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킴
에바 틴드 지음, 허여 셀린느 옮김 / 산지니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나는 비행기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이 문장은 《민 킴》이라는 책을 받아 읽기 전부터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출생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낯선 나라로 보내졌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삶의 출발점에서는 분리되고, 자신의 이름과 가족, 언어와 기억까지 다른 체계 속에서 다시 부여받아야 했던 한 인간의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1975년, 김남숙과 김미인은 다른 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다. 남숙은 에바가 되고, 미인은 꿀마이가 된다. 같은 날 같은 비행기를 타고 떠난 두 아이였지만,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린 시절 서로 편지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열두 살 무렵 연락이 끊기고, 무려 30년이 지나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은 보통의 재회가 아니었다.

한 사람은 자신이 겪어온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듣고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여성의 기억은 한 권의 책이 된다.

🤔 “왜 입양인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만 말해왔는가?”

이 책에서 느낀 것은 ‘입양’이라는 단어 하나로 너무 많은 삶을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입양을 이야기할 때 흔히 사랑, 새로운 가족, 새로운 삶, 구원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실제로 입양을 통해 사랑과 안정된 삶을 얻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입양인의 경험을 대표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얻은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뿌리를 잃은 일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가족 안에서조차 폭력과 학대를 경험해야 했던 일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감사해야 한다’는 말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겉으로 보면 선의에서 비롯된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을 계속해서 들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말할 권리를 빼앗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가족을 얻었으니 감사해야 하고,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으니 감사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묻지 않는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받았다는 사실과 상처받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민 킴의 이야기는 이 책을 입양 에세이나 성장담으로만 읽을 수 없게 만든다. 입양 가족 안에서 경험한 폭력과 학대, 그리고 그것을 말할 수 없었던 시간은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는 한 문장으로 절대로 지워질 수 없다.

더 아픈 것은 아이를 국경 너머로 보내는 과정에는 여러 기관과 서류와 절차가 존재했지만, 그렇게 보내진 아이가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장치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를 보내는 시스템은 있었지만 아이를 보호하는 시스템은 부족했다는 문제의식은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또 하나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이름이었다.
김미인이라는 이름을 떠나 꿀마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한 사람이 다시 자신의 이름을 찾는 과정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타인이 붙여준 정체성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나를 누가 불렀는지, 어떤 기억 속에서 자라났는지를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 킴이 자신의 옛 이름을 되찾고 스스로를 새롭게 명명하는 과정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처럼 느껴졌다. 빼앗겼던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은 자기 삶의 서술권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못생긴 아이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변해 가는 시절을 맞았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으며 오히려 뒤에 이어지는 생각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외모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모델로 활동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예쁘다고 말해주어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반복해서 ‘다르다’고 느꼈던 경험. 즉,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 언어와 문화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매일 자신의 존재가 주변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동양적으로 예쁘다”는 칭찬이었을 말조차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씁쓸했다.

또 하나의 장면은 아이와 함께 금발의 공주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읽다가 결국 그 공주의 머리카락을 검은색으로 칠해버렸다는 부분이다.

🔖“나는 매직펜을 들어 그 금발 공주의 머리칼을 검은색으로 칠해버렸다.”

이 짧은 행동에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금발과 하얀 피부,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순간, 그 세계를 직접 바꾸어버린 것이다.

금발의 공주를 검은 머리의 공주로 바꾸는 작은 행동.
그것은 “우리의 모습도 이야기 속에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책이나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평범한 얼굴’이 과연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것은 ‘나도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감각과 연결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민 킴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무거웠던 부분은 폭력으로 인해 한 사람이 점점 말을 잃어가는 모습이었다.

🔖“점점 더 희미해지고 긴 문장으로 말하기를 멈추고 느리게, 더 느리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 문장은 폭력의 결과를 굉장히 조용하게 보여준다.
폭력은 반드시 몸에 남는 상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가는 과정 역시 폭력의 흔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더욱 의미가 깊어진다.

말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는 것은 때로 다시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말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에바와 민 킴의 이야기는 상처를 상처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


🔖“제 서류에는 제가 고아라고 적혀 있었어요.”

한 사람의 신분을 기록하는 서류에서 ‘고아’라는 단어 하나가 붙는 것은 그 사람의 가족관계와 과거,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출생과 가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입양인은 자신의 출생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다른 사람의 결정과 제도, 기록에 의해 가려질 수 있었다. 그 사실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마음을 무겁게 했다.

‘뿌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처음에는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 자신의 친생가족이나 출생지를 확인하는 문제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이 훨씬 넓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한때 나의 입양이 다행스러운 사건이었고 사랑의 행위였으며 하나의 모험이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러나 이제 나는 그것이 결코 온전한 진실이 아님을 안다”는 고백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처럼 느껴졌다.

입양이 누군가에게 사랑이었을 수 있다는 사실과,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 상실과 폭력의 경험이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이야기를 지우고 다른 하나만을 ‘진실’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민 킴》은 입양을 둘러싼 단 하나의 완성된 서사를 의심하게 하는 책이라고 느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사실은 누군가가 정리해준 이야기일 수도 있다. ‘버려진 아이가 좋은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안에는 아이가 잃어버린 이름, 가족, 언어, 문화, 기억,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

진실은 때로 아름답지 않다. 불편하고 복잡하며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진실을 지워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입양이 여전히 합법적 관행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의 출생에 관한 진실을 찾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이 모르는 가족의 역사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부모가 말하지 않는 과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공백을 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삶을 다른 사람이 대신 정의할 권리가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고 자신의 이름과 뿌리를 다시 선택할 권리를 우리는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두 아이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지만, 그 비행기가 데려간 곳은 서로 달랐다. 그리고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두 여성은 다시 만나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한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록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옛 이름을 되찾으며 스스로를 다시 명명한다.

그 모습이 참 오래 남는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과,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 것이다. 《민 킴》은 그 차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나니 ‘뿌리를 찾는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뿌리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를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더 이상 침묵으로 물려주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가장 깊은 의미의 ‘돌아감’일지도 모르겠다.

《민 킴》은 입양이라는 제도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지워진 이름과 기억도 다시 불러낼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보여준다.

한 사람의 과거를 대신 써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직접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이것이 입양과 입양인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배워야 할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진실은 훨씬 더 거대하고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진실을 대신 지워줄 수는 없다.
《민 킴》이 끝까지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삶을 설명할 권리는 당신에게 있다고.
당신의 이름을 부를 권리도, 당신의 뿌리를 찾을 권리도,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당신의 언어로 말할 권리도 결국 당신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일은, 비로소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_

#민킴 #산지니출판사 #에바틴드
#신간 #신간소개 #신간도서 #북유럽소설
#소설 #소설책 #소설추천 #소설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