싹한...? 느낌을 받았는데, 도대체 저게 뭘까 하고 찾아보니
조각가 요시마사 츠지야의 '기린'이라는 작품이었다. 일부러 SF라 전설 속의 동물을 표지로 한 건가 싶었다.
저자의 이력이 신기하다. 일단 이름만 들었을 땐 중국인인가 싶었지만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가 미국에서 쭉 생활했고
하버드 영문학과를 졸업했는데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그 후 하버드 법학 전문 대학원을 졸업,
변호사로 7년을 일하다 소설가로 데뷔, 창작 뿐만 아니라 중국 작품을 영어로 번역까지 했다고...
현재도 낮에는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다 밤에 소설을 쓴다고 한다. 뭐지? 완전 능력자인가 ㅋㅋㅋㅋ 싶었던 이력..
책을 읽기 전, 나무위키에서 '공상과학소설 대표작'이라고 분류되어 있는 것 중 내가 읽어본 걸 찾아봤다.
수많은 SF 소설 중 내가 읽은 건 고작
<헝거게임> 시리즈, <마션>, <클라우드 아틀라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개미>, <뇌> 정도랄까.
전부 다 재밌게 읽은 책들이 분명한데 'SF소설'이라고 하면 낯선 느낌을 받는 건 많이 접하지 못했기 때문일려나보다.
저자의 전작 <종이 동물원> 역시 못 읽어봤기에 이 책은 어떤 느낌일려나?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작가 최고잖아?!" 였다.
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p59)
내 인생은 하나의 기다란 호(弧)가 될 터였다. 시작과 끝이 있는. (p60)
생명 연장 재생 시술을 통해 나이를 먹지 않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미래를 보여주는 '호'를 시작으로
육체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있잖아, 몸은 실제로 제일 중요한 생존용품이긴 한데, 약하고 불완전해. 몸은 결국엔 우릴 버리게 마련이야."(p184)
"이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p206)
우리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알고리즘들이 여러 루틴을 재결합하고 재배치한 결과
우리는 완전 인격, 즉 우주에 새로이 탄생한 어린 의식이 되었다. (p247)
작가가 특히 아낀다는 싱귤래리티(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기점을 의미하는 용어) 3부작
'카르타고의 장미', '뒤에 남은 사람들', 표제작이기도 한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읽었다. 육체를,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추구하며 디지털 세계로 떠난 인간들.
죽음을 받아들이며 남은 잔류자들. 디지털 세계에서 새롭게 탄생한 디지털 세계의 원주민들까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가 있지? 싶으면서도 가독성, 흡입력이 끝내줘 푹 빠져서 읽어나갔다.
이 외에도 박테리아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해준 '심신오행',
단백질을 매듭묶기를 통해 파악하고자 하는 신박한 아이디어와 함께 씁쓸함을 안겨준 '매듭묶기',
인공지능에 대한 오싹함을 선사해준 '사랑의 알고리즘' 그리고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라는 소제목이 달린 '모든 맛을 한 그릇에'는 정말 압권으로 재밌었다.
여러 나라, 여러 세계와 행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지루할 틈이 전혀 없었던,
신박한 설정과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때로는 전율과 함께 소름을 느꼈던,
수록된 12편 모두 너무나 재밌게 읽은. 분명 미래세계인데 지금의 현실도 잘 반영되어있었던 책.
이제라도 이 작가를 알게 되어서 기쁘고 다행이라고 느꼈던 책. 조만간 전작 <종이 동물원>도 꼭꼭 읽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