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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사슴뿔버섯 - 서순희 장편소설
서순희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이 게시물은 마이디어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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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난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특히 한 사람이 성장하는 동안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상처,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서순희 작가의 《붉은사슴뿔버섯》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처럼 다가왔다. 한 장애 소녀의 성장기를 따라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개인의 삶을 넘어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 사라져갔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엄만 왜 나를 낳았어? 이렇게 병신으로 키울 거면서 왜 나를 낳았냐고!”
이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윤희에게 이 말은 원망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을 불편한 존재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분노이면서, 그런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가족을 향한 절망이고, 무엇보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어린 마음의 처절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붉은사슴뿔버섯》은 장애를 가진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이지만, 한 인물이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로만 읽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윤희가 성장하는 동안 함께 변하는 것은 그녀의 몸과 마음 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가족과 학교, 공장과 도시,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빠르게 달라진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산업화가 있었다.
1960~70년대 대구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도시였겠지만, 윤희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으로 취급받는지를 뼈아프게 깨닫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고향의 바닷가와 논밭을 뒤로하고 대구로 옮겨온 윤희가 마주한 것은 발전의 빛만이 아니었다. 가난, 차별, 가족의 붕괴, 돈을 향한 욕망, 성적 욕망과 폭력적인 관계들이 뒤엉킨 세계였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성장’이라는 단어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성장한다는 것은 윤희에게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도 알아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윤희가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다리의 자유가 아니라 ‘안전한 세계’였는지도 모르겠다.
대천의 바닷가 마을에서 할머니 등에 업혀 바라보던 풍경은 윤희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세계, 아직 사람들의 욕망과 계산을 알지 못했던 세계에 가깝다. 그런데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 대구로 오면서 그 세계가 무너진다.
🔖“눈을 감으면 고향 오포리의 논밭과 일렁거리는 바닷가의 전경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이 문장에서 마음에 남는 것은 ‘그리움’의 크기다. 윤희는 살던 곳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에서 윤희는 목발을 짚고 학교에 간다. 하지만 학교는 배움의 공간인 동시에 차별을 경험하는 공간이 된다.
아이들이 던지는 돌은 윤희에게는 자신의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시키는 폭력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이야기할 때 흔히 ‘장애를 극복했다’는 표현을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질문이 생긴다.
정말 윤희가 극복해야 했던 것은 자신의 장애였을까?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극복해야 했던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무능하거나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이 차이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윤희의 몸은 그녀의 삶을 제한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지만, 그녀를 가장 깊이 상처 입힌 것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미워하게 된 데에는 자신의 몸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붉은사슴뿔버섯’은 왜 그렇게 붉어야 했을까.
아름답게 보이지만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버섯.
나는 이 버섯이 윤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붉고 강렬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죽음에 이를 만큼 위험한 독이 있다.
윤희의 마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독이 쌓인다.
🔖“내 마음속 시커먼 웅덩이에는 탁한 물이 고였고 그곳에서 독버섯이, 그 어떤 분노가 자라났다.”
이 문장은 이 소설에서 윤희의 내면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표현 중 하나라고 느꼈다. 분노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무시당하고, 상처받고, 이해받지 못하고,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까지 자기 탓으로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에 무언가가 자라기 시작한다.
그것이 윤희에게는 ‘독버섯’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독버섯이 처음부터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분노였고, 그다음에는 원망이었고, 그다음에는 자책이었으며, 결국에는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해간다.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이 이렇게 섬뜩하게 묘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윤희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낯선 사람들만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언제나 안식처는 아니기에,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녀를 더 깊이 흔든다.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의 죽음, 미란의 등장, 이복동생, 그리고 무너져가는 집.
특히 어머니의 죽음 이후 윤희에게 집은 더 이상 예전의 집이 아니다.
엄마가 사라진 집에서 윤희는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가출’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탈출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이 아픈 이유는 윤희가 악한 사람들만 만나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
아버지도, 미란도, 주변의 어른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원한다. 돈을 원하고, 사랑을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 욕망을 채우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악은 특별히 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가난과 차별, 돈에 대한 집착, 성별과 장애에 대한 편견,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벌어지는 억압처럼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윤희와 상범의 관계는 이 소설에서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윤희는 자신을 장애인이라는 틀 안에 가두지 않고 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상범에게 마음이 기울어간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친절이 윤희에게는 너무 특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범에게서 느낀 작은 다정함이 윤희에게는 사랑으로 커져갔을 것이다.
그 마음이 결국 다음과 같은 절박한 말로 터져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 아프다.
🔖“나 한 번만 안아줘. 아니, 나하고 자도 돼. 절대 책임지라고 안 할게. 발목 잡지도 않을게.”
이 문장을 읽으며 윤희가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동시에 더 슬펐던 것은 윤희가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발목 잡지도 않겠다’는 말은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기보다, 자신이 상대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내놓는 자기 포기처럼 느껴진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욕망을 느끼며, 질투하고 상처받는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도 사회는 오랫동안 장애인의 욕망과 사랑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취급해온 부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희의 욕망은 불편하면서도 중요하다.
그녀 역시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윤희에 대해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상처받은 사람은 어디까지 책임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윤희에게는 분명 분노가 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은 아무 이유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작품이 바로 그 애매한 지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윤희는 완벽하게 선한 인물도 아니고, 모든 것을 극복한 성녀도 아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욕망에 휘둘린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독자들은 성장소설의 주인공에게 마지막에는 모든 상처를 극복하고 훌륭한 어른이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성장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 성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윤희의 성장은 ‘극복’보다는 ‘생존’에 가깝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60~70년대이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지금의 사회를 떠올리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가?
도시가 발전하면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가?
돈이 많아지면 사람들의 삶도 반드시 풍요로워지는가?
작품 속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와 사람의 마음이 성장하는 속도는 반드시 같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도시 밖으로 밀려났고, 누군가는 가난 때문에 자신의 존엄을 포기해야 했으며, 누군가는 장애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과거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에도 경제적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거나,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쉽게 배제하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스스로 극복하라’고 요구하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붉은사슴뿔버섯》은 과거를 재현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비추고 있다고 느껴진다.
윤희가 보여주는 ‘성장’의 의미는 자신도 상처받았던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에 가깝다.
처음의 윤희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더 외롭고, 더 힘겨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만 바라보던 시선이 조금씩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나는 이것이 윤희의 진짜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알아볼 가능성이 생긴다.
윤희가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의 고통이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을 가지고도 세상 속으로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덮은 뒤에도 남는 것은 ‘죽음’보다 ‘삶’이었다.
붉은 독버섯을 바라보며 죽고 싶어 하는 윤희의 모습보다, 그럼에도 결국 가출하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윤희의 모습이 더 오래 남았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붉은사슴뿔버섯은 죽음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그것은 윤희의 마음속에서 자란 분노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분노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받고 싶지 않았다면 상범을 향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을 것이다. 살고 싶지 않았다면 ‘새로운 인생’을 다짐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윤희가 그렇게 많은 불행을 겪고도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까’를 더 생각하게 됐다.
성장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것.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무너뜨렸던 것들만으로 내 인생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였던 성장의 의미가 아닐까.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하죠? 신이 계시다면 이럴 순 없어.”
윤희의 이 질문에는 부당한 일을 겪으며 한 번쯤 세상에 던져본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살다 보면 정말 설명할 수 없는 불공평함을 만날 때가 있다.
착한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산 사람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붉은사슴뿔버섯》은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해주는 듯하다.
세상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붉은사슴뿔버섯처럼 치명적인 독을 품은 시대와 욕망 속에서도
윤희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고.
아마도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완벽하게 깨끗한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리고 그 한 걸음이 비록 목발을 짚은 걸음일지라도,
자신의 힘으로 내디딘 것이라면
그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삶의 증거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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