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케 호모 - 제1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의 99퍼센트가 사라진 세계. 문명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간다. 그 황량한 세상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소녀 서브와 그녀를 돌보는 남자 노먼은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떠난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인류 재건의 희망이 기다린다는 도시 지텍이다.

오수완 작가의 《에케 호모》는 재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독자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살아남는 방법보다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을까.
생존이 최우선인 세상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사치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세상을 다시 세운다는 명분 아래 가장 먼저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폐허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러한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낯선 세계의 비밀을 알아가는 SF의 재미와 두 인물이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이 맞물리면서,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까지 들여다보는 여정이 된다.


재난이 일어나고 문명이 붕괴하면 사람들은 무엇부터 복구하려 할까.
무너진 건물을 세우고, 먹을 것을 구하고,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예술과 문학, 교육 같은 것들은 뒤로 밀려나기 쉽다.

하지만 생존에 필요한 것만 남긴 세상은 과연 인간이 살아갈 만한 세상일까.

책 속에서 노먼은 서브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친다. 서브가 글자를 알아보고, 모르는 글자를 익히고, 마침내 혼자 책을 읽어 나가는 과정은 무척 인상적이다.

🔖“아무 책이나 집어 그림을 보고 글자들을 읽는다. 아는 글자도 모르는 글자도 있다. 읽을수록 아는 글자들이 많아진다. 나는 쌓아둔 책들을 차례로 읽는다.”

이 문장에서 배움이란 누군가가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글자가 조금씩 의미를 갖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한 겹씩 넓어진다. 서브에게 책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을 만나고, 언젠가 홀로 남겨지더라도 자기만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다.

특히 모든 것이 사라진 세계에서 책을 가르친다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스스로 상상하도록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먼과 서브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사랑과 책임이라는 단어 앞에 오래 머물게 된다.

노먼은 서브를 보호하고, 먹을 것을 구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그녀를 지켜 낸다. 그는 서브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동시에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도 알려 주려 한다. 하지만 무너진 세상에서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고, 다른 사람을 돕는 선택이 때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를 위해 이 기록을 남겨둔다. 네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다. 나에 대해, 내가 한 일들에 대해. 선택과 이유에 대해.”

이 기록에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 그 선택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함께 담겨 있는 듯하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내린 결정은 당사자에게 언제나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불가피했다고 생각했던 선택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나의 행동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너는 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지 알려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문장에서 노먼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꼈다. 누군가를 보호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정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믿더라도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책임이란 자신의 선택이 남긴 결과를 끝까지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무엇이 좋은지 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선택권을 대신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보호는 언젠가 스스로 판단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노먼이 서브에게 책을 읽게 하고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는 서브가 지금 당장 안전하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신이 곁에 없을 미래에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마음은 사랑의 가장 따뜻한 모습이면서도 가장 아픈 모습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젠가 자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작품 속 프라임을 둘러싼 믿음 역시 흥미로웠다. 어떤 이들은 강림을 파괴와 죽음의 재난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을 새로운 시대를 위한 시련이라고 해석한다.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도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믿음이 인간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 또 그 믿음이 어떻게 위험해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믿음은 절망 속에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믿는 것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확신하는 순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만이 아니라, 그 믿음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만들어 내느냐는 점일 것이다. 누군가를 살리고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믿음과 타인을 배제하고 희생시키는 믿음은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말에서일까, 아니면 타인의 고통 앞에서 실제로 보여 주는 행동에서일까.

나는 《에케 호모》가 인간을 추상적인 관념으로 설명하기보다, 구체적인 선택의 순간에 세워 놓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인간은 자신을 선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선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누가 살아남았으며, 누구의 고통을 외면했는지 돌아볼 때 비로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엑스포를 선전하는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만들어가는 미래. 살아 있는 역사.”

미래를 만든다는 말은 희망적으로 들린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세울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그러나 미래를 만든다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까. 그 미래에 포함되는 사람과 배제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재난 이후의 사회에서도 기존의 차별과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되풀이된다. 노먼은 서브에게 책을 사 주려 하지만, 한 가게의 여자는 인류를 재건하는 데 책은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로 말한다.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개인의 배움보다 인류의 재생산을 앞세우는 사고방식이다.

세계가 무너졌다고 해서 오래된 편견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의 권력관계가 더 강하게 되살아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불안할수록 익숙한 규칙에 의지하고, 누군가에게 정해진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문명을 복구한다는 말이 반드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고 인구를 늘린다고 해서 사회가 저절로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차별과 억압을 그대로 되살린다면, 새롭게 만들어진 세계는 이름만 다를 뿐 과거의 문제를 반복할 수 있다.

진정한 재건은 무엇을 복원할 것인지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과거의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가치는 이어 가고 버려야 할 잘못은 반복하지 않는 것. 이것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산일 것이다.



책 속에서 노먼은 강림 이전의 영화를 복원했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서브에게도 그 영화를 보여 주고 싶어 한다. 영화는 자신이 기억하는 세계를 서브와 나누고, 그녀에게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문화를 전해 주는 매개가 된다.

이 설정이 특히 좋았다. 인류의 대부분이 사라진 세계에서 영화 한 편을 함께 본다는 계획은 얼핏 사소해 보인다. 먹을 것과 안전이 먼저인 상황에서 영화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도 아니고, 생존을 보장해 주는 기술도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지닌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같은 장면을 보며 웃고,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이야말로 삶을 생존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준다.


특히 서브와 노먼에게 영화 관람은 두 사람만의 기억이 될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함께 경험한 순간은 두 사람의 관계 안에 남는다. 문명의 역사가 사라지더라도 개인의 기억과 감정은 또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만들어 간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생각했다. 좋아하는 책을 권하고, 인상 깊은 문장을 보여 주고, 어떤 장면이 마음에 남았는지 이야기하는 일. 그런 평범한 행동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세계를 내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에케 호모》라는 제목을 다시 떠올려 본다. 이 사람을 보라.

그 말은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며 평가하라는 뜻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요청처럼 다가온다.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누구를 지키려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라는 뜻으로 말이다.

세상이 무너진 뒤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삶의 의미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관계를 맺고, 기억을 전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문명을 똑같이 복원하는 능력만이 아닐 것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판단하는 지혜,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 그리고 정답을 확신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자신의 선택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서브가 책을 읽으며 세계를 알아 가듯, 우리 역시 타인의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상을 배운다. 책 한 권이 당장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한 사람의 시야를 넓히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다. 그런 변화가 쌓인다면 새로운 세계는 훨씬 작은 곳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우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구한다는 말보다 어려운 것은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끝난 뒤에도 우리가 끝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려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우고, 기억하고,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마음 말이다.

폐허가 된 세계를 달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되돌려 주는 질문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언젠가 다시 이 책을 펼친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이 사람을 보라'라는 제목을 읽게 되지 않을까.

_
※본 게시물은 #책읽는쥬리 (@happiness_jury ) 님 서평단 모집을 통해 #다산북스 (@dasanbooks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에케호모 #오수완 #다산책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