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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평점 :
🔻이 게시물은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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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모든 악인은 끝내 이해될 수 없는 존재로 남아야 할까!
- 현실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을 소설로 경험해 본다.
책을 읽기 전에는 흔히 선과 악을 구분하려 한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지부터 늘 먼저 찾았다. 하지만 《빅토리안 사이코》는 그런 습관을 처음부터 무너뜨리는 작품처럼 보인다.
악인은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시선은 자꾸 그 악인에게 머문다.
두려워해야 할 인물을 따라가면서도, 그의 독백에 피식 웃고, 그의 행동에 긴장하면서도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이 불편한 매력은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위니프레드 노티라는 인물은 태생적인 괴물인지, 아니면 시대가 만들어 낸 괴물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계급 질서와 여성에게 요구된 억압적인 규범, 귀족 사회의 위선은 그녀를 설명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그녀의 범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악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특히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은 한 편의 선언처럼 다가왔다.
🔖"초가을이다. 냉기가 내리는 계절. 그리고 세 달 안에 이 집 안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이 한 문장에는 결말을 숨기지 않겠다는 작가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범인을 찾는 추리보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데도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악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
사람은 누구나 분노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다. 다만 대부분은 그것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위니프레드는 그 억눌린 선을 넘어선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어두운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특히 번역가가 말한 🔖"현실에서 저지르면 안 되는 일탈을 마음껏 안전하게 탐닉하려고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라는 해석은 무척 공감이 갔다.
독자는 살인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감정을 문학 속에서만 잠시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울어본 적이 없다.... 열여섯 살 때 나는 내가 두려움을 모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
🔖"지금도 나는 두렵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보통 두려움을 인간의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으며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잃을까 걱정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줄 알며,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위니프레드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결핍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광기는 잔인함보다도 공허함으로 다가온다.
🔖"모든 선한 사람도, 모든 악한 사람도, 장미가 핀 자연의 오솔길을 따라 걸으리."
그리고 이어서
🔖"모든 선한 사람, 모든 악한 사람. 모두 환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거 아냐?"
이 문장에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악인도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
인간의 존엄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작품은 정답을 독자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생각은 끝나지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위니프레드는 분명 잔혹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를 괴물로만 소비하지는 않는다. 그녀를 이해하고 싶다가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기도 했다.
오히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악을 둘러싼 사회의 얼굴이다. 위선, 차별, 계급, 혐오가 얼마나 쉽게 인간의 내면을 병들게 하는지를 은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피가 흐르는 장면보다도 사람들의 위선이 더 섬뜩하게 느껴질 것 같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어야 하는가.
악인에게도 구원이 존재하는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도 행복을 꿈꿀 권리가 있는가.
《빅토리안 사이코》는 블랙코미디와 고딕 호러를 절묘하게 섞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위선을 해부하는 문제작이다. 무엇보다 독자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끝내 위니프레드 노티라는 위험한 인물에게 어느 정도 매혹되고 마는 자신의 모습이다. 악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독백에는 웃음이 나고,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 불편한 몰입감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책을 읽고 난 한참 후에도 나는 한 동안 이 한 문장을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악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
그 악마를 끝내 길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다움인지,
아니면 어떤 순간에는 누구나 위니프레드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빅토리안 사이코》는 우리 안에도 존재하는 어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심리소설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앞으로 이 글을 읽게 되는 독자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아주 작은 악마 하나쯤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안전하고 합법적인 일탈"을 꿈꾼다면 읽어 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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