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쫄지 마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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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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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맞서며,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 그런데 만약 그 믿음이 어느 순간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명분으로 변한다면 어떨까.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 만나는 홀리 기브니는 서로 다른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들 사이에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눈앞에 닥친 위험을 막아야 하는 사람이다. 한쪽에서는 잘못된 판결로 무고한 죽음을 초래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며 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려는 범인이 등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 인권 운동가를 향한 집요한 스토킹과 테러 위협이 이어진다.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두 사건을 움직이는 힘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확신이다.
누군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살인을 계획하고, 누군가는 종교적 신념과 개인적인 적대감을 앞세워 타인을 위협한다. 자신이 믿는 가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타인의 삶과 선택은 더 이상 존중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제거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이 지점이 《절대 쫄지 마》를 연쇄 살인 미스터리 이상의 작품으로 느끼게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책에서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범인이 자신의 살인을 악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무고한 사람이 부당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잘못된 판결과 억울한 죽음이라는 문제의식 자체를 따져 보기 전에, 그가 선택한 해결 방식부터 이미 모순에 빠져 있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과연 정의일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일과 죄 없는 사람을 희생시켜 고통을 되돌려 주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도 범인은 자신의 행동을 속죄라고 부른다. 자신의 폭력을 정의로운 행위로 해석함으로써 죄책감마저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특히 다음 문장은 작품의 비틀린 논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열세 명의 죄 없는 자와 한 명의 죄지은 자를 살해할 것이다. 그로써 죄 없는 자의 죽음을 초래한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속죄 행위다.”

마지막에 놓인 ‘속죄 행위’라는 표현이 무섭다. 속죄는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만, 이 인물에게 속죄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다. 자신의 논리에 맞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어 내면서도, 그 결과를 정의의 실현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소설 속 범죄자만의 특이한 논리로 치부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도 누군가의 잘못을 알게 되면 분노가 먼저 앞설 때가 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분노가 커질수록 사실을 확인하기보다 먼저 비난하고, 책임을 묻기보다 응징을 원하며, 때로는 잘못과 무관한 사람에게까지 적대감을 확장하기도 한다.

물론 분노와 범죄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다만 분노가 정의를 대신하고, 응징이 책임을 대신하기 시작할 때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절대 쫄지 마》는 정의로운 목적이 언제나 정의로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타인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순간, 그 명분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무너뜨린다.

작품에 등장하는 블랙스톤 원칙은 형사사법에서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일을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설은 이 원칙을 뒤틀어 놓은 범인의 논리를 통해 사법 제도의 오류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실제로 잘못된 판결이 발생하고, 증거 조작이나 권력의 개입으로 진실이 가려진다면 그 피해는 한 사람의 삶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피해자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사건을 담당한 사람들, 그리고 사법 제도를 신뢰했던 사회 전체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사법 제도의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이 사적 제재가 될 수는 없다.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증거를 재검토하고, 책임을 규명하며, 정해진 절차를 통해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사법 제도의 오류를 이유로 또 다른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잘못을 반복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범인의 논리는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다. 죄 없는 사람의 죽음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세상에 증명하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진실은 밝혀지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가 정말로 정의를 원했다면, 왜 또 다른 피해자가 필요했을까?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진실과 권력의 관계다. 잘못된 판결의 배경에는 증거를 조작한 사람이 있고, 그 진실은 뒤늦게 세상에 드러난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졌다는 사실과 잘못된 결과가 바로잡힌다는 사실은 다르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홀리 기브니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녀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두려움과 부담을 마주하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다고 해서 위험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홀리는 연쇄 살인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는 동시에 여성 인권 운동가 케이트 매케이를 향한 위협에도 대응해야 한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하나는 이미 벌어진 살인과 그 뒤에 숨은 논리를 추적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를 막기 위해 시간과 싸우게 한다.

독자는 범인의 정체와 다음 희생자를 궁금해하면서도, 홀리가 각각의 위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지 지켜보게 된다. 사건이 복잡해질수록 중요한 것은 눈앞에 드러난 사실을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단서의 연결고리를 살피며, 위협받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판단을 이어 가는 태도다.

이런 점에서 홀리가 작품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범죄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내세운다면, 홀리는 그 신념에 휩쓸리지 않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사실인지, 누가 옳다고 주장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제목인 《절대 쫄지 마》는 공포에 압도되어 판단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두려움이 없어서 용감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지 않는 것. 홀리의 활약에서 발견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그런 종류의 용기일 것이다.


범죄와 추적이 중심인 이야기 속에서 유독 오래 시선이 머무는 문장도 있었다.

🔖“엄마의 딸이 되어 드릴게요.” 그는 엄마의 가슴에 기대고서 말했다. “엄마의 아들도 되어 드릴게요. 저는 둘 다 될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딸이 되고 아들이 된다는 말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랑과 위로를 기꺼이 건네겠다는 약속처럼 들린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반드시 하나의 역할이나 형태로만 규정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것은 정해진 이름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장이 살인과 증오, 왜곡된 신념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의 마음에 기대어 자신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마음을 내어 주며 타인을 지탱하려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닐까.

이 문장은 사건의 소음 속에서도 인간적인 마음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남길 수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쫄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 속 문장 중에서는 다음 구절도 제목과 함께 기억하고 싶다.

🔖“막판까지 깡으로 버텨야 해. 쫄지 말고, 한눈팔지 말고.”

살다 보면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결과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지치기도 한다. 그럴 때 쫄지 말라는 말은 지금 마주한 현실에서 시선을 돌리지 말라는 당부처럼 느껴진다.

홀리가 마주하는 범죄는 개인의 용기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증거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위험을 예상하며, 필요한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제목의 메시지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는 태도의 의미로 읽혀졌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진실이 밝혀지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분노가 판단을 대신하고, 복수가 정의를 대신한다면 처음에 지키고 싶었던 가치마저 훼손될 수 있다.

죄 없는 사람의 죽음이 잘못이라고 주장하면서 또 다른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논리에 맞지 않는 사실은 외면하는 일. 신념을 지키겠다며 다른 사람의 선택과 삶을 부정하는 일. 이 모든 모순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만으로는 올바른 행동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정의란 잘못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책임을 물을 때조차 또 다른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의를 바로잡겠다며 또 다른 죄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 폭주를 막기 위해 끝까지 진실을 추적하는 홀리 기브니. 《절대 쫄지 마》는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서늘한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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