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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달빛 아래서 시를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 한 게으른 산책자의 사랑과 삶에 관한 다정한 생각
제롬 K. 제롬 저자, 정혜엽 역자 / 우리네꿈 / 2026년 7월
평점 :
🔻이 게시물은 휴먼하우스 출판사(@humanhouse.book )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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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기가 점차 차가워질 때, 문득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작은 달빛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영국의 위트 있는 작가 제롬 K. 제롬의 산문집 《더 이상 달빛 아래서 시를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은 바로 그 잊고 지낸 달빛을 다정하게 비춰주는 등불 같은 책이다.
누구나 한때 낭만에 눈멀어 달빛 아래를 서성이거나, 밤을 지새우며 서툰 문장으로 마음을 고백하던 시절을 지나온다. 저자는 사랑과 청춘이라는 지나간 열병을 쓸쓸하게 추억하기보다, 그 기억이 남긴 다정함에 주목한다. 세월이 흐르며 청춘의 불꽃은 사그라들고 우리는 더 이상 달빛 아래서 시를 쓰지 않는 다소 건조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눈부신 시절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을 향한 시선은 한층 깊어진다.
특히 저자가 전하는 특유의 해학적 시선은 유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랑을 홍역에 비유하며 "그러니 두 번 걸릴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능청스럽게 위로하거나, 삶의 거창한 성공보다 아기들의 천방지축 걸음마나 개와 고양이의 엉뚱함 같은 일상의 지극히 소소한 장면들에서 삶의 본질적인 온기를 찾아내는 태도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각박한 현실을 버텨내느라 마음에 가시가 돋친 이들에게, 저자의 낭만적 사유는 인생의 쓰라린 순간조차 따스한 풍경으로 바꿔 놓는다. 가난하고 고단했던 청춘의 한 자락도,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면 나름의 낭만과 의미를 품고 있었음을 담담하게 증명해 낸다.
인상 깊었던 문장들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뜻밖의 철학적 감동을 선사한다.
🔖"그녀가 원하는 남자는 그저 심부름 하나를 시켜도 자기 판단력이나 그딴 실없는 소리를 덧붙이지 않고 깔끔하게 해내는 사람..."
허세와 미사여구로 가득 찬 연애의 환상 대신, 삶을 함께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말재주가 아니라 서툴지만 진솔하고 믿음직한 '태도'라는 점을 짚어내 웃음과 함께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확실히 고양이는 부엌에 카펫이 깔린 집을 그렇지 않은 집보다 더 사랑하긴 합니다."
반려동물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의 모습이 위트 있게 담겨 있어 미소를 짓게 만들면서도, 영리하고 능청스러운 고양이의 본성을 이렇게 감각적으로 포착해 낸 저자의 관찰력에 탄복하게 된다.
🔖"내가 다락방 안의 풍경을 마지막으로 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황금 잔으로 마시든 돌 잔으로 마시든 인생의 맛은 비슷하니까요."
가장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진한 여운을 남긴 구절이다. 더 좋은 환경, 더 높은 지위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지만, 정작 삶이라는 본질적인 음료의 맛은 그릇의 화려함과 상관없이 결국 비슷하다는 진리를 나지막이 일깨워 줌다. 초라한 셋방 다락방에서 바라보던 하늘이나, 화려한 저택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나 똑같이 푸르듯 말이다.
🔖"때로는 그 어스름 속에서 더듬거리는 인간의 손이 신의 손등에 닿기도 한다."
삶의 어두운 터널이나 우울함의 어스름조차도 무가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경외로운 표현이다. 절망의 순간에 우리가 내뻗는 포기하지 않는 손길이야말로 삶의 숭고한 구원과 맞닿아 있다는 희망을 전해준다.
🔖"가능한 한 햇볕 아래 머물고 비가 내릴 때 기꺼이 그 비를 맞을 마음가짐만 있다면 세상은 지금도 충분히 즐거운 곳이니까요."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난 문장이다. 맑은 날의 기쁨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비(시련)까지도 삶의 풍경으로 수용하겠다는 태도야말로, 이 한 게으른 산책자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삶을 사랑하는 진짜 방식이 아닐까 싶다.
책표지를 덮을 때쯤이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비록 청춘의 열병은 지나갔고 더 이상 달빛 아래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시를 적지는 않겠지만, 한때 누군가의 달빛 아래를 서성이며 시를 쓰던 그 서툰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고 열정이 시들어가는 것을 슬퍼하기보다, 지나온 모든 궤적을 다정하게 품어 안는 관조의 미학을 전해주는 뜻깊은 산문집이었다. 오늘 밤, 잊고 지냈던 당신만의 눈부신 은하수를 다시 한번 꺼내어 보는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
스쳐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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