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의 작은 정원들 -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골목 정원 이야기
최윤선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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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진선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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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생존법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나를 돌보는 일에도 계절이 필요하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무심히 지나쳤을까. 매일 걷는 골목과 익숙한 건물,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가로수, 보도블록 틈에서 고개를 내미는 이름 모를 풀꽃들까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특별히 바라보지 않았던 풍경들이 사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고, 자라나고, 계절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릴까.

최윤선 작가의 《북촌의 작은 정원들》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만 자연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멀리 떠나거나 특별한 시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우리 곁에는 이미 마음을 쉬게 할 작은 정원들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식물이 건네는 위로가 그저 감성적인 비유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물의 생존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인간의 삶에도 적용해 볼 만한 질문들이 숨어 있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남들보다 느리게 가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주어진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어떻게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 말이다.


첫 번째로 오래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는 열린송현 녹지광장의 중국단풍이다.

책 속에서 중국단풍은 겨울을 앞두고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로 등장한다.
봄부터 정성껏 키워 온 잎을 버리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언가를 잃어 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무에게 낙엽은 추운 계절을 견디고 다시 새잎을 틔우기 위해 필요한 생존의 과정이다.

저자는 그 모습에서 이미 생명력을 잃은 관계와 감정을 놓아주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떠올린다.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돌아올 봄에 새잎을 틔우기 위해서는, 때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과의 연결 고리를 과감히 끊어 내는 ‘마음의 떨켜’가 필요함을 다시 새깁니다.”

중국단풍은 봄에 피워 낸 잎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절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 잎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나무가 살아온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잎들이 있었기에 나무는 한 계절을 살아냈고, 이제는 다음 계절을 준비할 수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한때 나를 성장시켰던 일이 지금은 나를 소진시킬 수 있고, 과거에는 소중했던 관계가 현재의 나에게는 더 이상 건강한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시간 전체가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나에게는 필요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필요해졌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비움은 앞으로 살아갈 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끝까지 붙잡아야 성실한 사람이라고 믿어 왔다면, 이제는 나를 지키기 위해 놓아주는 선택도 성실함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 보고 싶다.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견딜 필요가 없는 고통을 알아보는 사람도 강한 사람이 아닐까.


창경궁 명정문 아래에서 만나는 꽃다지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꽃다지는 화려한 정원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꽃이 아니다. 담벼락 아래나 돌 틈처럼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며, 작고 소박한 모습으로 봄을 알린다. 하지만 이 작은 식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계절에 맞춰 살아간다.

저자는 꽃다지의 생존 방식에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빛과 시간을 활용하는 태도를 발견한다.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는 생명은 반드시 꽃을 피운다는 것을, 이 작은 식물은 매해 봄마다 증명해 보입니다.”

이 문장에서 마음에 닿은 것은 ‘자기만의 속도’라는 표현이다.

꽃다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자란다. 넓고 비옥한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살아남고, 계절이 오면 꽃을 피운다.

그 모습을 인간의 삶에 그대로 대입해 모든 어려움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에게는 식물과 달리 선택하기 어려운 환경과 책임,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환경이 힘들다면 그 환경을 바꾸기 위한 도움과 행동도 필요하다. 다만 지금 당장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가능성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해서 뒤처진 인생인 것은 아니다.
충분히 쉬어야 하는 시기가 있을 수 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도 있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경험은 쌓이고 생각은 깊어질 수 있다.

꽃다지의 작은 꽃은 크기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다른 꽃보다 화려해야만 봄을 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개화 시기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꽃을 피우는 대신 뿌리를 내리는 시간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그 시간을 실패나 정체라고 단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꽃이 피지 않은 시간도 생명이 살아가는 시간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재의 나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
그것이 꽃다지가 가르쳐 주는 다정한 인내가 아닐까.


삼청공원의 회양목에 관한 문장에서는 성장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만나게 된다.

🔖“느린 성장은 정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응축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성장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놓는다.
회양목처럼 천천히 자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성장에는 서로 다른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빠르게 높아지는 성장도 있지만, 단단해지는 성장도 있다. 넓어지는 성장도 있고, 깊어지는 성장도 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더 많은 것을 얻는 것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할 수 있다. 모든 말에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대신 어떤 말은 흘려보낼 줄 알고, 타인의 기대를 모두 충족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수한 자신을 무조건 비난하는 대신 다음 선택을 고민하는 것.

이런 변화는 눈에 띄는 성과로 기록하기 어렵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는 점에서 결코 작지 않다.

나 역시 어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내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변화를 쌓아 가는 중일까.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마음에 남기는 감정은 다르다.
전자가 나를 재촉한다면, 후자는 나를 조금 더 기다려 보게 한다.

성장은 언제나 전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멈춰 서서 자신을 살피는 일, 무리한 속도를 늦추는 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더 중요한 변화가 될 수 있다.

빠르게 자라는 능력만큼 천천히 견디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것.
회양목의 이야기는 성취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에 잠깐의 쉼표를 놓아 준다.


원서동 건물 사이에서 자라는 쉬나무의 이야기는 저자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저자는 임상 간호사로 일하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살피고 생명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천직이라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 정작 자신의 삶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익숙했던 사람이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마음이 머무는 이유는 돌봄이 지닌 양면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분명 소중하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 곁에 있어 주며, 자신의 시간을 나누는 일은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돌봄이 언제나 자기희생을 전제로 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저자가 쉬나무를 바라보며 건져 올린 문장은 이런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은 그늘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세상을 밝고 달콤하게 만드는 나무.”

이 문장을 읽으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과 자신을 소진시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늘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괜찮지 않은 날이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자리가 필요하다.

저자가 간호사에서 산림치유지도사이자 숲해설가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오래도록 돌봄을 이어 갈 수 있는지 다시 질문한 과정처럼 다가온다.

이 책이 건네는 질문은 현재의 삶에서 나 자신을 위한 자리를 조금이라도 마련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는 권유에 가깝게 느껴진다.

쉬나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온 시간만큼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책 속에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문장은 북촌로 담벼락 아래의 냉이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사소한 확인의 반복인지도 모릅니다.”

이 문장은 책 전체의 주제를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전해 주는 듯하다.

담벼락 아래의 작은 냉이를 바라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을 생각해 본다. 바쁘게 걷던 사람이 잠깐 멈추고, 낮은 곳에 핀 식물을 들여다본다. 꽃의 모양을 살피고, 잎을 바라보고, 작은 생명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 짧은 순간에는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요구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그저 눈앞의 생명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이 장면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자기 자신을 성과와 역할로 확인하는지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냉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맥박이 조금 느려졌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자연 감상이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자기 자신을 평가하던 시선이 잠깐 멈추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감각으로 돌아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삼청공원의 조팝나무에 관한 문장 역시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아직 피지 않았다고 해서 보석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꽃봉오리는 아직 활짝 피어나지 않았다. 완성된 꽃의 모습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의 모습은 미완성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꽃봉오리 안에는 앞으로 피어날 가능성이 담겨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람의 가능성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재촉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기다림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배우고, 다음 선택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을 마음속에 오래오래 두고 싶다.
아직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의 가능성을 너무 일찍 닫아 버리지 않도록. 지금의 모습만으로 앞으로의 나까지 결정하지 않도록.


《북촌의 작은 정원들》은 식물을 통해 자연의 생존법을 배우는 책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보며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게 하는 에세이다. 비움과 인내, 다정함과 회복이라는 주제는 특별한 장소에만 머물지 않고 매일 걷는 길과 일상의 작은 선택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고 나면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를 보며 모든 것을 붙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작은 풀꽃을 보며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자라는 나무를 보며 지금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라고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나를 위해 살아가는 시간 역시 소중하다.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저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책 속 냉이 앞에 쪼그려 앉은 저자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작은 꽃을 바라보는 동안 맥박이 조금 느려졌다는 이야기는 휴식이란 무엇인지
보여 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무엇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지.
무엇을 조금 내려놓아야 하는지.
지금 당장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꽃다지가 계절을 기다리고 회양목이 천천히 자라듯,
나에게도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무는 나무의 속도로 자라고, 꽃은 꽃의 계절에 피어난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나의 속도로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마음에도 다시 초록이 돋아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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