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갱이들 -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황보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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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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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한 사람의 부재로 끝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충분히 슬퍼해야 할까, 눈물을 흘려야 할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할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종종 남겨진 사람들에게 애도의 모습을 요구한다. 얼마나 슬퍼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하는지, 그 사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그런데 정말 슬픔에도 정해진 모양이 있을까.

《알갱이들》은 친구 정미의 죽음 이후 남겨진 현비의 일상을 따라가며,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정작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서 상실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정작 죽은 정미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는 정미의 목소리도, 표정도, 죽기 전의 마음도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오직 현비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 정미라는 존재를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미는 부재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한 번도 직접 만날 수 없는 인물인데도 소설 곳곳에 정미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흔적은 현비의 하루와 생각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현비는 정미와 가장 친했던 친구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현비라면 정미가 왜 죽었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미의 친언니 유미 역시 동생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현비를 찾아온다. 하지만 현비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언제나 비슷하다.

모르겠다.

이 짧은 말에는 친구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혼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친구의 마음에 대한 당혹감, 혹시 자신이 무언가 놓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많은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정미와 가장 친했던 현비조차 정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현비의 잘못일까.

책 속에서 현비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정미를 몰랐다."

이 문장은 친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자책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삶과 마음을 타인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가까웠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어도 타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남겨진 사람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그날 내가 다른 말을 했더라면,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무언가 알아차렸더라면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현비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상당히 불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정미가 죽었는데 머리를 하고 미용실에 다녀왔다고 수군거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비난한다. 친구를 잃은 사람이 어떻게 평소처럼 머리를 하고, 밥을 먹고, 다른 사람과 웃고 지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잃었다고 해서 남겨진 사람의 일상이 완전히 멈추는 것은 아니다. 슬픔 속에서도 배가 고프고, 머리가 자라고, 계절은 바뀌며,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비가 미용실에 다녀온 이유도 정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정미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슬픔이라는 감정이 반드시 눈물이나 침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엉뚱한 일에 몰두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애도의 방식과 다르면 쉽게 비난한다. 슬퍼해야 할 때 웃었다고, 충분히 울지 않았다고, 벌써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고 말이다.

이 부분에서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해석하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상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슬퍼해야 하는지까지 정해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슬픔은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현비가 보여주는 태도는 인상적이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믿어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참회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친다는 의미의 참회.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믿어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문장은 작품 전체에서 현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처럼 느껴졌다.

현비는 정미의 죽음을 잊으려는 것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죽음에 명확한 원인과 책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태도일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현비의 주변에 등장하는 죽음의 이미지들이다.

죽은 정미뿐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고모부가 현비 앞에 나타나고,
아이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놀이를 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일상적인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히 죽은 고모부가 부탁하는 장면은 기묘하면서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혹시 현비 네가 나한테 죽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죽은 사람이 잘 죽기 위해 죽고 싶은 마음을 달라고 한다는 설정은 역설적이다. 이 장면은 죽음이라는 사건이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특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그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도 저마다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품고 있다.

여기서 고모부의 부탁은 현비에게 또 다른 감정의 무게를 건넨다.
현비는 정미의 죽음으로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마음까지 떠안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대신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결해 주기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결국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고,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슬픔이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은 제목인 '알갱이들'이었다.

알갱이는 작고 개별적인 존재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이고 쌓이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쉽게 흩어지고, 때로는 단단히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소설 속 현비의 마음도 그런 알갱이와 닮아 있다.

정미의 죽음에 대한 기억, 주변 사람들의 시선,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 할머니의 반복적인 참회 요구, 새롭게 맺은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까지. 어느 하나만으로 현비의 마음을 설명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감정들이 작은 조각처럼 쌓이고 흩어지며 현비라는 사람을 이루어간다.

책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나도 알맹이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알갱이."

알맹이라는 말이 어떤 것의 중심이나 핵심을 떠올리게 한다면,
알갱이는 그보다 작고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때로는 나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완성된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기억, 감정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은 제목이 가진 의미를 더욱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정미가 죽어서가 아니라 정미는 내 안에 있으니까. 알갱이처럼 내 안에 있으므로, 내가 진짜 내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정미를 볼 수 없다. 알갱이인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제목이 작은 입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남겨진 존재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없지만, 함께했던 시간과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미는 더 이상 현비의 곁에 없지만 현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정미가 있다. 그것은 잊지 못해서 괴로운 기억이기도 하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다.

애도란 떠난 그 사람이 내 안에 남긴 자리를 인정하고 그 자리를 품은 채 살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반복은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유미는 매일 현비를 찾아오고, 두 사람은 정미의 죽음에 관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는 소윤이와 김라희 사이의 폭력이 반복되고, 할머니는 현비에게 끊임없이 참회하라고 말한다.

비슷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조금씩 쌓여간다.

특히 소윤이가 현비에게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현비가 그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장면은 눈길이 갔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말이 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한마디를 필요로 할 때가 많다.
반복되는 말과 행동은 무의미해 보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누군가의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현비의 일상도 그렇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정미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비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간다.

이러한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거나 완벽하게 회복했다는 식의 결론도 아니다.

그저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도 살아가는 것.

오히려 그런 모습이 현실의 애도와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갱이들》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쉽게 설명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이유를 묻고, 슬퍼하면 언제쯤 괜찮아질지 궁금해하며,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는 이제 그만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말들이 걱정과 위로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상대방의 마음이 충분히 준비되기도 전에 건네는 위로가 또 다른 부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품이 쉽게 원인을 규정하거나 누군가를 구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감정을 단순하게 바라보거나, 주변 어른들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해석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삶에는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복잡한 사정과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나 그럴듯한 해답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부분을 함부로 채워 넣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현비가 아이에게 건네는 질문도 오래 남는다.

🔖"죽는 거 아프니?"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설정 속에서 등장하는 조금 낯선 질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작품의 끝을 생각하고 나면 이 질문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정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고,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비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 이후에도 남겨지는 감정은 무엇인지 묻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기에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알갱이들》은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쉽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올바른 애도의 기준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그대로 남겨둔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어딘가 까끌까끌한 감정이 남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 질문들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하는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슬픔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알지 못하는 마음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섣불리 괜찮아지라고 말하지 않는 것.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알갱이를 품고 살아간다.
어떤 것은 오래전 기억이고, 어떤 것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이며,
어떤 것은 누군가가 남기고 간 작은 흔적일 것이다.

그 알갱이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누군가를 잃었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 그 사람은 여전히 내 안의 작은 알갱이로 남아 있다.

황보나 작가의 《알갱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지긍 필요한 것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께 품어낼 수 있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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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장 완전 회복 - 위와 장이 살아야 내 몸이 산다!
이승후 지음 / 좋은날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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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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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심히 넘기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참 많은 것을 한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고,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하고, 아프면 병원을 찾아 약을 먹는다. 그런데 정작 매일 반복하는 식사와 소화, 배변처럼 너무나 익숙한 일상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먹은 음식이 편안하게 소화되고, 필요한 영양소가 몸에 흡수되며, 불필요한 것들이 원활하게 배출되는 과정까지 이루어져야 비로소 한 끼의 역할이 완성된다.

건강의 기본은 매일 반복하는 이 평범한 과정부터 살펴보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위와 장 완전 회복》은 위와 장의 건강을 중심으로 식습관과 생활 방식, 스트레스와 운동까지 살펴보며 몸을 돌보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소화불량이나 변비 같은 증상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먹고 생활해 왔는지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음식은 매일 먹지만, 그 음식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 바쁘다는 이유로 식사를 서두르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먹고, 속이 불편해도 당장 증상만 가라앉히면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몸은 하루의 식사 한 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선택이 쌓이고, 그 선택이 습관이 되며, 습관은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건강을 돌아본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생활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보며 내가 오늘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했는지부터 돌아보게 된다.
몸을 바꾸는 일은 작은 습관 하나를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위와 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영양소를 흡수하며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식사의 즐거움은 물론 일상생활의 편안함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속쓰림과 더부룩함, 잦은 소화불량, 변비처럼 흔히 경험하는 증상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한두 번 불편한 정도라면 일시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같은 증상이 반복된다면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편함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 먹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책은 속쓰림과 위염, 역류성 식도염, 변비와 과민대장 증후군 등 다양한 위장 문제를 다루며 식습관과 생활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위장 건강을 한 가지 음식이나 영양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기보다, 여러 생활 요소가 맞물리는 과정으로 살펴보게 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책의 목차에서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과식과 식사 습관, 음식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건강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새로운 식품을 추가하고, 영양제를 챙기고,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더하는 것만큼 불필요한 부담을 줄이는 일도 중요하다.

식사를 지나치게 빨리 끝내지는 않는지, 배가 부른데도 남은 음식을 억지로 먹지는 않는지, 늦은 시간의 식사가 반복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식사량과 시간, 개인의 소화 상태에 따라 느끼는 불편함은 달라질 수 있다.

음식에 대한 태도 역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불편함을 일으킬 수 있고, 반대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식사라도 균형 있게 먹는다면 좋은 식습관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책 속에는 위장병이 있는 사람에게 매운 음식과 일부 향신료를 줄이는 방법을 제안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건강관리는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뿐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불편함을 일으키는지 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얻고 싶은 실천의 방향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무작정 건강에 좋다는 것을 추가하기보다, 내 몸이 보내는 불편한 신호를 기록하고 식사량과 식사 속도, 음식 종류를 하나씩 점검해 보는 것.

건강관리는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구분하는 능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책의 2장에는 장과 뇌의 연결에 관한 내용이 있고, 4장에서는 스트레스와 건강의 관계를 다룬다. 이 두 주제를 함께 살펴보면 건강이 신체 한 부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스트레스가 심한 시기에는 식사 시간이 불규칙해지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평소와 달리 소화가 불편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몸이 계속 불편하면 활동이 줄고 잠을 설치게 되며, 일상의 작은 일에도 예민해질 수 있다.

장과 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도 연구되는 분야다.
다만 장 건강이 좋아지면 모든 정신적 어려움이 해결된다거나, 특정 장내 환경이 곧바로 마음의 건강을 결정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몸의 불편함과 마음의 상태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는 의미가 있다.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을 먹는지만큼 충분히 쉬고, 움직이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서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하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계속 무시한다고 해서 그 신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잠시 멈춰 자신의 생활을 살펴보는 편이 필요할 수 있다.

건강은 몸을 혹사한 뒤 회복하는 일만이 아니라,
애초에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생활을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위와 장 완전 회복》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건강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몸이 아프면 당장 불편함을 없애고 싶다. 속이 쓰리면 속쓰림이 멈추기를 바라고, 배가 더부룩하면 편안해지기를 바라며, 변비가 생기면 빠르게 해결할 방법부터 찾는다. 당장의 불편함을 줄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증상이 반복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생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식사는 지나치게 빠르지 않았는지, 내게 맞지 않는 음식이 있는지, 충분히 쉬고 움직였는지, 스트레스를 감당할 여유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건강을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좋은 생활 습관을 유지해도 질병은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프다는 이유로 자신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관리와 필요한 치료를 차근차근 찾아가는 태도다.


건강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오늘의 식사, 충분한 휴식, 규칙적인 움직임, 몸의 신호를 살피는 작은 관심이 쌓여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조건 참거나 두려워하기보다,
그 신호를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 그리고 몸에 좋다는 것을 무작정 더하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살펴보는 것.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몸과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먹은 한 끼를 돌아보고,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작은 변화 하나가 더 현실적인 건강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니까.

몸이 편안해야 일상이 편안하고, 일상이 편안해야 삶을 누릴 여유도 생긴다.

《위와 장 완전 회복》은 위와 장의 건강을 출발점으로 삼아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건강관리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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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ㅣ 탐 그래픽노블 17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박재연 옮김, 장 지오노 원작, 플로랑스 르봉발레 각색 / 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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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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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고, 망가진 자연을 되살리고 싶으며, 지금보다 조금은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뀌는 것이 있을까. 내가 애써 무언가를 해도 세상은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고, 눈앞에 드러나는 결과가 없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황량한 땅에서 묵묵히 도토리를 심는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신념을 외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그리고 그 사소해 보이는 행동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한 지역의 풍경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바꾸어 놓는다.


숲을 만든 것은 단 한 번의 위대한 결심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된 작은 실천이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관한 소식은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산불과 가뭄, 폭염으로 자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거대한 문제 앞에서 한 사람의 노력은 너무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피에의 이야기는 그 작음에 대한 판단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부피에는 매일 건강한 도토리를 골라 땅에 심는다. 싹이 틀지, 나무가 제대로 자랄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숲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행동에 대단한 비장함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영웅적인 서사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선언도, 자신의 선행을 증명하려는 욕심도 없다. 그에게 나무를 심는 일은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대개 결과부터 계산하곤 한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수고를 알아줄지 따져 본다. 하지만 모든 가치가 당장의 성과로만 증명되어야 한다면, 긴 시간이 필요한 일들은 시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책 속 부피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미래를 확신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도 행동한다. 자신의 노력이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 알지 못하면서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이어 간다.

이 태도는 꾸준함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했다. 꾸준함이란 어쩌면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된다.

책을 읽다 보면 도토리 한 알은 오늘의 내가 미래를 위해 남겨 놓는 작은 가능성이자, 당장 보이지 않는 변화를 믿는 행동이다.

부피에의 행동이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데도
자신의 일을 이어 가는 한 인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희망은 이처럼 잘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여겨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다.

도토리를 심는 일은 짧은 순간에 끝나지만, 숲이 되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어린나무가 자라며, 수많은 생명이 깃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인간의 조급함으로 앞당길 수 없는 시간이 흐른다.

나무는 오늘 심었다고 내일 숲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심은 나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너무 쉽게 현재의 결과만으로 노력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어떤 변화는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가 되어서야 과거의 작은 행동들이 서로 연결되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1953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한 인간의 조용한 실천이 자연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오랜 시간 여러 언어로 번역되며 읽혀 온 이 작품이 그래픽노블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은 실로 반가웠다.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은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같은 땅이 계절을 거치고 세월을 지나며 달라지는 모습은 글로 읽을 때와는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황량했던 풍경에 나무가 자라고 숲이 형성되는 과정은 변화가 단번에 이루어진 기적이 아니라 오랜 축적의 결과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

그림을 토대로 더 선명하게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변화의 무게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이 어린 독자에게만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에게 더 필요한 경험일 수 있다.


숲을 바라보며 기다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부피에가 나무를 심어 만든 변화는 나무의 수가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메마른 땅에 숲이 들어서고 물이 흐르며 새들이 찾아온다. 자연의 변화는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황량하고 적막했던 공간은 다시 생명이 머물 수 있는 장소로 바뀐다.

부피에가 심은 나무는 그가 살아온 삶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의 삶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설명하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 준다.


지금 우리가 심어야 할 도토리는 각자의 삶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 미뤄 둔 공부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함부로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 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씨앗이 처음부터 크고 대단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작은 행동이라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며,
변화가 더디다고 해서 모든 노력이 헛된 것도 아니다.

내가 심고 싶은 도토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내가 심은 나무가 얼마나 자랄지 알 수 없더라도, 오늘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확신할 수 없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 그것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오늘 내가 심은 도토리 하나가 내일 당장 숲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숲은 처음부터 숲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시간을 만나고, 수많은 날을 지나며 조금씩 다른 풍경을 만들어 간다.

미래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흔적은 지금 이 순간에는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오늘의 작은 실천들이 모여 내 삶 어딘가에도 푸른 숲 하나를 이루고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해본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에서,
오늘도 묵묵히 심어야 할 도토리 한 알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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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문장들 - 서술의 시대, 논리의 구조를 세우는 글쓰기
강진규 지음 / 파이퍼프레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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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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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몇 초 만에 문장을 완성해 주는 AI가 등장했고, 조금만 다듬으면 제법 그럴듯한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이 넘쳐날수록 끝까지 읽고 싶은 글, 읽은 뒤에도 문득 떠올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글은 더욱 귀해지는 듯하다.

나 역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종종 고민한다.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과 그 책을 읽고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줄거리를 잘 정리하고 인상적인 문장을 옮겨 적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서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어떤 순서로 풀어낼 것인지, 그리고 독자가 그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게 할 것인지에 있다.

강진규 작가의 《뉴요커의 문장들》은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요령보다 글 전체를 설계하는 구조와 논리에 주목한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롱폼 저널리즘으로 알려진 미국 《뉴요커》의 글을 분석해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 도입부부터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묘사법,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인 질문으로 확장하는 방법, 명확한 결론 대신 여운을 남기는 전개까지 살펴본다.

수많은 문장이 생산되는 시대에, 어떤 글이 독자의 시간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이 화려한 표현이나 자극적인 주장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감각, 복잡한 문제를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으로 보여 주는 시선,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정답처럼 강요하지 않는 태도. 이러한 요소들이 모일 때 글은 하나의 경험이 된다.


글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민은 무엇을 써야 하는가이다. 독자에게 배경을 설명하고, 주제를 소개하고, 내가 말하려는 바를 차근차근 전달하려 한다. 하지만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오히려 독자의 호기심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책 속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목표는 독자의 머릿속에 강력한 질문 하나를 남기는 겁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첫 문장의 역할이다. 첫 문장은 독자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이유를 만들어 주는 장치다.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알려 주는 대신, 적절한 의문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 독자를 놀라게 하거나 일부러 모호하게 쓰는 것이 좋은 글의 조건은 아닐 것이다. 낯선 시작은 뒤이어 펼쳐질 이야기에 의미 있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기심은 생길지 몰라도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예상 밖의 시작 자체가 아니라, 그 시작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으로 이어지는가에 있다.

독자는 글을 따라가며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좋은 도입부는 독자의 시선을 잠시 붙잡아 두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읽어야만 비로소 처음의 질문이 조금씩 풀리는 구조를 만든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서로 연결될 때, 글은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경험이 된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 설명이 길어진다. 내 생각이 오해받지 않도록 이유를 덧붙이고,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도록 비슷한 표현을 반복하며, 독자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부분을 거듭 강조한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상을 담을 때는 내가 느낀 감정의 크기만큼 글도 길어지기 쉽다.

하지만 책은 글쓰기에서 덜어내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명문은 반대로 작동합니다. 독자가 느껴야 할 본질적인 진실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잘라냅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좋은 글을 완성하는 과정은 불필요한 것을 구별해 내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쓴 글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퇴고를 거듭할수록 정말 필요한 문장만 남는다. 글을 줄이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스스로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과정이다.

다만 덜어낸다는 것이 무조건 짧게 쓰거나 설명을 생략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독자가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맥락까지 제거한다면 글은 간결해지는 대신 불친절해질 수 있다. 핵심은 문장의 길이가 아니라 각 문장이 맡은 역할이다. 어떤 문장은 정보를 전달하고, 어떤 문장은 장면을 보여 주며, 어떤 문장은 앞서 읽은 내용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이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뺄셈에 가까울 것이다.

책에서 인물을 묘사하는 방법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사람을 형용사로 기억하지 않죠.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누군가를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순간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여 주는 일은 다르다. 말없이 다른 사람의 몫까지 일을 마무리하는 모습,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약속을 지키는 행동,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어려움 사이에서 망설이는 순간은 인물의 성격을 직접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을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묘사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독자가 판단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인물의 성격을 미리 규정해 버리면 독자는 그 설명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위치에 놓인다. 반면 구체적인 장면이 주어지면 독자는 그 행동을 바라보고 스스로 의미를 발견한다.

인간은 한두 개의 형용사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존재다. 다정한 사람이 때로는 잔인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유독 한 가지 문제 앞에서는 작아지기도 한다. 모순과 결함은 인물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 아니라, 그 인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 점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한 가지 특징으로 규정하기 전에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선택의 맥락을 살펴보는 것. 행동 하나만으로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것. 좋은 묘사는 인물을 쉽게 이해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대신, 그 사람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글이 인간을 다룰 때 필요한 것은 세심한 관찰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룰 때 숫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계는 문제의 규모를 보여 주고, 수치는 개인의 경험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숫자를 충분히 제시했다고 해서 독자가 그 문제를 생생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줌인과 줌아웃의 방식은 이 간극을 좁히는 방법으로 읽힌다.
거대한 문제를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보여 주고, 그 개인의 이야기를 더 넓은 역사적·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거대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면, 먼저 단 한 사람의 얼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문장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의 얼굴로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이끌되, 그 한 사람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 태도. 구체적인 삶과 거대한 구조를 오가며 독자가 현실을 여러 층위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 좋은 글의 설득력은 감정과 논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연결하는 데서 만들어질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솔직하게 쓰고 싶지만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흐를까 걱정되고, 감정을 충분히 담고 싶지만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겪은 일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의 억울함이나 정당함을 증명하는 데 글의 상당 부분을 쓰게 되기도 한다.

책은 이때 자신의 이야기만을 중심에 놓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사람과 관계를 함께 살펴보는 방식을 제안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직접 선언하기보다 나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모습, 그들과 부딪쳤던 순간, 내가 내렸던 선택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를 가지려면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는 지점이 필요하다. 내가 겪은 일을 통해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나 상실의 의미, 타인을 이해하는 태도에 관해 무엇을 발견했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사적인 기억은 다른 사람도 자신의 삶을 비춰 볼 수 있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좋은 자기 고백은 독자가 자신의 모습을 함께 돌아보게 만드는 글일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오래 생각하게 된 문장이 있었다.

🔖“좋은 글은 답을 기억하게 만드는 글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남기는 글입니다.”

이 문장은 글을 읽는 경험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어떤 글은 읽는 동안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더 이상 생각할 것이 남지 않는다. 반면 어떤 글은 읽는 순간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처음에는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인물의 행동이 다시 떠오르고,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기준에 의문이 생긴다.

그런 글은 독자에게 생각할 몫을 남겨 둔다. 인물의 행동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사건에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와 감정이 얽혀 있음을 보여 준다. 독자는 글쓴이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된다.

다만 열린 결말이 언제나 좋은 결말인 것은 아니다. 충분한 근거나 설명 없이 판단을 미루는 것은 독자를 존중하는 태도와 다르다. 질문이 의미 있으려면 글이 그 질문에 이르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은 아직 판단하기 어려운지 구분한 뒤, 남겨진 질문이 독자에게 생각할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여운이 생긴다.

이 부분에서 글쓰기와 독서가 서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글은 모든 것을 대신 판단해 주지 않고, 좋은 독서는 글쓴이의 생각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 사이에는 생각이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글의 완성은 독자가 그 문장을 읽은 뒤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뉴요커의 문장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글쓰기를 문장의 기술에만 가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 문장으로 호기심을 만들고, 장면으로 인물을 보여 주며, 개인의 경험을 더 넓은 문제와 연결하고, 마지막에는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이 모든 과정은 글쓴이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표현을 익히는 일만큼이나 관찰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익숙한 사건을 낯설게 바라보고, 쉽게 내린 판단을 다시 검토하며,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과 실제로 확인한 것을 구분하는 태도 말이다. 문장을 다듬는 기술은 이러한 생각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생각 자체를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마음에 남는 것은 독자를 무조건 설득하려 하기보다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남기라는 관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완벽한 답으로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다른 사람과 함께 바라보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글이 누군가에게 깊은 감동을 줄 필요는 없다. 모든 문장이 오래 기억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쓰는지,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 고민이 글의 방향을 만들고, 방향이 문장과 구조를 결정하며, 그렇게 완성된 글이 누군가에게 생각할 거리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을 넘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독자의 시선을 잠시 붙잡는 글보다 독자가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을 미리 정해 둔 결론으로 끌고 가기보다, 충분한 근거와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복잡한 현실을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으며, 마지막 문장 뒤에 질문 하나를 남기는 글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끝까지 읽히는 글은 독자를 붙잡아 두는 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읽는 동안 생각하게 하고, 읽은 뒤에도 다시 떠올리게 하며,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조금씩 바꾸는 글일 것이다.

좋은 글은 읽는 동안 독자를 데려가고,
좋은 문장은 책을 덮은 뒤에도 독자 안에서 계속 움직인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왜 그것을 말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에게 무엇이 남기를 바라는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해야 할 질문들이다.

문장을 잘 다듬는 기술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하고, 사람과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며,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문장만이 아니다.
읽을 가치가 있는 생각, 그 생각을 끝까지 전달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태도다.

끝까지 읽히는 글은 마지막 문장에서 끝나지만,
좋은 글이 시작한 생각은 그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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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의 작은 정원들 -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골목 정원 이야기
최윤선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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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진선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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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생존법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나를 돌보는 일에도 계절이 필요하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무심히 지나쳤을까. 매일 걷는 골목과 익숙한 건물,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가로수, 보도블록 틈에서 고개를 내미는 이름 모를 풀꽃들까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특별히 바라보지 않았던 풍경들이 사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고, 자라나고, 계절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릴까.

최윤선 작가의 《북촌의 작은 정원들》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만 자연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멀리 떠나거나 특별한 시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우리 곁에는 이미 마음을 쉬게 할 작은 정원들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식물이 건네는 위로가 그저 감성적인 비유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물의 생존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인간의 삶에도 적용해 볼 만한 질문들이 숨어 있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남들보다 느리게 가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주어진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어떻게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 말이다.


첫 번째로 오래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는 열린송현 녹지광장의 중국단풍이다.

책 속에서 중국단풍은 겨울을 앞두고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로 등장한다.
봄부터 정성껏 키워 온 잎을 버리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언가를 잃어 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무에게 낙엽은 추운 계절을 견디고 다시 새잎을 틔우기 위해 필요한 생존의 과정이다.

저자는 그 모습에서 이미 생명력을 잃은 관계와 감정을 놓아주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떠올린다.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돌아올 봄에 새잎을 틔우기 위해서는, 때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과의 연결 고리를 과감히 끊어 내는 ‘마음의 떨켜’가 필요함을 다시 새깁니다.”

중국단풍은 봄에 피워 낸 잎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절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 잎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나무가 살아온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잎들이 있었기에 나무는 한 계절을 살아냈고, 이제는 다음 계절을 준비할 수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한때 나를 성장시켰던 일이 지금은 나를 소진시킬 수 있고, 과거에는 소중했던 관계가 현재의 나에게는 더 이상 건강한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시간 전체가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나에게는 필요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필요해졌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비움은 앞으로 살아갈 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끝까지 붙잡아야 성실한 사람이라고 믿어 왔다면, 이제는 나를 지키기 위해 놓아주는 선택도 성실함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 보고 싶다.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견딜 필요가 없는 고통을 알아보는 사람도 강한 사람이 아닐까.


창경궁 명정문 아래에서 만나는 꽃다지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꽃다지는 화려한 정원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꽃이 아니다. 담벼락 아래나 돌 틈처럼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며, 작고 소박한 모습으로 봄을 알린다. 하지만 이 작은 식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계절에 맞춰 살아간다.

저자는 꽃다지의 생존 방식에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빛과 시간을 활용하는 태도를 발견한다.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는 생명은 반드시 꽃을 피운다는 것을, 이 작은 식물은 매해 봄마다 증명해 보입니다.”

이 문장에서 마음에 닿은 것은 ‘자기만의 속도’라는 표현이다.

꽃다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자란다. 넓고 비옥한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살아남고, 계절이 오면 꽃을 피운다.

그 모습을 인간의 삶에 그대로 대입해 모든 어려움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에게는 식물과 달리 선택하기 어려운 환경과 책임,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환경이 힘들다면 그 환경을 바꾸기 위한 도움과 행동도 필요하다. 다만 지금 당장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가능성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해서 뒤처진 인생인 것은 아니다.
충분히 쉬어야 하는 시기가 있을 수 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도 있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경험은 쌓이고 생각은 깊어질 수 있다.

꽃다지의 작은 꽃은 크기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다른 꽃보다 화려해야만 봄을 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개화 시기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꽃을 피우는 대신 뿌리를 내리는 시간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그 시간을 실패나 정체라고 단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꽃이 피지 않은 시간도 생명이 살아가는 시간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재의 나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
그것이 꽃다지가 가르쳐 주는 다정한 인내가 아닐까.


삼청공원의 회양목에 관한 문장에서는 성장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만나게 된다.

🔖“느린 성장은 정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응축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성장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놓는다.
회양목처럼 천천히 자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성장에는 서로 다른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빠르게 높아지는 성장도 있지만, 단단해지는 성장도 있다. 넓어지는 성장도 있고, 깊어지는 성장도 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더 많은 것을 얻는 것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할 수 있다. 모든 말에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대신 어떤 말은 흘려보낼 줄 알고, 타인의 기대를 모두 충족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수한 자신을 무조건 비난하는 대신 다음 선택을 고민하는 것.

이런 변화는 눈에 띄는 성과로 기록하기 어렵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는 점에서 결코 작지 않다.

나 역시 어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내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변화를 쌓아 가는 중일까.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마음에 남기는 감정은 다르다.
전자가 나를 재촉한다면, 후자는 나를 조금 더 기다려 보게 한다.

성장은 언제나 전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멈춰 서서 자신을 살피는 일, 무리한 속도를 늦추는 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더 중요한 변화가 될 수 있다.

빠르게 자라는 능력만큼 천천히 견디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것.
회양목의 이야기는 성취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에 잠깐의 쉼표를 놓아 준다.


원서동 건물 사이에서 자라는 쉬나무의 이야기는 저자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저자는 임상 간호사로 일하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살피고 생명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천직이라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 정작 자신의 삶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익숙했던 사람이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마음이 머무는 이유는 돌봄이 지닌 양면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분명 소중하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 곁에 있어 주며, 자신의 시간을 나누는 일은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돌봄이 언제나 자기희생을 전제로 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저자가 쉬나무를 바라보며 건져 올린 문장은 이런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은 그늘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세상을 밝고 달콤하게 만드는 나무.”

이 문장을 읽으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과 자신을 소진시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늘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괜찮지 않은 날이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자리가 필요하다.

저자가 간호사에서 산림치유지도사이자 숲해설가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오래도록 돌봄을 이어 갈 수 있는지 다시 질문한 과정처럼 다가온다.

이 책이 건네는 질문은 현재의 삶에서 나 자신을 위한 자리를 조금이라도 마련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는 권유에 가깝게 느껴진다.

쉬나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온 시간만큼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책 속에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문장은 북촌로 담벼락 아래의 냉이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사소한 확인의 반복인지도 모릅니다.”

이 문장은 책 전체의 주제를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전해 주는 듯하다.

담벼락 아래의 작은 냉이를 바라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을 생각해 본다. 바쁘게 걷던 사람이 잠깐 멈추고, 낮은 곳에 핀 식물을 들여다본다. 꽃의 모양을 살피고, 잎을 바라보고, 작은 생명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 짧은 순간에는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요구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그저 눈앞의 생명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이 장면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자기 자신을 성과와 역할로 확인하는지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냉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맥박이 조금 느려졌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자연 감상이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자기 자신을 평가하던 시선이 잠깐 멈추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감각으로 돌아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삼청공원의 조팝나무에 관한 문장 역시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아직 피지 않았다고 해서 보석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꽃봉오리는 아직 활짝 피어나지 않았다. 완성된 꽃의 모습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의 모습은 미완성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꽃봉오리 안에는 앞으로 피어날 가능성이 담겨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람의 가능성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재촉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기다림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배우고, 다음 선택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을 마음속에 오래오래 두고 싶다.
아직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의 가능성을 너무 일찍 닫아 버리지 않도록. 지금의 모습만으로 앞으로의 나까지 결정하지 않도록.


《북촌의 작은 정원들》은 식물을 통해 자연의 생존법을 배우는 책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보며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게 하는 에세이다. 비움과 인내, 다정함과 회복이라는 주제는 특별한 장소에만 머물지 않고 매일 걷는 길과 일상의 작은 선택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고 나면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를 보며 모든 것을 붙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작은 풀꽃을 보며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자라는 나무를 보며 지금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라고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나를 위해 살아가는 시간 역시 소중하다.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저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책 속 냉이 앞에 쪼그려 앉은 저자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작은 꽃을 바라보는 동안 맥박이 조금 느려졌다는 이야기는 휴식이란 무엇인지
보여 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무엇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지.
무엇을 조금 내려놓아야 하는지.
지금 당장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꽃다지가 계절을 기다리고 회양목이 천천히 자라듯,
나에게도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무는 나무의 속도로 자라고, 꽃은 꽃의 계절에 피어난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나의 속도로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마음에도 다시 초록이 돋아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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