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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평점 :
정보라 작가의 연작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여섯 종의 해양 생물과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날카롭게 들여다봅니다. 문어,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와 '나'와 '위원장님', 그리고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공포와 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해양 생물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문어,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와 같은 생물들이 각각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외계 생물의 형상으로 나타나 인간과 소통하며 현대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높입니다.
정보라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 기괴함은 덜하지만, 이 책이 주는 현실적인 공포는 훨씬 큽니다. 예를 들어, <문어>에서는 강사법 개정으로 인해 대량 해고된 강사들의 농성 장면이 등장합니다. 문어를 삶아 먹는 위원장님의 행동은 현실의 부조리와 맞물리며 기괴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는 현실의 문제를 기괴한 상황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책 속의 각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해양 생물과 결합하여 다룹니다. <대게>는 러시아의 가스관 건설로 인한 해양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고발합니다. <상어>는 남편의 암 재발과 어머니의 병원 입원이라는 개인적 위기를 다루면서도, 신약 개발과 바이오 산업의 문제를 언급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독자가 사회적 문제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듭니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어>는 강사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작가가 직접 겪은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고, 독자가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개복치>에서는 주인공의 조카인 선우와 개복치의 만남을 통해 남들과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따뜻하게 전합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환경 문제, 노동 문제, 국제적 갈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특히, 마지막 <고래>에서는 원전 폐수 방류로 인한 해양 오염 문제를 다루며, 이러한 문제들이 단순히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합니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해양 생물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한 작품입니다. 정보라 작가는 현실과 공포, 기괴함과 희망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현실의 문제를 더욱 진지하게 바라보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