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지음, 김래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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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해피북스투유 출판사의 #해북이 '2'기 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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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때로 비극적인 현실에 맞서는 가장 고결한 무기가 된다.
대니얼 나예리의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참혹한 상실과 망명의 길 위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켜낸 한 소년이 고대 페르시아의 신화와 개인의 기억을 엮어 쏘아 올린 경이로운 서사시다. 이 작품은 20세기 후반 이란이라는 격동의 역사적 현장과 고대 페르시아의 찬란한 신화적 상상력이 만나 빚어낸, 참혹한 현실을 돌파하는 가장 숭고한 문학적 투쟁이다.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비극적인 동인은 1979년 이웃한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들어선 신정 체제의 엄혹함이다. 왕정 시대의 유복함과 학문적 자부심을 누리던 호스로의 가문은, 어머니 '시마'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신정 통치하의 이란에서 이슬람을 버리는 배교 행위는 교리 위반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반역이자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였다.


이란을 탈출한 가족은 두바이와 이탈리아의 YMCA 난민 수용소를 거쳐 미국 오클라호마의 낯선 시골 마을에 불시착한다.
1980~9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과 정치적 탄압을 피해 고국을 떠나야 했던 무수한 망명객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가 주인공 호스로의 어린 발걸음에 그래도 축적된다.

미국의 교실 맨 앞줄에 선 열두 살 난민 소년에게 가해지는 시선은 냉담하다. 아이들에게 호스로는 그저 냄새나고 이상한 외모를 지닌 차별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소년은 낙담하는 대신 고대 페르시아의 '다스탄(이야기, 전설)' 전통을 불러낸다.

뉴스나 통계로 접하는 '난민'이라는 단어는 한 개인의 개성과 수천 년의 문화적 맥락을 쉽게 삭제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천일야화의 전통처럼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을 번갈아 직조해 낸다. 이 과정에서 한 아이의 초라한 소외는 수 세대를 거쳐 내려온 페르시아의 매혹적인 다스탄(전설)과 맞물리며, 그 무엇으로도 훼손할 수 없는 찬란한 존엄성을 획득한다.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가 왕의 폭력 앞에서 밤마다 이야기를 엮어 생명을 연명했듯, 호스로 역시 자신의 존재가 통계 속 '난민'이라는 무미건조한 단어로 지워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가족의 역사와 페르시아 신화를 교실 안에 흩뿌린다.
스스로 🔖"조각보 같은 이야기는 난민의 수치다"라고 자조하지만, 이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보는 낯선 이방인의 편견을 깨부수고,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짓밟힌 개인의 진실을 증명하는 무기가 된다.

독자의 눈에 그 헝겊 조각들은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고 촘촘한 문학적 직물이 되어 다가온다. 파편화된 삶을 꿰매어 타인에게 건네는 행위야말로 소년이 난민이라는 단편적인 라벨에 갇히지 않고 온전한 한 인간으로 존재를 증명해 내는 방식이다.

이 작품이 전하는 울림은 고통을 일차원적인 동정이나 슬픔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를 서늘하고도 감각적인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다는 점에 있다. 🔖"아바스의 눈물이 뜨거운 물처럼 오븐을 데웠고 아바스의 떨리는 손이 수의처럼 가볍게 페이스트리 크림을 저었다고 하지"라는 문장처럼, 슬픔과 비극은 달콤한 페이스트리의 향기, 끓어오르는 눈물, 고대의 전설과 뒤섞여 깊은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상처를 부정하기보다 감싸 안는 이 은유적 언어들은 비극 속에서도 결코 잃지 않은 인간 삶의 온기를 증명한다.


작품 속에서 호스로의 가족이 정든 고향 재스민 향기의 도시 이스파한을 뒤로하고 밤중에 이란을 탈출해야 했던 이유는 거창한 정치적 야망 때문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당신이 믿는 것에 삶을 쏟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거지? 살 이유가 뭐지?"라는 고백은, 제국의 강제된 율법과 국가의 폭력 앞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존엄을 선언한 한 인간의 서늘하고도 위대한 해방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압제와 위험 속에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한밤중에 이란을 탈출해야 했던 어머니의 결단은 신념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타성에 젖어 외면하던 마음속 깊은 구멍을 직시하게 만들며, 안락함에 안주하는 현대인에게 진정 가치 있는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 무겁게 되묻게 만든다.


​어떤 이야기는 한 개인의 생존기를 넘어 타인의 차가운 편견을 뒤흔드는 거대한 파도가 된다. 가혹한 비극과 상실은 분명 잔혹한 현실이지만, 기억과 이야기로 직조해 낸 인간의 존엄과 사랑 앞에서는 그 슬픔조차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다. 거대한 역사와 기억의 흐름 속에서 슬픔이란 결국 지나가는 환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상실로 점철된 현실을 “슬픔은 다 거짓”이라고 거두어내는 힘은, 고통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신화를 가슴속에 품고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거룩한 연금술이다. 작가는 비극이라는 잿더미 위에 신화라는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림으로써, 한 인간의 서사가 어떻게 압제와 소외를 뚫고 찬란한 자유에 도달하는지 증명해 냈다.

​책장을 덮으며 밀려드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는 역사라는 폭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은 한 가족의 결연한 의지, 그리고 슬픔을 기어이 아름다운 신화로 재조립해 낸 문학적 구원에 대한 깊은 경외감이었다. 소년 호스로가 쏘아 올린 눈부신 신화의 파편들은 이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스러지지 않는 빛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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