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 패리시 부인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10월
평점 :
※본 게시물은 단맘 (@gbb_mom ) 님의 #르온서평단 을 통해
서교책방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완벽해 보이는 삶을 향한 질투, 그 우아한 얼굴 아래 숨겨진 위험한 욕망.
누군가의 삶이 유난히 눈부셔 보이는 순간이 있다. 좋은 집과 넉넉한 재산, 다정한 배우자, 사랑스러운 가족, 그리고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군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러움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 사람의 삶을 잠시 동경하는 것과 그 삶을 통째로 차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지만, 그 경계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무너지는 걸까?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타인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어떻게 집착으로 변하고, 그 집착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드는 위험한 계획으로 발전하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악의가 반드시 거칠고 위협적인 얼굴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 악의는 상냥한 미소와 세심한 배려, 상대를 이해하는 듯한 말투를 빌려 가장 자연스럽게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다. 내게는 허락된 적 없는 모든 것이”
주인공 앰버 패터슨에게 대프니 패리시는 아름다운 외모와 부유한 환경,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 풍요로운 가정까지. 앰버의 눈에 비친 대프니는 자신이 평생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존재다. 앰버는 그 세계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우연을 가장해 대프니에게 접근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으며, 마침내 그 삶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는다.
그녀의 목표가 무서운 이유는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한다는 데 있다.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보며 자신에게도 그런 삶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 행복을 누리는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마음 사이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 앰버는 그 선을 조금씩 지워간다.
책 속에서 앰버는 대프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그녀가 착용한 귀걸이와 팔찌, 다이아몬드 반지의 가격을 계산한다. 대프니가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순간조차 앰버에게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할 기회가 아니라, 자신과 상대의 처지를 비교할 기회일 뿐이다.
🔖“마른 55 사이즈 몸에 적어도 십만 달러를 걸치고 다니면서 어린 시절이 슬펐다고 징징거리기나 하다니.”
이 문장에서 섬뜩함을 느끼는 이유는 앰버의 질투가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프니가 가진 물질적인 풍요를 보면서 그 이면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처까지 무시한다. 부유한 사람에게도 슬픔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보다 많이 가진 사람은 고통마저 사치처럼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 장면을 읽으며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쉽게 왜곡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보면서 자신의 평범한 하루와 비교하곤 한다. 그러나 타인의 삶은 겉으로 드러난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시간과 감정, 관계의 복잡함까지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눈앞에 보이는 몇 가지 조건만으로 상대의 삶 전체를 판단한다.
앰버의 문제는 대프니를 부러워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부러움을 자신의 결핍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대신, 상대를 향한 적대감으로 바꾸고 있다는 데 있다.
질투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보는 감정이지만, 집착은 상대가 가진 것마저 내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 순간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대프니의 삶을 향한 앰버의 욕망이 점점 커질수록 그녀의 행동은 더욱 정교해진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고, 관심을 끌 만한 선물을 준비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조절한다. 잭슨에게 고서인 [라스코 동굴벽화]를 선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앰버는 상대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것을 관계를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이처럼 평범한 인간관계에서 출발하는 신뢰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 보여준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과 누군가의 마음을 이용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전혀 다르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대프니의 삶을 바라보는 앰버의 시선이다.
🔖“앰버는 아기 때부터 삶의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는 이런 세계에서 자라면 느낌이 어떨지 궁금했다.”
이 문장에는 앰버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담겨 있다. 그녀가 부러워하는 것은 지금 눈앞에 놓인 저택이나 보석만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과는 다른 기회를 누리고,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며,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삶 자체를 탐내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사실은 때로 깊은 박탈감을 낳고,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자신에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앰버의 질투에는 이러한 결핍의 감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결핍이 타인을 해치는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해하는 것과 용납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앰버가 왜 그런 욕망을 품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녀의 행동을 변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어두운 면이 어떤 감정에서 출발해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은 처음부터 거대한 악의의 형태로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불공평하다는 생각, 억울함, 부러움, 자신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감각이 반복되면서 상대의 행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대가 가진 것을 얻는 일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진다면, 욕망은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앰버는 자신의 결핍을 타인의 삶을 통해 해결하려는 인물이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정당화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고, 자신이 그 자리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을 빼앗으려는 욕망은 타인을 한 사람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연결된다.
반면 대프니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삶은 정말 완벽할까?'
앰버가 바라보는 대프니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그 삶의 안쪽에서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풍요로움만으로는 그 사람의 감정이나 관계의 실체를 모두 알 수 없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밀과 수상한 단서들은 독자로 하여금 인물에 대한 판단을 끊임없이 다시 하게 만든다.
특히 앰버가 대프니의 집에서 발견하는 진주 손잡이의 작은 권총과 총열에 새겨진 'YMB'라는 머리글자는 평온해 보이는 공간에 균열을 일으킨다. 아름답게 정돈된 방과 오래된 물건들 사이에 놓인 총은 그 자체로 여러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왜 그곳에 총이 있는지, 그 이니셜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지금까지 보아온 인물들의 모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단서가 흥미로운 까닭은 사건의 정체를 알고 싶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과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풍경에 작은 의문 하나가 놓이는 순간, 그 풍경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리 스릴러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자는 등장인물의 행동을 관찰하며 나름대로 이유를 추측하고, 몇몇 단서를 연결해 이야기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 앞서 내렸던 판단을 수정해야 한다. 확신했던 해석이 흔들리고, 사소하다고 여겼던 장면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앰버와 대프니의 시점을 통해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의 이야기를 먼저 듣느냐에 따라 인물에 대한 인상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독자는 자신이 무엇을 근거로 인물을 믿고 판단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또 하나의 주제는 '완벽한 삶'에 대한 우리의 환상이다. 앰버는 대프니가 가진 것을 차례로 바라보며 자신에게 없는 것들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삶을 손에 넣는다고 해서 자신의 결핍까지 사라질 수 있을까?
욕망은 대상을 얻는 순간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비교 대상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더라도 그것을 잃을까 봐 불안해질 수 있다. 타인의 삶을 기준으로 자신의 행복을 측정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가진 것조차 온전히 바라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대프니의 삶이 앰버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녀에게 행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기보다, 다른 사람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앰버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동시에, 설령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이러한 심리적 질문을 긴장감 있는 사건 속에 녹여낸 작품이다. 인물들의 욕망과 비밀이 얽히면서 이야기는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독자가 예상했던 결론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앞서 등장한 장면과 대사를 기억하며 읽을수록 인물의 행동을 다시 해석하게 되고, 누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인물을 쉽게 믿거나 단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관한 질문이 놓여 있다.
누군가가 가진 것을 부러워할 때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이 갖고 싶은 일부만을 보고 있는가?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는 것은 완벽해 보이는 삶을 향한 동경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집착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삶이 눈부셔 보일 때, 그 삶을 부러워할 수 있다. 더 나은 조건을 원할 수도 있고, 지금보다 풍요로운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반드시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타인의 행복이 나의 불행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삶이 빛난다고 해서 나의 삶이 무가치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타인의 삶을 훔치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행복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되묻게 하는 이야기다.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삶은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이미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욱 빛나 보이는 삶일까?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보며 자신의 결핍만 확인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보다 타인의 삶을 차지하는 일에 더 많은 마음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삶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 선망과 질투가 뒤엉킨 심리,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긴장감. 이 모든 요소가 맞물리는 《마지막 패리시 부인》.
화려한 저택과 아름다운 장신구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고 믿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 독자는 마지막 장에 도착할 때까지 이 이야기를 쉽게 놓지 못하게 된다.
_
#마지막패리시부인 #서교책방 #리브콘스탄틴
#소설 #추리소설 #영미소설 #소설추천 #신간 #책소개
#책추천 #도서리뷰 #책리뷰 #베스트셀러 #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