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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상점가 거꾸로 우체국
구리스 히요코 지음, 마미영 옮김 / 모모 / 2026년 7월
평점 :
🔻이 게시물은 #단맘 (@gbb_mom ) , #르온서평단 을 통해 모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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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면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까'
- "전하지 못한 마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닿을 길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쯤 품고 살아간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순식간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깊은 곳의 진심을 꺼내어 놓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서툴러졌다. 구리스 히요코의 《땅거미 상점가 거꾸로 우체국》은 이 시대에 '편지를 쓰고 마음을 건넨다'는 행위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따뜻한 힐링 판타지다.
보통 우체국이라 하면 정확한 주소와 이름, 수신인이 명확해야 편지가 전달되는 매우 현실적이고 규격화된 공간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 ‘해 질 녘 우체국’은 주소도, 이름도 필요 없다. 오직 보내는 이의 깊은 고민과 간절한 마음만이 유일한 발송 조건이 됩니다.
이 소설은 현실과 이승의 경계인 '땅거미 상점가'라는 독특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삶의 불안과 고민으로 존재가 흔들리는 이들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이곳에서, 인물들은 거울을 보며 글자를 좌우 반전으로 거꾸로 적어야만 편지가 전해진다는 까다로운 규칙을 따른다. 처음에는 이 설정이 참 번거롭고 기묘하게 느껴졌다.
요즘처럼 클릭 한 번으로 메시지를 날려 보내는 속도의 시대에, 이 까다로운 절차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깊은 속뜰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최적의 장치가 된다. 문장을 가다듬고 정성스레 잉크를 묻히는 동안, 인물들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글자를 거꾸로 뒤집어 쓰며 들이는 그 고단한 시간이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치유의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연들은 우리네 삶과 닮아 있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아내를 향한 애틋함을 지키려는 노인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특히 괴물에 비유할 만큼 두려운 병마 앞에서도 🔖“내가 편지를 쓰다가 아내를 잊어버리더라도 이 편지를 도키에게 잘 전달해 줬으면 좋겠네" 라고 부탁하는 노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사랑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묵직하게 던져준다.
🔖"현재의 아내에게 보내달라곤 안 했으니까. 글자 수가 적어서 과거로 가지고 갈 수 있었어."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가 아내를 위해 편지를 쓰는 대목에서는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온다. 기억을 갉아먹는 괴물 앞에서도 끝내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소중한 사람을 향한 미안함과 사랑이었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라 할지라도, 그때 전하지 못했던 진심은 시간을 넘어 현재의 우리 마음까지 따스하게 데워준다.
또한 대학 생활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초등학생 때의 눈부셨던 자신을 그리워하는 청년의 고민도 남 일 같지 않았다. 🔖“왜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을까”라며 자책하는 그의 솔직한 고백은, 성인이 된 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드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초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단짝 친구를 향한 솔직한 질투와 미안함, 어린 나이에 시한부 삶을 받아들이며 미래의 동생을 위해 생령의 상태로 편지를 쓰는 소년의 이야기까지, 책에 담긴 6개 편지는 각기 다른 형태의 감정과 진심을 다룬다.
🔖"자존심이 센 내가 카오리 앞에서만큼은 진짜 나로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까? 무의식적으로 '우린 서로 닮았지만 내 인생이 더 잘 풀리고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안도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사람이 가진 솔직하고도 약한 본성을 날카롭게 찌른다. 가장 가까운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은근한 질투와 자존심 뒤에 숨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그늘이다. 소설은 이러한 열등감과 치부마저 외면하지 않고,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평범한 어른은 병에 걸린 아이에게 굉장히 친절해서 뭘 해도 다 받아주는데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정말 기분 좋았다. 특별 대우가 당연해지면 조금 외로운 마음이 든다."
시한부 삶을 사는 소년 리쿠의 시선은 찌릿한 아픔을 준다. 동정과 지나친 배려가 때로는 당사자를 사회나 타인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외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은발에 보라색 눈을 한 우체국 직원 스이게쓰의 무심한 듯 평범한 태도가, 역설적으로 아픈 아이에게는 가장 인간다운 '대등함'을 선물했다는 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가끔 들어올 수 있는 것은 고민이 있어서 존재가 불안정해진 인간뿐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필요한 가게 말고는 보이지 않는 구조라고 한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모른다면서 고게쓰는 “고민이 있는 인간은 시야가 좁아져 있으니까요.”하고 의미심장한 투로 중얼거렸다."
상점가가 '고민으로 시야가 좁아진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점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야가 좁아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오롯이 갇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꾸로 우체국은 그 좁아진 시야를 되돌려, 타인을 향한 진심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여유를 되찾아주는 공간인 셈이다.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문장은 바로 이 구절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우울해하고, 울고, 이리저리 고민하면서 조금씩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지금 이 순간을 추억으로 바꿔줄 미래는 온다.”
인간은 살아가며 무수한 후회와 방황을 겪는다. 하지만 이 글귀처럼 후회스러운 과거나 불안한 현재 역시 언젠가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하게 뿌리내릴 것임을 믿게 해준다. 또한, 🔖"가족이라도, 아니, 부모이기에 오히려 알 수 없는 모습이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에서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편안함에 속아 서로의 진짜 마음을 들어보려 하지 않았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백을 미래로 미루거나, 이미 지나간 과거를 향해 후회의 한숨을 내뱉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거울 속 반전된 글자를 꾹꾹 눌러 쓰듯, 내 안의 솔직한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꼬여있던 관계와 마음의 타임라인이 풀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 위로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문장들 속에서, 진심이 담긴 종이 한 장의 무게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굳이 해 질 녘 상점가를 찾지 않더라도 작은 편지지를 꺼내 들어야겠다. 어쩌면 거꾸로 써 내려가야 할 것은 글자가 아니라, 타인을 향해 차마 열지 못했던 마음의 문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전하는 일만큼은 속도보다 '온도'와 '정성'이 먼저여야 한다는 점.
오늘 밤,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사람에게, 혹은 길을 잃고 헤매는 스스로에게 거꾸로 쓰는 편지 한 장을 띄워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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