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생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 인생이라는 게임을 바꾸기 위한 붓다의 가르침
뇔케 무호 지음, 심지애 옮김 / 페이지2(page2)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게시물은 컬처블룸을 통해 포레스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
“왜 살아야 할까.”

누군가에게는 너무 무겁고 어두운 질문일지 모르지만, 이 질문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붙잡아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뇔케 무호의 《불교는 인생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불교를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너무 익숙해져서 잊고 있던 질문을 다시 꺼내놓는 책에 가깝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게임의 규칙’을 배운다.

공부를 잘해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취업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집을 마련해야 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보다 ‘남들이 원하는 삶의 기준을 얼마나 잘 따라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가끔 멈춰 서서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저자는 인생을 ‘게임’이라는 낯선 언어로 바라본다. 게임이라면 당연히 규칙이 있고, 목표가 있고, 이기고 지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생의 규칙 역시 정말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이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드는 출발점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표현은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나간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과격하게 들린다. 특히 책의 제4장이 [왜 자살하면 안 될까?]라는 목차를 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게임에서 나가기’는 삶을 끝내는 의미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삶의 규칙에서 한 발 물러나는 것에 가깝다.

저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뒤 삶의 의미를 고민했고, 아버지에게 “어차피 죽는데 왜 살아야 해요?”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답을 듣고도 삶이 ‘즐거운 파티’라는 설명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는 대목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따분한데 어디가 즐거운 파티란 말인가!”

삶에 대한 질문이 얼마나 개인적인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행복한 삶이라고 해서 나에게도 반드시 행복한 삶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이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규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 아닐까.

이 책에서 말하는 불교의 실용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불교를 종교적 믿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는 불교를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도구로 가져온다.

특히 ‘지금 여기’라는 관점은 현대인의 삶과 상당히 잘 맞닿아 있다.

사람은 늘 현재보다 미래를 걱정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지나간 일을 계속 되돌아보며,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한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생각보다 아주 짧아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과 괴로움의 문제 역시 이런 지점과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언가를 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원하는 결과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순간 괴로움이 커지는 것은 아닐까.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들이 하나의 ‘규칙’이 되어버리면, 그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게임에서 나간다’는 것은 게임의 규칙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지 않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제4장 [왜 자살하면 안 될까?]는 이 책에서 가장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부분이다.

🔖“여러분 중에는 ‘인생이라는 게임은 망겜 그 자체’라고 느끼는 분도 계실 테고, ‘갓겜까지는 아니지만 플레이할 가치는 있다’는 분도 계실 겁니다.”

게임이라는 표현이 자칫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문장에서는 삶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할 수 있고, 누군가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다. 따라서 ‘삶은 아름답다’거나 ‘열심히 살면 된다’는 식의 위로만으로는 모든 사람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삶의 고통을 쉽게 지워버리지 않는다. 대신 삶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꾸려고 한다.

삶에 반드시 하나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어떨까.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을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어떨까.
지금 느끼는 고통을 ‘인생 전체의 결론’으로 단정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죽음이라는 질문을 통해 지금 살아 있는 순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탈출’ 자체보다 그다음 이야기였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나갔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타임 쉬고 나서 새로운 게임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기존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임에서 잠시 내려오면, 비로소 게임의 규칙이 보인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플레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부분에서 불교의 수행이나 명상도 새롭게 보였다.
명상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기술이라기보다, 얼마나 많은 생각에 끌려다니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잠깐의 거리가 생기는 것.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게임에서 나가기’와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도겐과 좌선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이 저절로 나는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바로 비사량. 생각으로는 붙잡을 수 없다.”

생각을 통제하려고 애쓴다.
걱정하지 말아야지. 이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생각은 더 선명해진다.

좌선에 대한 이 문장을 읽으며 생각을 없애는 것과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중요한 것은 그 생각 하나하나를 붙잡고 끌려갈 필요는 없다는 것.

이것은 꼭 불교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생각해 볼 만한 태도라고 느꼈다.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그 생각이 반드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후회가 떠올랐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고 해서 지금 당장 미래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바라보는 것.
그 작은 전환만으로도 삶을 대하는 자세는 달라질 수 있다.


🔖“어디를 가도 ‘그곳’이 ‘이곳’이 되고 만다는 이 진실을…”

장소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마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물론 환경을 바꾸는 것이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불안과 집착, 비교하는 습관까지 그대로 가지고 이동한다면 새로운 장소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만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을 바꾸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곳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머무느냐.
그것이 이 문장을 읽고 난 뒤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불교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불교를 종교 체계나 철학으로만 바라보면 수많은 개념과 교리가 먼저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삶의 언어로 끌어온다.

괴로움이 있다면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본다.
생각이 많다면 생각이 많다는 사실을 본다.
집착하고 있다면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으로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답이 있다고 믿는 순간 정답에서 벗어난 자신을 실패자로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남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도 된다는 것.
때로는 멈춰도 된다는 것.

이런 생각만으로도 삶의 무게가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삶이 힘든 이유는 삶 자체 때문일까,
아니면 삶을 반드시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순간을 얼마나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같은 삶이라도 어떤 규칙을 믿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삶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그 안의 감각은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인생에서 나가기’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믿었던 인생의 방식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는 것.

그때 비로소 내가 남의 게임을 대신 플레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삶은 여전히 어렵고, 답을 찾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누가 만든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 그 규칙을 계속 따라야 하는지를 스스로 물어볼 수 있다면, 삶의 주도권을 조금 되찾는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_

#불교는인생에확실히도움이된다
#페이지2북스 #포레스트북스 #뇔케무호 #자기계발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 #서평단
#불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도서리뷰 #책리뷰
#베스트셀러 #신간 #독서 #책추천 #추천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게시물은 #자음과모음 (@jamobook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

폭우가 쏟아지던 밤, 한 소년이 부모를 잃는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후 기묘한 출판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담 모임으로 이어진다. 매년 한 번,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묻지 않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는다.

그런데 이 모임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다.

'이야기는 반드시 자신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그저 괴담을 나누는 독특한 모임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질수록 묘한 불안이 생긴다.

‘이 사람들이 정말 겪은 일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일까?’

그리고 괴담이라고 부르는 것과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 사이에 정말 명확한 경계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서 실화와 소설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틀렸어. 더 비현실적인 쪽은 실화야.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이 세상이지. 그래서 소설은 결코 실화를 따라잡을 수 없어.”

소설은 허구이고 현실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때때로 상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만들어내는 잔혹함은 귀신이나 괴물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문장이 이 책 전체 메시지를 대변하는 하나의 열쇠처럼 느껴졌다.


《밤의 이야기꾼들》에서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괴담이 ‘무서운 사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부들]에서는 폭력과 불륜,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 감춰진 욕망이 기괴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도플갱어]에서는 ‘나와 똑같은 존재’라는 오래된 공포를 성형과 자아의 문제에 연결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자신의 얼굴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정말 온전한 것인가 하는 질문까지 따라온다.

[홈, 스위트 홈]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내 집’이라는 공간이 공포의 장소로 뒤집힌다. 공간에 부여하는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웃는 여자]는 섬뜩하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소문과 따돌림, 폭력 속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밀려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괴이한 존재보다도 한 사람을 오랫동안 외면하고 상처 입히는 주변의 시선이 더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그리고 [눈의 여왕]에서는 저주와 폐쇄적인 공동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얽히면서 공포가 슬픔으로 변한다.

이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괴담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의 욕망, 상처, 외로움, 집착, 두려움이 괴이한 형태를 빌려 나타난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의 괴물들은 누군가에게는 복수이고, 누군가에게는 외로움이며, 누군가에게는 상실이고,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놓지 못한 욕망이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진 부분은 괴담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어두운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한 사람씩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설정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의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는 듯한 위치에 놓이는 듯 했다.

그래서 다음 문장이 이 모임의 성격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하되 자신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문장 역시 책 전체를 읽고 나면 처음보다 훨씬 다르게 다가온다.
이야기는 사실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기억이고 경험이며 때로는 상처를 보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이 모임에서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얼굴도 이름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는 사람들.

아이러니하게도 얼굴을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더 강력한 자기 고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플갱어]를 비롯해 작품 곳곳에서 ‘얼굴’과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 반복되는 것도 흥미롭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 모습과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때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도플갱어라는 초자연적인 소재에서 시작하지만 현실적인 불안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바꾸려고 하는 것.

그래서 〈도플갱어〉의 공포는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밤의 이야기꾼들》을 읽으며 계속해서 느꼈던 감정은 의외로 ‘무서움’ 하나만은 아니었다. 공포소설인데 이상하게 슬프게 다가왔다.

기괴하고 잔혹한 장면을 지나고 나면 그 뒤에 남는 것은 이상하게도 쓸쓸함이었다. 누군가는 사랑받지 못했고, 누군가는 이해받지 못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상처를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

그래서 괴담 속 인물들을 무서운 존재로만 바라보기 어려웠다.
특히 [웃는 여자]처럼 한 사람이 사회에서 밀려나는 과정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괴물이 생겨나는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사람이 아니라, 상처와 고립과 폭력이 쌓인 끝에 괴이한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때 독자는 그 인물을 무서워해야 할까, 아니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까.

이 작품이 공포와 슬픔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런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의 이야기는 살아 있다. 우리가 곧 이야기다.”

이 문장은 책 속 괴담 모임의 선서이지만, 책을 덮고 나면 조금 다른 의미로 읽힌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와 잊고 싶은 이야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형태가 바뀐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곧 이야기’라는 말이 오히려 공포보다 더 오래 남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부를 들여다보는 일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읽고 나면 현실을 바라볼 때 조금 이상한 기분을 남긴다.

지금 내가 지나치는 골목에도 누군가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
평범하게 보이는 집에도 그곳에 살았던 사람만 알고 있는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쯤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평범했던 장소가 이야기를 품은 장소가 되고, 평범했던 사람이 이야기를 숨긴 사람이 된다.

‘괴담은 책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대말한 것처럼 이야기는 현실을 완전히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귀신보다 사람이, 괴물보다 기억이, 저주보다 상처가 더 오래 생각났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지금까지 내가 들어온 이야기 중에서 정말로 허구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밤의 이야기꾼들》은 독자가 자신의 기억과 주변의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각각의 괴담이 만들어내는 서늘함을 즐길 수 있고, 미스터리나 인간 심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야기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욕망과 상처를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자 자신에게도 하나의 이야기가 남는다.

‘이것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덮었는데도,
이상하게도 불을 끄고 나면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어둠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것.

아마 《밤의 이야기꾼들》이 남기는 공포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야기는 끝났는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_

#밤의이야기꾼들 #전건우 #네오픽션
#소설 #소설추천 #도서리뷰 #책리뷰 #책추천
#책소개 #도서추천 #독서 #옴니버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갇힌 소녀
브렌다 데이비스 지음, 유영일 옮김 / 올리브나무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처음에는 한 소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열일곱 살 노라.
가족에게 숨기고 있던 임신,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

하지만 《갇힌 소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이야기가 한 여성의 불행만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라가 갇힌 것은 정신병원이라는 건물 안이었지만, 그보다 더 오래 그녀를 가둔 것은 당시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과 낙인,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했던 제도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무서웠던 것은 사람을 한 사람의 이름으로 바라보지 않고, 특정한 분류와 진단명, 사회적 낙인으로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노라는 어느 순간부터 '노라'가 아니라 '도덕적 결함자'가 된다.
그 순간 한 인간의 감정과 선택과 목소리는 사라지고, 사회가 붙인 이름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노라의 임신은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그것을 한 소녀의 삶에서 벌어진 위기로 바라보지 않았다.
혼전 임신이라는 사실 하나가 그녀의 도덕성과 인격 전체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어버린다.

책에서 노라가 병원으로 보내지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특정한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분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가능했다. 특히 영국의 1913년 정신결함법(Mental Deficiency Act)은 당시의 우생학적 사고와 사회적 통제의 영향을 받은 법률이었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은 과거의 정신의학을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일까?'

과학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전제와 편견이 과학의 이름을 얻는 순간 사람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생학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런 위험이다.
특정한 사람들을 '더 우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하고, 유전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인간의 가치를 판단했던 사고는 여러 사회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낳았다.

《갇힌 소녀》가 무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라를 가둔 사람들은 자신들이 괴물이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더 무섭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표현 중 하나는 노라가 자신의 생존 방식을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다들 제가 길들여진 토끼처럼 굴기를 원했어요."

이 문장이 아프게 다가온 것은 '토끼'라는 표현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자신의 의지를 포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노라는 말을 잘 듣는 환자가 되면 '착한 사람'이 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 '문제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자신을 숨기는 것. 말하지 않는 것. 저항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것.

이 부분에서 '순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조용하다고 괜찮은 것도 아니고, 반항하지 않는다고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 침묵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방어 수단일 수도 있다.


가장 잔인한 것은 '치료'라는 이름이었다.
특히 마음 아프게 읽히는 부분은 노라의 신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장면들이다. 강제적인 검사와 의료적 처치, 통제된 생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결정들. 그런 장면들을 읽고 있으면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이 사람의 의지를 빼앗는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과거의 정신의학과 오늘날의 정신의학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는 없다.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와 치료 방법, 환자의 권리, 의료윤리 모두 크게 변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미래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은 무엇일까?

오늘의 상식도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오늘의 치료도 언젠가 새로운 지식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의학과 과학에서 지식의 발전만큼 중요한 것이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순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으려면 바보 흉내를 내야 한다는 게?"

책에서 가장 가슴을 치는 문장은 아마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한 문장 안에 노라가 오랜 세월 겪어온 모순이 압축되어 있다.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순간 '문제 있는 환자'로 취급된다.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신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역설에 빠진다.

이 대목에서 '정상'이라는 단어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가 정상과 비정상을 결정하는가.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얼마나 쉽게 이름을 붙이고 판단하는가.

노라에게 필요했던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갇힌 소녀》가 절망으로만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오래 기억하게 된 부분은 노라가 얼마나 심하게 망가졌는지가 아니라, 그럼에도 사람이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이었다.

수십 년 동안 갇혀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이제 자유롭게 살아도 됩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자유가 곧바로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선택할 기회를 빼앗겼던 사람에게 선택은 두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노라의 회복은 병원 문을 나서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누군가를 믿고, 선택하고,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는 치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치유는 상처가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있는 채로도 다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였을 수도 있었어..."

짧은 문장이지만 이 말이 이 소설 전체를 표현한다고 느꼈다.

노라는 특별히 다른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한 시대의 규칙과 편견 속에서 불행한 상황을 맞닥뜨린 한 소녀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린 제도가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노라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내가 다른 가족, 다른 환경, 다른 조건에서 살았다면?
내가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났다면?

이 질문을 떠올려 본다면 타인의 불행을 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과거의 치료 방식과 시설 환경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상당한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환자의 자율성과 동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충분히 존중되지 않았던 사례들은 지금도 의료윤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그렇다고 과거를 현재의 기준으로만 재단하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시대의 과학적 지식은 무엇이었는지, 사회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법은 무엇을 허용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같은 일이 다른 이름으로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구원'보다 '연대'였다.
사람은 혼자서만 살아남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과거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는 사람.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할 때, 완전히 닫혀 있던 삶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길 수 있다.

🤔 노라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틈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자신을 환자나 문제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대신,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봐 주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믿게 해주는 것.

💕 때로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갇힌 소녀》는 읽는 동안 수많은 감정을 같이 느끼며 마음이 무거웠다.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의외로 절망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아냈구나.'

오랜 시간을 빼앗긴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하면 그 말조차 너무 작은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노라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바로 다시 살아보려는 마음이다.

상처는 사람을 바꾼다.
때로는 너무 깊은 상처가 사람을 침묵하게 만들고, 세상과 자신을 단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손길과 신뢰,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연대가 닿는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갈 가능성은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갇힌 소녀》는 한 사람의 존엄을 빼앗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랑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가슴 아픈 장면이 많았다.
눈물이 나는 순간도 있었다.

이 서평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드는 생각은 슬픔보다 노라의 '살아 있음'이었다.

빼앗겼던 시간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도, 사라져버린 관계도 모두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삶을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이 건네는 강한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한 사람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리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손을 내미는 것.

이 세 가지를 이 책에서 오래 기억하고 싶다.

올해 읽은 소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강한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읽는 동안에는 아팠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이상하게 다시 살아갈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갇힌 소녀》는 그렇게 마음에 남았다.

_

#갇힌소녀 #올리브나무 #브렌다데이비스
#영미소설 #소설 #소설추천 #신간 #신간도서
#독서 #도서리뷰 #책리뷰 #책추천 #도서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것은 소설인가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고은규 작가님의 《이것은 소설인가》의 제목에서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질문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묻는 말처럼 보이지만, 책에 담긴 일곱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질문은 훨씬 더 불편하고 현실적인 곳을 향한다.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야기 속에 혹시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빚을 내서 집을 사고, 누군가는 타인의 집에서 잠을 대신 지키며 돈을 벌고, 누군가는 불법으로 증축된 공간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버림받기 전에 먼저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들의 삶을 읽다 보면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보다 어느 순간 ‘나도 저런 순간을 지나온 적이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책의 인물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타인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동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지금 내 옆집에, 같은 지하철 안에, 같은 회사에, 혹은 내가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일상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쉽게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왜 저렇게 됐을까. 누가 잘못했을까. 저 사람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하지만 누군가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보다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동희가 관계를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고, [긁지 마, 제인]의 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갉아먹는 상황에 놓이는 과정도 그렇다.

사람의 상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받은 작은 거절이 쌓이고,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남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반복되고, 사회 안에서 계속해서 밀려나고,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는 경험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 관계를 대하는 방식까지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만 떼어놓고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뒤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생각해보아야 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전부 되돌릴 수는 없다. 상처받지 않았던 사람이 될 수도 없고, 과거의 선택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모든 것까지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과 아직 되돌릴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일.

회복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소설인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집’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보통 집이라고 하면 안전과 휴식, 가족과 안정을 먼저 떠올린다.
하루를 버티고 돌아와 몸을 눕힐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집이 오히려 인물들의 불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너의 집이 좋아]에서 주인공은 어렵게 집을 마련하지만 그 주변은 입주하지 않은 빌라들로 가득하다.

🔖“검은 마을이라 불리면 딱 좋은 곳.”

집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삶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을 갚아야 하고, 주변에 사람이 없고, 밤이 되면 오히려 두려움이 커진다.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안정과 성공의 상징처럼 사용되어왔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바라보면 집은 동시에 빚과 불안, 고립을 함께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어느 로프공]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증축된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열악한 곳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을 통해 사회 안에서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집이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 되는 순간, 주거 문제는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가 된다.

이 대목에서 책은 지금 사회의 현실과 맞닿는다.
같은 도시에서 살아도 누구에게는 집이 휴식처이고, 누구에게는 투자 자산이며, 또 누구에게는 평생 벗어나기 힘든 부채가 된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안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얻고 싶은 권리가 된다.

그 차이를 소설은 사회적 비판의 언어가 아닌 인물들의 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묻는 남자]에서 특히 섬뜩했던 것은 아주 평범한 질문 하나였다.

🔖“미림여고 나오지 않으셨나요?”

질문만 놓고 보면 이상할 것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공포를 다시 끌어올리는 방아쇠가 된다.
여기서 나는 ‘말에는 의도가 없어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대개 상대방의 의도를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한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받아들일 줄 몰랐는데.
그냥 물어본 건데.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자신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로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더구나 트라우마는 현재의 사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순간에 겹쳐지면서 지금 여기에서 다시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묻는 남자]를 읽으며 ‘사람의 기억은 끝난 사건을 끝난 상태로만 보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책 전체를 의미하는 가장 큰 정서는 ‘생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하는 것. 불안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
다시 사람을 믿어보는 것. 끊어버리고 싶었던 관계를 돌아보는 것.
과거에 묶여 있으면서도 앞으로 한 발 내딛는 것.

그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에서 생계를 위해 자신의 수면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장면은 특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엘렌 최 부부에게 수면을 팔았기 때문에 나는 아이 옆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게 맞았다.”

‘수면을 판다’는 표현.
잠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가장 원초적인 휴식인데,
누군가는 자신의 휴식마저 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돈이 물건을 사고파는 수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살 수 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체력, 심지어 잠까지 내어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 차이가 아주 조용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면서도 인물들을 절망 속에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느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사람이 영원히 상처 입은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뒤 다시 일어날 수도 있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지 이해하면서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에서 동희가 자신의 관계 방식을 돌아보는 부분은 그래서 중요하게 다가왔다.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떠나자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할 때 사람은 때때로 이상한 선택을 한다. 상대가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서 내가 먼저 떠난다.
상처받을까 봐 먼저 마음을 닫는다. 거절당할까 봐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겉으로 보면 냉정하거나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쪽에는 오랫동안 쌓인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사람이 관계에서 반복하는 행동에는 그 사람만의 과거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표제작 [이것은 소설인가]에서는 특히 ‘책임’이라는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빌려갔으면 제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했으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주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의외로 이 당연한 것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변명하고, 사과하는 대신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작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를 준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순간에는 누군가의 무심한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윤리는 아주 작은 생활의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사소한 책임들이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것은 특정 사건의 반전이나 자극적인 장면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각자의 삶 안에는 남들에게 쉽게 보여주지 못하는 균열이 하나쯤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평범하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문제와 결핍을 안고 있으면서도
다음 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책이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이상한 행동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무표정 뒤에는 오랫동안 견뎌온 삶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물론 모든 행동이 이해된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이해와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소설인가》가 내게 남긴 질문은 ‘이 이야기가 실제냐 허구냐’에 머물지 않는다.

🤔 나는 지금 주변의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오늘도 어디선가 조용히 살아남고 있는 사람들.
아무에게도 자신의 하루를 설명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그래도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소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읽고 나서 내게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 나 자신이다.

_

#이것은소설인가 #교유서가 #고은규
#소설 #한국소설 #소설추천 #소설책추천
#책소개 #책리뷰 #도서리뷰 #책추천 #신간 #신간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경매 초보 탈출 - 이론부터 실전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경매 입문서
안진희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게시물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_

부동산 경매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부동산을 낙찰받아 시세 차익을 얻는 투자. 하지만 막상 경매를 공부하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소기준권리부터 대항력, 우선변제권, 배당, 명도까지 생소한 용어가 쏟아지고, 낙찰 이후에는 수리비와 세금, 대출이자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경매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잘못하면 돈을 잃을 수 있는 방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경매 초보 탈출》을 읽으면서 경매의 핵심은 싸게 낙찰받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내고 계산하느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제목처럼 초보자가 가장 먼저 탈출해야 할 것은 경매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싸게 사면 수익이 생긴다’는 기대인지도 모르겠다.


경매를 처음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권리분석이다.

등기사항증명서를 펼쳐놓으면 여러 권리가 복잡하게 적혀 있고, 임차인의 보증금이 얼마인지, 대항력이 있는지, 낙찰자가 인수해야 하는 권리가 있는지 등을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 유치권이나 법정지상권처럼 초보자에게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권리까지 등장하면 ‘이걸 내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권리분석 단계에서 조금이라도 위험 요소나 불분명한 점이 발견된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처럼 권리분석을 단순하게 지식을 많이 외워야 하는 영역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별했다. 투자를 하다 보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좋은 물건을 발견하면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고, 다른 사람이 먼저 낙찰받기 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하지만 경매에서는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멈추는 것. 확신이 없다면 입찰하지 않는 것.

이것 역시 투자자의 중요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초보자에게 가장 큰 수익은 잃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라는 문장은 경매를 바라보는 관점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했다. 투자에서 수익률만 생각하다 보면 ‘얼마를 벌 수 있는가’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투자에서는 ‘얼마까지 잃을 수 있는가’를 먼저 계산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경매는 바로 그 사실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투자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매물건을 보는 눈은 권리 → 가격 → 현장 → 입찰이라는 ‘순서’에서 시작된다.

경매를 처음 접하면 감정가와 최저매각가격부터 보게 된다. ‘얼마나 떨어졌지?’ ‘시세보다 얼마나 저렴하지?’ 같은 숫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만 보고 접근하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먼저 권리를 확인하고, 그다음 실제 가치와 시세를 조사하고, 현장에서 점유관계와 물건의 상태를 확인한 뒤, 모든 비용을 반영해 입찰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경매는 하나의 숫자로만 판단하는 투자가 아니라 여러 정보를 연결해서 판단하는 투자인 것이다. 등기사항증명서만 보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매각물건명세서만 믿어서도 안 된다. 현황조사서와 실제 현장을 함께 확인하고, 각각의 자료에서 얻은 정보를 서로 비교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번거로움이 투자자를 보호해주는 장치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 중 하나는 입찰 당일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최대 입찰가격을 미리 정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루틴은 최대 입찰가격을 미리 확정하는 것입니다.”

경매 법정이라는 공간에서는 경쟁심이나 아쉬움 때문에 판단이 흔들릴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쓰면 낙찰받을 수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아깝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처음에 세웠던 투자 기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 사전에 계산한 최대 입찰가격을 일종의 투자자의 안전선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 매도가격에서 취득과 관련된 비용, 수리비, 명도비, 세금, 대출이자 등을 고려하고 내가 원하는 최소 수익까지 반영한 뒤 ‘여기까지가 내가 쓸 수 있는 금액’이라고 정해두는 것이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물건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포기한다.

경매에서 가장 어려운 행동은 좋은 물건을 눈앞에 두고도 기준을 넘으면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패찰은 정말 실패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매에서는 낙찰받아야 성공이고, 떨어지면 실패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정한 안전가격을 넘어섰다면 패찰은 실패가 아니라 투자 원칙을 지킨 결과일 수 있다.

주식 투자에서도 매수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선택인 것처럼,
경매에서도 입찰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는 기회를 잡는 능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놓아주는 능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경매처럼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큰 금액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경매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낙찰받는 순간 모든 일이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때부터 해야 할 일이 시작된다.
잔금을 마련하고, 소유권 이전을 진행하고, 점유자를 정리하고, 공과금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청소와 수리를 해야 한다. 이후 임대를 할지 매도할지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이 특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명도·수리비와 별도로 예비비를 확보해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잔금 이후 변수까지 감당할 여유’라는 관점 역시 중요하게 다가왔다.

투자를 계산할 때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숫자를 넣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다. 예상 매도가격은 높게, 수리비는 낮게, 명도 기간은 짧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안전한 투자를 하려면 반대로 계산해야 한다.

예상보다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 예상보다 매도가 늦어질 가능성, 대출 조건이 달라질 가능성까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수익을 계산하는 것만큼 버틸 수 있는 여력을 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매에서 자금계획은 특히 현실적인 문제다.
낙찰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해서 필요한 자금까지 자동으로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 가능 금액은 개인의 상황과 금융환경, 규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이런 위험을 강조한다.
🔖“보수적 계산은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잔금을 납부할 수 있게 만드는 ‘최후의 안전장치’입니다.”

이 문장은 투자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처럼 느껴졌다.
투자계획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은 ‘아마 될 것이다’일지도 모른다.

‘대출이 이 정도는 나오겠지.’
‘수리는 이 정도면 되겠지.’
‘시세대로 팔 수 있겠지.’

등등 이런 추정이 하나둘 쌓이면 수익계산서는 그럴듯해지지만 현실과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경매에서는 예상보다 나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경매 공부의 방향이었다.
🔖“경매 실력은 ‘공부한 시간’이 아니라 ‘끝까지 분석한 횟수’만큼 늘어납니다.”

경매뿐만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상당히 공감되는 말이었다.
용어를 외우고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실제 상황에서 판단하는 힘이 생기기 어렵다.

실제 물건 하나를 선택해 모든 예상 비용을 계산한 다음 ‘이 물건에 얼마까지 입찰할 것인가’를 직접 정해봐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물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해보는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지식이 연결된다.
그래서 책에서 제시한 30일 학습 로드맵도 하나의 물건을 직접 분석하는 습관을 만들라는 제안으로 읽혔다.


《경매 초보 탈출》을 읽으며 경매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경매를 ‘시세보다 저렴하게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저렴한 가격 자체는 투자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싸게 낙찰받았더라도 인수해야 하는 권리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명도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고, 수리비가 예상보다 커질 수도 있으며, 대출이 생각보다 적게 나올 수도 있다.

세금과 각종 부대비용까지 더하면 처음 보았던 ‘할인율’은 실제 수익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경매에서 정말 중요한 숫자는 모든 비용과 위험을 반영하고도 수익이 남는가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초보자가 실제 투자 과정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순서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으로 다가왔다. 경매를 공부한다는 것은 권리를 확인하고, 가격을 분석하고, 현장을 살피고, 비용을 계산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입찰하는 것. 그리고 기준을 넘어선다면 과감하게 돌아서는 것.

낙찰은 결과일 뿐이고, 진짜 목표는 그 이후에 있다.
얼마나 싸게 샀느냐보다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했는지,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보다 얼마나 위험을 통제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경매물건을 마주하게 된다면 감정가와 최저가부터 바라보기보다 먼저 서류를 펼쳐보고 싶다.

무엇보다 경매에서 가장 값진 낙찰은 내 돈을 지킬 수 있는 판단력을 얻는 것이 아닐까.

_

#경매초보탈출 #두드림미디어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 #서평단
#경매 #재테크 #부동산 #신간 #신간소개
#책소개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