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피 - 베로니카 곤살레스 라포르테 장편소설
베로니카 곤살레스 라포르테 지음, 최혜정 옮김 / 슬로우리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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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슬로우리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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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박피》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먼저 떠오른 생각은 ‘껍질을 벗겨낸다’는 이미지였다. 피부는 우리 몸을 가장 먼저 감싸고 있는 표면이지만, 피부 아래에는 근육과 혈관, 장기처럼 훨씬 복잡하고 연약한 것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박피’라는 단어는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과 그 아래 감춰진 욕망과 상처를 들여다보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이 소설은 성형외과 의사 지호와 그가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만들어낸 AI 리얼돌 ‘성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성미는 지호가 원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준다.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거절과 갈등, 실망과 오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점에서 성미는 리얼돌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처럼 다가왔다. 지호가 만든 것은 어쩌면 ‘완벽한 연인’이 아니라 자신이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관계였던 것은 아닐까.

현실의 사랑은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없다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나와 다른 생각이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할 자유가 있다. 때로는 나를 거절하기도 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과 예측할 수 없음이 인간관계를 인간관계답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호가 성미에게 점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편안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나를 거절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얼마나 달콤할까. 하지만 그 편안함이 현실의 관계를 견디는 힘을 오히려 빼앗아간다면 어떨까.

책 속에서 성미는 이렇게 말한다.
🔖“내 모든 영혼을 걸고 사랑해.”
“거짓말하지 마.”
“자기 왜 그래?”
“당신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 아니, 애초에 감정을 느낄 수가 없는 거였지.”

이 장면은 《박피》가 독자에게 하고자 하는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처럼 느껴졌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사랑을 느끼는 것은 같은 것일까.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며,
내가 외롭지 않도록 언제나 곁에 있어준다고 해도 그 존재에게
자신의 의지와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맞춰 완벽하게 만들어진 존재를 원할 수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성형외과라는 공간과 성미의 존재가 연결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성형은 외모를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깝게 바꾸는 행위이고, 지호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연인의 모습과 반응까지 만들어낸다.
몸의 표면을 다듬는 것에서 시작해 관계의 상대방까지 ‘맞춤형’으로 만들려는 욕망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아름다움일까.
아니면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함일까.

책을 읽으며 알고리즘도 떠올랐다. 오늘날 검색하고, 영상을 보고,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자신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추천받는다.
불편한 것은 조금씩 멀어지고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이 내 화면을 채운다.

성미가 어쩌면 이런 세계의 극단적인 형태처럼 느껴졌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고, 나를 거절하지 않는 존재.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그럴 수 없다.
상대방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때로는 내 기대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사랑은 피곤하고 어렵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관계는 살아 있는 것이 된다.

🔖“다른 사람들도 다 실수하며 살아. 이 세상에 완벽한 관계가 어디 있어.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타인을 완전히 알 수는 없는 거야. 가끔은 스스로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를 때가 있잖아.”

완벽한 관계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꾸 완벽한 관계를 꿈꾸게 된다. 나를 완전히 이해해주는 사람,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나를 안아주는 사람을 바란다.
하지만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사랑의 일부일 것이다.

그래서 지호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사랑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랑하면서 발생하는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미는 지호의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인 동시에 그의 외로움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최첨단 기술과 무속신앙이 한 작품 안에서 충돌한다는 점이었다. 지호는 AI라는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통해 자신의 삶과 욕망을 통제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무당의 말 앞에서는 흔들린다.

🔖“자연에 반하는 행동이라뇨?"

이 문장은 작품의 분위기를 조금 더 넓은 영역으로 끌어가는 듯했다.
인간은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처럼 여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박피》 속 지호의 불안은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뿐 아니라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와 마주하는 순간의 불안처럼 느껴졌다.

팬데믹이라는 배경도 이러한 이야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 사람 사이의 단절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고립감을 경험하게 했던 시기였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지호가 현실의 관계 대신 자신에게 맞춰진 존재를 선택한다는 설정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람과 만날 수 없고,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워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던 시대에 ‘나를 절대 거절하지 않는 존재’가 등장한다면 그것을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작품의 공포는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AI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식의 공포와는 조금 다르게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인간이 인간과 관계 맺는 일을 점점 어려워하게 된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를 사랑하게 될까.

🔖“말씀하시던 여자친구가 이게 맞나요?”
두 사람은 계속해서 ‘이것’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것. 너트와 스프링으로 이루어진 생명이 없는 기계.”

‘사람’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부르는 순간, 성미의 존재가 낯설게 느껴졌다. 지호에게는 사랑의 대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물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존재의 의미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질문은 성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은 일상에서 타인을 얼마나 쉽게 역할이나 기능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사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처럼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내가 필요로 하는 기능으로만 바라보는 순간은 없었을까.

그런 점에서 ‘AI 리얼돌’이라는 낯선 소재는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박피》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기술 그 자체를 악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망에 있다. 기술은 외로움을 덜어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외로움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나에게 맞춰진 존재’를 만드는 것이라면, 점점 타인의 다름을 견디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랑에는 상대방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할 수도 있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을 자유.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자유.
때로는 나를 떠날 자유.
그 불편한 자유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라면, 성미와의 관계는 사랑의 가장 편안한 부분만 남겨놓고 가장 어려운 부분을 제거한 관계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불완전한 사랑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다.
실수하고, 오해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다시 대화하는 관계.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곁에 남아 있는 관계.
그런 관계는 분명 피곤하고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타인의 마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의 본질은 내가 원하는 사람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한 사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피》라는 제목이 마지막까지 의미심장하게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표면을 만든다. 아름다운 얼굴, 성공한 모습, 괜찮은 척하는 표정, 행복해 보이는 관계. 하지만 그 표면을 한 겹씩 벗겨내면 그 아래에는 외로움과 불안, 욕망과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지호 역시 그랬다. 겉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실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아래에는 관계에서 받은 상처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결핍이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은 뒤 마음에 남은 건 것은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의 의미였다.

나를 언제나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원하는 말을 항상 해주는 사람도 없다. 때로는 실망시키고, 상처를 주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
그런데 어쩌면 사랑은 바로 그 불완전함을 견디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롭지 않고 싶다는 마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누군가를 바라는 마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욕망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기술이 인간의 욕망을 너무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순간,
오히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릴 수도 있다.

‘나는 타인의 불완전함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이 소설이 벗겨낸 가장 깊은 피부 아래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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