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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종량제에 버릴 수 없어서 ㅣ 알발리 시선집 3
이규원 지음 / 알발리 / 2026년 7월
평점 :
🔻이 게시물은 알발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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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정은 왜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일까.
기쁨이나 행복은 오래 붙잡고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슬픔과 우울, 외로움과 방황은 가능한 한 빨리 털어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때가 많다.
괜찮다고 말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시 일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은 쓰레기가 아니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정해진 날 내놓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규원 시인의 《슬픔은 종량제에 버릴 수 없어서》는 슬픔을 없애려 하지 않고, 외면하지도 않으며, 그것이 내 삶에 왜 찾아왔는지를 억지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감정이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도록 가만히 바라본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는 동안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위로보다 ‘존중’이었다.
특히 <무엇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가 그랬다.
🔖“무엇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무심코 뱉은 말
먼지”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먼지’라고 답하는 마음은 얼마나 지쳐 있어야 가능한 것일까. 먼지는 흔하고 작고, 누군가에게는 치워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시인은 곧바로 그것을 ‘아주 작고 쓸모 없는 존재’라고 바라본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그 먼지조차 되지 못해 바라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
이 시가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먼지’라는 단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솔직해서다.
시인이 말하는 ‘먼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어도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잘 살아내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버리지 않는 법을 보여주는 시집에 가깝다.
<누구나 그런 거라고>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건드린다.
🔖“나의 슬픔도
너의 아픔도
이해를 구하지 못하고
짓이겨진다”
그리고 모든 감정은 ‘누구나 그런 것’이라는 말 하나로 뭉뚱그려진다.
이 부분을 읽으며 ‘위로’라는 것이 언제나 따뜻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그래.”
“누구나 힘들어.”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분명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건네는 말이지만,
때로는 그 말이 한 사람의 고유한 슬픔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내가 아픈 것과 다른 사람이 아픈 것은 결코 같은 모양일 수 없다.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해서 그 감정의 무게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누구나 그런거라고”
정말 누구나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느끼는 이 슬픔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걸까?
<비둘기>에서는 시선이 사람에서 한 생명으로 옮겨간다.
오래된 아파트의 실외기 옆, 좁고 불안해 보이는 공간에서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
🔖“불안과 걱정은 오직 나의 마음”
이 문장이 참 좋았다.
비둘기는 그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알을 품고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만 온갖 걱정을 한다. 위험하지 않을까, 괜찮을까, 왜 하필 저곳일까.
하지만 정작 그 생명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이 장면은 시인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시인은 비둘기를 불쌍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좁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도, 불안정한 환경도 그대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지는 태양 아래
부는 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그의 품은
분명 따스하겠지”
여기에는 억지로 만들어낸 희망이 없다.
그저 바라보고, 생각하고, 헤아리는 마음이 있다.
상대를 함부로 구해주려 하지 않는 것.
상대의 삶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그저 그 자리에 있는 존재를 오래 바라봐주는 것.
그것이 오히려 가장 다정한 시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광건조> 역시 마음속에 남는다.
🔖“홀로 떠가는 구름
외롭지 않게
눅눅한 고민을 얹어
떠나보냈다”
고민을 말끔하게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구름 위에 얹어 떠나보낸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고민에는 ‘습기’가 있다.
마음이 눅눅해지는 날이 있고,
아무리 털어내려 해도 쉽게 마르지 않는 생각들이 있다.
그런데 시인은 그 고민을 햇볕 아래 말린다.
그리고 언젠가 비가 되어 떨어지고, 땅에 스며들어 꽃을 피우는 꿈으로 이어간다.
슬픔과 고민이 당장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어떤 감정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비가 지나간 땅 위를>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젖은 땅에 찍힌 발자국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번 밟고 지나간 흔적일 뿐이지만, 땅에는 그것이 오래 남는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도 땅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옅어지는 것과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다른 일이다.
어떤 말은 오래 남고, 어떤 관계는 발자국처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까지도 지금의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된다.
이 시집에서 좋았던 점은 ‘슬픔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슬픔을 통해 성장했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아픔 뒤에는 반드시 더 나은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장담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픈 것은 아픈 채로, 외로운 것은 외로운 채로, 방황하는 것은 방황하는 채로 바라본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진실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늘 결론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삶에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시간도 분명 존재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며,
지금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시간.
그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고 ‘지나가야 하는 시간’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좋았다.
《슬픔은 종량제에 버릴 수 없어서》라는 제목 역시 책을 읽고 나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버릴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모든 감정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감정은 처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대상일 수도 있다.
슬픔이 있다고 해서 약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방황한다고 해서 삶을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길을 잃은 시간이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시집을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들을 너무 빨리 치워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이었다.
현재의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을 당장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고, 이름 붙이지 못해도 괜찮고, 아름다운 의미로 바꾸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잠시 곁에 두고 바라볼 수도 있다.
햇볕 좋은 날 옥상에 앉아 눅눅한 고민을 구름에 얹어 보내듯이.
좁은 실외기 옆에서 묵묵히 알을 품는 비둘기를 바라보듯이.
비가 지나간 뒤 땅에 남은 발자국을 애써 지우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듯이.
시를 읽는 동안 내가 지나온 슬픔들도 하나둘 떠올랐다.
그때는 빨리 잊고 싶었던 일들,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쳤던 마음들,
‘이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스스로 축소했던 감정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해서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버리지 못한 마음이 있다고 해서 괜찮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내가 멈춰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완전히 괜찮아지는 대신, 괜찮지 않은 나 그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하루들이 모여 어느 순간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되어 있다.
🤔
지금 당신 마음에는 무엇이 남아 있나요.
아직 버리지 못한 슬픔은 무엇인가요.
이 생각 앞에서 마음을 서둘러 치우지 않고 바라보게 된다.
💧슬픔은 종량제에 버릴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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