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ㅣ 네오 클래식
루이스 캐럴 지음, 보탬 옮김 / (주)열림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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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열림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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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정해진 길을 따라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아득히 길을 잃고 싶어진다. 째깍거리는 시계 바늘 소리가 삶을 독촉할 때, 어릴 적 꿈속에서 만났던 비밀스러운 숲과 기묘한 토끼굴의 기억은 잊고 있던 순수한 호기심을 부드럽게 깨운다. 단단하고 단조로운 현실의 벽에 작은 균열을 내고, 상상이 법칙이 되는 아늑한 환상의 품으로 빠져드는 순간—그곳에서 우리는 익숙했던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아주 특별한 다정함을 마주하게 된다.

어릴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토끼굴로 떨어진 앨리스가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바꾸고, 말을 하는 동물들을 만나고, 이상한 다과회에 참석하고, 하트 여왕의 황당한 명령을 마주하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바라본 앨리스의 세계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이상한 것이 앨리스가 아니라, 오히려 앨리스가 살아온 ‘정상적인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오랫동안 고전으로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환상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현실의 규칙을 뒤집어 보여준다.

앨리스가 처음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계기도 재미있다.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바라보며 🔖“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을 뭐 하러 보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앨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세계의 바깥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상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앨리스 이야기의 출발점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것은 정말 당연한 것인가?’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는지, 왜 말은 말한 대로 이해되지 않는지 계속해서 묻는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인물들은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기보다 또 다른 질문이나 말장난으로 앨리스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특히 애벌레가 앨리스에게 🔖“너는 누구니?”라고 묻는 장면.
앨리스는 🔖“지금은 제가 누군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다.

어릴 때는 몸의 크기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말처럼 읽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은 성장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계속 변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어떤 경험을 겪고 난 뒤에는 이전의 나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얼마나 확실하게 답할 수 있을까.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몸의 크기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의 기준과 가치관, 언어에 대한 감각까지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앨리스의 모험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처럼도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어린이를 위한 환상동화이면서 동시에 꽤나 철학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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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는 체셔 고양이다.
앨리스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묻자 고양이는 어느 방향으로 가든 미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앨리스가 미친 사람들 틈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돌아오는 대답이 인상적이다.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미쳤으니까.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말장난처럼 느껴지지만, 곱씹을수록 묘하게 현실적인 문장이다. 흔히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옳고 그름을 나누고, 다수의 기준에 맞는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현실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준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혹시 내가 정상이라고 믿고 있는 것 역시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것이 아닐까?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느끼는 혼란은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혼란과 닮아 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수많은 규칙을 마주한다. 그런데 그 규칙들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앨리스는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상하다고 느끼면 이상하다고 말하고, 이해되지 않으면 질문한다.
그 태도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힘처럼 느껴졌다.

체셔 고양이가 사라지는 장면 역시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몸이 꼬리부터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웃는 입만 남는다.
앨리스는 고양이는 없는데 웃음만 남아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참 이상하고 우스운 장면인데,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생각났다.

우리는 사람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모습일까, 목소리일까, 함께했던 시간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남겨 놓은 어떤 감정일까.
사람은 떠나고도 흔적을 남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 함께 웃었던 순간 하나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래서 ‘몸은 사라졌는데 웃음만 남는다’는 기묘한 이미지가 난센스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사라진다는 것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그 사람이 남긴 표정이나 말, 기억과 감정이 남는다.

앨리스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말장난이다.
🔖“까마귀는 왜 책상이랑 비슷하게?”
이 질문은 유명한 수수께끼처럼 등장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답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답을 찾으려고 한다.
질문에는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질문을 했는데 답이 없고,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말장난이 기다리고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할수록 더 깊은 혼란에 빠지는 순간도 많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의 매력이 생긴다.

모든 질문에 반드시 정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때로는 질문 그 자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흔드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사람들은 너무 자주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해져 있다.
시험에서도,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무엇이 맞는가’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답을 하나로 정할 수 없는 문제도 많다.
앨리스의 세계는 그런 사실을 아주 유쾌하게 알려준다.

하트 여왕이 등장하면서 이상한 나라는 더욱 난장판이 된다.
“저 애의 목을 쳐라!”라고 소리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하게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큰소리로 명령한다고 해서 그 명령이 반드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 여왕은 끊임없이 명령하고 화를 내며 자신의 권위를 과시한다.
하지만 그 권위는 어딘가 허술하다. 명령은 무시되기도 하고, 재판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배심원들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기 이름을 잊을까 봐 이름을 적고 있다.

이 장면들은 웃기지만 그냥 웃고 지나가기에는 묘한 불편함이 있다.
사람 역시 현실에서 형식만 남은 규칙이나,
권위를 위한 권위와 마주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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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나면
‘이상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상하다는 것은 반드시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규칙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수많은 황당한 상황을 겪지만 그때마다 그냥 주저앉지 않는다. 끊임없이 묻고, 반박하고, 스스로 판단한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압도하던 이상한 세계의 권위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앨리스의 모험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한 아이의 성장 이야기로 읽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질문하는 것이 귀찮아진다.
‘원래 그런 거야.’ ‘다들 그렇게 해.’ ‘그게 사회의 규칙이야.’
이런 말에 익숙해지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는 일을 멈추게 된다.
그런 우리에게 앨리스는 말없이 토끼굴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한 번쯤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보라고.
그리고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라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당연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어쩌면 앨리스가 떨어진 토끼굴은 익숙한 사고방식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통로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는다면 오히려 반대로 보인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의 틀을 잃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앨리스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없었던 질문을 남겨주었다.
이상한 것은 어쩌면 앨리스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지금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그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사라진 체셔 고양이의 웃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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