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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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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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수많은 괴물과 신들,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모험이다. 하지만 작품의 내용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트로이아 전쟁을 끝낸 한 영웅이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오랜 세월을 떠돌고, 수많은 죽음과 유혹과 상실을 지나 마침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뒷세우스의 여정은 먼 옛날의 영웅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독자 자신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작품이 처음부터 오뒷세우스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귀향을 둘러싼 이야기는 다른 인물들의 삶에서 시작되고, 텔레마코스의 성장과 함께 오뒷세우스의 부재가 더욱 선명해진다.

오뒷세우스가 없는 집에서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서고, 페넬로페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린다. 그러다 마침내 오뒷세우스가 등장했을 때, 그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고향이라는 공간만이 아니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왕으로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까지 되찾아야 했다.
그래서 《오뒷세이아》의 '귀향'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뒷세우스의 긴 항해가 오래전 그리스의 한 영웅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뒷세우스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끝내 돌아가려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길로 너무 멀리 떠밀려 갈 때가 있다. 내가 원했던 삶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도 하고, 수많은 선택과 실패를 거치면서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흐릿해질 때가 있다. 수없이 낯선 장소와 관계와 상황을 지나고, 때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정말 돌아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뒷세우스가 긴 방황 끝에 이타카를 향하는 모습은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처럼 읽힌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트로이아 전쟁이 있고, 각자의 키르케와 세이렌이 있으며, 아무리 멀리 돌아가더라도 결국엔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찾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오뒷세이아》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번역'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이나 정신, 분별력처럼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받아들일 만한 표현을 이 책에서는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관을 살려 '횡격막'이라고 옮겼다. 처음에는 상당히 낯설었다. '횡격막에 담즙이 솟구친다'는 표현도 현대의 독자인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 낯섦 때문에 고대인의 사고방식이 선명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현대인은 생각과 감정을 주로 머리나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오늘날과는 다른 신체적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를 현대적인 말로 매끄럽게 바꿔버린다면 읽기는 편해질지 모르지만, 그 시대의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까지는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번역은 '낯선 세계를 낯선 모습 그대로 만나게 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특히 🔖“‘횡격막에 담즙이 솟구친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화가 날까 봐'라고 바꿔버릴 법한 표현을 그대로 살려 놓으니, 정말 오래된 시대의 인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낯섦은 불편함이라기보다 시간의 거리였다. 책을 읽으면서 그 거리를 억지로 좁히기보다 잠시 그 낯선 세계에 머물러 보는 것이 《오뒷세이아》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를 내게 말하라, 무사여, 곡절 많던 그는 아주 많이 / 떠돌아다녔다,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함락한 후에.”

오뒷세우스는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함에 있지 않다. 그는 실수하고, 자만하고, 동료를 잃고, 유혹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길을 나선다. 인간의 위대함은 넘어지고도 다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찾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문장에서 특히 '떠돌아다녔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영웅의 삶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어쩌면 '방황'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큰 파도가 몰고 다녔다, 흐름을 따라 이리저리.”

이 장면에서는 오뒷세우스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강하게 느껴졌다.

바다는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갈까? 바다 위에서는 인간의 힘이 너무나 작다.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도 파도와 바람 앞에서는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오뒷세우스의 여정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초인이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이다.

삶도 그렇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치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 위에 서게 된다. 중요한 것은 바람이 불어오는 상황에서도 다시 방향을 찾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뒷세이아의 귀향은 '수없이 방향을 잃고도 다시 돌아가는 과정'으로 읽힌다.


오뒷세우스에게 가장 큰 적은 괴물만이 아니었다.
그를 붙잡았던 것은 때로 유혹이었고, 때로 망각이었으며, 때로는 자신의 자만이었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못된 일은 잘 되는 법이 없지. 느린 자도 빠른 자를 잡는 법.”이라는 문장도 그런 인간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오뒷세우스가 강한 사람이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다리고, 속이고, 변장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 문장은 세상에서 모든 일이 즉각적으로 결판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빠르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고, 늦다고 반드시 지는 것도 아니다.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어떤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그런 의미에서 《오뒷세이아》는 조금 이상하지만 중요하다고 느끼는 질문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정말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을 알고 있는가?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아무리 긴 방황도 여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면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어도 그저 떠돎에 머물 수 있다.
오뒷세우스가 끝내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었던 힘 가운데 하나는, 수많은 유혹 속에서도 이타카를 잊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을까.


또 하나의 문장.
🔖“죽음이란 모두에게 동등한 것, 신들이라도 사랑하는 남자에게서조차 그것을 막아 줄 수는 없지”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 이 문장은 오뒷세우스가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 해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오뒷세이아》에서 인간은 신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방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는 인간의 힘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이 오히려 삶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이 중요하다. 언젠가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 죽었을 때 살들도 뼈들도 힘줄들이 더 이상 꽉 잡아 주지 못하고, 그것들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강력한 기세가 제압한단다, 일단 기개가 하얀 뼈를 떠나고 난 다음엔, 그러면 넋이 꿈처럼 푸드덕거리며 빠져나와 날아다니지.”

이 문장 역시 현대적인 표현과는 상당히 다르다. 죽음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않으며, 육체와 넋이 분리되는 모습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읽으면서 죽음이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았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었다.

《오뒷세이아》에는 영웅적인 순간도 있지만, 그만큼 죽음과 상실이 반복된다. 오뒷세우스의 귀향이 값진 이유도 그가 무언가를 얻기만 한 여정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여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귀향은 살아 돌아온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흔적까지 함께 품고 있는 이야기다.


책을 읽고 난 뒤 오뒷세우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오뒷세우스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인물이 페넬로페였다.

오뒷세우스가 세상을 떠돌며 싸우고 살아남았다면 페넬로페는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지켜냈다. 움직이는 사람만이 용감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자리를 지키는 일 역시 엄청난 인내와 지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책 속의
🔖“얼마나 좋은 횡격막이 있는가, 흠 없는 페넬로페에겐, / 이카리오스 딸에겐, 얼마나 잘 기억했나, 오뒷세우스를” 이 구절이 기억에 남았다.

페넬로페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성으로만 비춰진 것이 아니라,
내게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기억과 판단을 지켜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오뒷세우스가 돌아왔어도 모든 것이 단숨에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고, 서로가 겪은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재회가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귀향은 집에 도착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변해버린 시간을 다시 건너 서로를 알아보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수천 년 전 만들어진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계속 읽히는 이유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어도 인간이 겪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비슷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떠나고, 길을 잃고, 유혹받고, 실패하고, 누군가를 잃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품으며 산다.

오뒷세우스는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아주 현대적인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가 괴물과 싸우는 장면보다 길을 잃고 흔들리는 순간들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오뒷세이아》를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귀향'이라는 단어였다.

사람은 태어나면 어딘가를 향해 살아가지만, 그 목적지가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때로는 남들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돌아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젠가 내가 진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곳을 알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방황 역시 완전히 헛된 시간은 아닐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긴 여정을 통해 수많은 죽음과 상실, 유혹과 실패를 지나온 뒤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오뒷세이아》의 마지막은
긴 여정을 지나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어떤 모습으로 돌아왔는지를 마주하는 과정의 완성처럼 느껴진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이타카가 있을 것이다.
아직 그곳이 어디인지 모를 수도 있고, 너무 멀리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이라는 항해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은 순간에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을 완전히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책을 덮으며 오뒷세우스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잘 돌아왔다고...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묻고 싶어진다.

지금은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이타카는 어디일까.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은 세상을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상실과 선택을 지나 다시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길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돌아갈 곳을 찾는다.

그래서 《오뒷세이아》는 앞으로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타카를 떠올리게 하는 명저로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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