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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문 2024.가을 - 123호
시와산문사 편집부 지음 / 시와산문사 / 2024년 9월
평점 :
<시와산문>은 한국 문단의 한복판에서 활약하며, 시와 산문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적 발언을 이어왔습니다. 이번 가을호는 특히 창간 30주년을 맞이해, 한국 문학의 지난 110년을 되짚어보며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글들을 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학의 독립성과 무소속성, 그리고 개인의 목소리가 지니는 힘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다양한 작가들이 모여 각자의 문학적 시선을 펼치며 독자와 소통하는 문학의 무한한 가능성과 문학이 지닌 사회적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시와 산문이라는 두 축이 어우러져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게 독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힘을 가집니다. 문학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 표현을 넘어, 사회와 소통하고 경계를 허무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번 가을호는 시와 에세이, 평론, 기획 특집 등을 통해 한국 문학의 현주소를 조명하고, 작가들의 창작 과정과 그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황정산 시인의 <문학은 무소속이다>는 “문학은 오직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선언하며, 문학이 갖는 본질적 가치를 외면하고 출신과 소속에 집착하는 문단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문학이 지니는 순수성과 독립성, 그리고 작가 개인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줍니다. 또한 “시인이나 작가의 출신을 알아내 그것으로 시인 작가를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작품을 읽어줄 애정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작품을 평가할 안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하며 문학의 본질을 깨닫게합니다. 문학의 독립성과 개별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이 글은 현대 문학이 잃어가고 있는 정체성을 되찾고, 본연의 자리에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지키려는 문학인의 고투를 응원합니다. 또한 작가들에게 주어진 도전 과제이자 독자들에게는 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트이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임승유 시인의 신작 시 <언니는 어디로 갔을까>와 <계절과 기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승유 시인은 어린 시절과 가족 간의 관계를 통해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표현합니다. 시인의 글에서는 언니가 되었지만 언니가 되지 못한 채 어딘가로 떠나버린 존재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조용히 읊조리며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특히 전종호 시인의 신작 시와 체험적 시론은 시인이 직접 체험하고 느낀 감정들을 바탕으로 시를 풀어나가며, 시인의 사색과 성찰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시인은 “시인이 시로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으로 말하지 않고 출신지나 활동무대의 후광으로 행세한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시인도 작가도 아니다”라고 하며 문학의 본질을 강조하는 동시에, 시인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그의 시와 글은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시적 체험을 선사합니다.
기획 특집에서는 성춘복 시인과 신경림 시인의 시세계를 조명하며, 이들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그들이 문학사에 남긴 흔적을 돌아봅니다. 김세영 평론가는 성춘복 시인의 시에서 추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색하며, 그가 구축한 독창적인 시세계를 분석합니다. 반면, 이재무 평론가는 신경림 시인을 ‘작은 거인’이라 칭하며 그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소박한 시학을 조명합니다. 이 특집은 독자들에게 한국 시문학의 깊이와 다양한 지점을 이해하게 하며, 시인들이 바라본 삶과 세계를 느끼게 합니다.
정훈교 시인의 <문득이라는 경계>는 기억과 현실, 그리고 시간의 틈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그립니다. 시인은 “나무를 본 사람과 있었다는 나무를 상상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통해 실제 경험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인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이 시는 삶의 크고 작은 기억들이 상상의 세계와 맞물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합니다. 직장 생활의 혼란과 슬픔,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실을 겪으며 느끼는 감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삶을 함께 따라가게 만듭니다. 또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모든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경계를 예리하게 파헤칩니다. 그 경계는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고통스러운 선으로 작용하며, 시인은 이를 통해 우리가 직면한 삶의 본질을 묘사했습니다.
에세이 특집에서는 일상에서 포착한 작은 순간들을 섬세하게 풀어낸 글들이 돋보입니다. 김나리의 <안돼! 에서 안 돼? 까지 도착한 아기의 말>은 어린 조카와의 일상을 통해 작은 것에도 진심을 다해 반응하는 아기의 모습을 그려내며, 순수한 존재의 힘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특히 “아기 곁에서 내가 무럭무럭 자란다. 더 자상한 방식으로 말을 다시 배운다. 나는 내가 아주 많이 변한 것 같다.” 라는 문장을 통해 아기의 순수하고 투명한 시선을 통해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기가 세상의 모든 동그라미를 공이라고 부르며 기뻐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어릴 적의 순수한 마음을 떠올리게 하며,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아기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적인 감정과 순수성이 담긴 글을 읽다 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아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태호의 에세이 <하강의 길>은 래프팅을 통해 삶의 흐름과 하강의 의미를 탐구하며, 아버지와의 관계, 아들의 선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과 희열은 독자로 하여금 삶의 역동성과 불확실성을 함께 느끼게 합니다. 하강의 끝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 글은 삶의 선택과 방향성에 대해 깊은 사색을 유도합니다.
단편소설로 실린 박숲의 <봄밤, 안드로메다 근처에서>는 섬세한 묘사와 감각적인 문체로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며,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물들이 겪는 특별한 순간들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인물들의 내면과 사건의 흐름이 잘 어우러지며, 짧지만 여운이 깊게 남는 작품입니다.
서윤후의 <쓰기의 방>은 작가가 글을 쓰는 공간에 대한 사색을 담아냈습니다. 기형도문학관에서의 인터뷰 경험을 바탕으로, 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방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했습니다. 세탁기 옆 작은 책상에서 글을 쓰는 사람, 집이 아닌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글을 쓰는 사람의 이야기들은 창작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글은 방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단순한 집필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그 안에 담긴 개인의 역사를 엿보게 하는 순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창작의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내면은 곧 그들의 삶을 반영하며, 독자에게 진솔한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사회적 주제에 대한 심도 깊은 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연종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꼭 써야 할까?>는 죽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함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합니다. 또한 “모든 생명이 자연에서 잉태되었듯 모든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라며, 자연스럽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 글은 독자들에게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윤리적, 사회적 이슈를 고민하게 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생명 연장의 미학보다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존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문학이 단순히 아름다운 언어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문학이 단순한 예술적 도구를 넘어, 현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상기시켜주는 글이었습니다.
문학이란, 결국 우리 삶의 일부분을 기록하고 반영하는 것입니다. 무소속이라는 자유로움 속에서, 문학은 특정 소속이나 경계에 갇히지 않고 그 자체로 빛이 납니다. 이번 호에서 만난 시인들과 작가들의 작품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삶의 진실과 가치를 전하며, 문학이 여전히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문학은 오직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 속에서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탐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줍니다.
<시와산문 가을호>는 이러한 문학의 본질을 향한 진지한 성찰과 실천이 담긴, 매우 가치 있는 한 권의 책입니다. 각기 다른 시선과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잡지를 구성하며, 문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글들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잡지는 작가와 시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문학을 통해 펼치는 목소리는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날카롭게 독자에게 다가와 감동과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문학을 통해 사회와 개인의 경계를 허물고, 더 넓고 깊은 대화의 장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니다.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독자들에게 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시와 산문이 주는 깊은 감동과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다양한 작가들의 신작과 시론, 에세이를 통해 문학의 다양한 색채를 만끽할 수 있는 이 잡지는, 문학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소중한 읽을거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또한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시와 산문>이라는 계간지는 그 자체로 사계절 내내 큰 위로를 건네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