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 딱 한 번 - 치매와 돌봄 사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장복순(흑진주) 지음 / 밀크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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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인디캣 (@indiecat_hermitcrab ) 님의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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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알아보고, 함께했던 일을 떠올리는 것.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들이기에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능력인지조차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어제 나누었던 대화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반복되고, 함께 살아온 세월이 상대의 기억에서 하나씩 지워진다면 그때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장복순 작가의 《단 한 번, 딱 한 번》은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며 수많은 삶의 마지막을 지켜본 요양보호사이자, 뇌출혈로 말을 잃은 어머니를 5년 넘게 돌본 딸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치매라는 병이 한 사람의 기억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뿐 아니라,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가족과 돌봄 노동자의 복잡한 감정이 함께 담겨 있다.

🔖"치매는 가난과 부유함을 가리지 않는다. 학력도 직업도 예외가아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한 장면이다. 기억은 조금씩 흐려질 수 있다.
이름도 날짜도 젊은 날의 추억도 희미해질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치매가 개인의 기억만 무너뜨리는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환자에게는 익숙했던 세상이 낯선 공간으로 변하고, 가족에게는 평범했던 일상이 조금씩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 된다.

🔖 "집 안에는 또 음식 탄 냄새가 퍼진다. 사흘이 멀다고 냄비를 태우시고 가스레인지 위 음식을 깜박 잊으신다. 치매가 만들어낸 일상의 반복이다."

약속을 잊고,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일들. 그러나 냄비 위의 국이 타고, 가스레인지 위의 음식을 잊고, 가족의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순간이 반복되면 가족은 비로소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책 속 문장인 🔖"사람은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이름에는 얼굴이 담겨 있고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이 스며 있다."라는 대목이 특히 마음이 먹먹했다.

이름은 누군가를 구별하기 위한 호칭이 아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을 불러온다. 부모라는 이름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고, 자식이라는 이름에는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으며, 배우자라는 이름에는 서로의 청춘과 노년이 담겨 있다.

그런데 치매는 그토록 익숙했던 이름들을 하나씩 흐리게 만든다.
나를 낳아 준 어머니가 내 이름을 잊고,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가 나를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는 상황을 상상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기억 속에서 내가 사라진다고 해서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일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은 남아 있는 것일까.

책은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감정은 함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삶의 장면을 통해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더욱 눈여겨보게 된 부분은 돌봄을 감당하는 가족의 마음이다.

🔖"병이 깊어질수록 환자만 힘든 게 아니다. 곁을 지키는 가족도함께 지쳐 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을 이어 가다 보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질 때가 있다."

치매 환자를 이야기할 때 환자가 겪는 혼란과 고통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돌봄의 현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곁에는 또 다른 아픔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하고,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혹시라도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늘 긴장해야 하는 가족들.

잠시 외출하는 일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고, 자신의 생활과 계획을 뒤로 미루며 하루하루를 버텨 내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사랑과 책임감으로 시작했을 돌봄도 시간이 길어지면 지칠 수밖에 없다. 때로는 화가 나고,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너지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외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돌봄을 무조건적인 희생이나 아름다운 헌신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돌보는 사람에게도 휴식이 필요하고, 자신의 삶을 지킬 권리가 있으며,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부담을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사랑의 증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요양원 입소를 앞두고 망설이는 가족의 마음은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직접 모시지 못한다는 미안함과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고민했을까. 돌봄의 장소가 집에서 요양원으로 바뀐다고 사랑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돌보느냐보다 그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어떻게 존엄을 지켜 주느냐에 있을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101세 실향민 어르신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긴 그리움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열네 살에 홀로 고향을 떠나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삶. 한 사람의 기억 속에 평생 남아 있었을 고향과 가족을 생각하면, 기억이란 살아갈 이유를 붙잡아 주는 마음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보름 만에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워 교수가 되도록 뒷바라지했지만, 정작 그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이야기도 그렇다. 어머니가 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들을 향해 살아온 세월까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 있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살아온 시간은 아들의 삶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사랑은 반드시 기억하고 알아보는 것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사랑이 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끝까지 기억해 주는 사람의 마음에도 사랑이 있다.


책 속에서 저자의 어머니가 딸을 보자마자 손톱부터 살폈다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말을 잃은 어머니가 딸의 손톱을 살폈다는 것은 일상의 작은 행동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딸을 바라보고 보살펴 온 어머니의 마음이 겹쳐 보인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닐지 모른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사랑했던 시간이 모두 사라진 것도 아닐 것이다.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눈빛 하나, 무심코 건넨 손길 하나가 수많은 말보다 더 깊은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돌봄은 한 사람의 시간을 끝까지 존중하는 일이다.
치매 환자는 기억을 잃어 가는 사람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부모였고, 배우자였으며, 한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이다. 지금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잊을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게도 사랑했던 사람과 지켜 온 약속, 이루지 못한 꿈과 소중한 추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환자를 병의 이름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인지보다 무엇을 좋아했던 사람인지, 무엇을 잊었는지보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면 돌봄의 방식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돌봄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살펴야 한다.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소진되지 않도록 지켜 내는 일도 필요하다. 돌봄은 함께 나누어야 할 삶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 딱 한 번》.

많은 순간을 지나치지만, 지나간 뒤에야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곤 한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불러 주던 순간,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시간, 별다른 의미 없이 나누었던 평범한 대화들.

그 모든 것이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원히 주어지는 일상은 없다.

언젠가 기억이 흐려지고 서로의 이름을 잊는 날이 오더라도, 함께했던 시간만큼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함께한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 딱 한 번》은 기억을 잃어 가는 사람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 모두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이자,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금 더 다정해야 할 이유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이 책은 기억을 잃어 가는 사람의 곁에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돌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이야기해준다.

오늘도 당연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내일도 당연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을 오래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억은 언젠가 우리를 떠날 수 있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온 시간까지 헛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마지막까지 지켜 주는 것은 또렷한 기억이 아니라,
기억이 흐려진 뒤에도 그 사람을 놓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내가 지워지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던 시간만큼은 끝내 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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