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들)
클레르 마랭 지음, 류재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게시물은 <#르온서평단 (단단한맘&수련 )>을 통해
사람in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___

어떤 이별은 사람과의 헤어짐에서 시작되고, 어떤 단절은 아무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먼저 일어난다. 어제까지 당연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익숙했던 내가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삶은 그렇게 수없이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그 틈에서 상처를 안고 흔들리지만, 어쩌면 바로 그 균열 사이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내가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클레르 마랭은 《단절(들)》에서 삶을 이루는 수많은 변화를 '단절'이라는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단절을 반복해서 경험하며 이전의 나와 조금씩 멀어진다. 저자는 오히려 그것이 기존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인 동시에,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모든 단절에는 자신을 찾고 싶은 희망과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이 함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절을 잃어버림으로만 기억하지만, 클레르 마랭은 그 안에 새로운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단절은 익숙한 역할과 관계를 무너뜨리지만, 그 빈자리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새로운 시간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즉 두 번째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전의 세상'에서 죽어야 한다."

책을 따라 읽다 보면 저자의 말은 절망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태어남을 축복으로만 기억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모태로부터의 분리이며 존재가 처음 경험하는 단절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후 인생에서 반복되는 수많은 이별과 변화 역시 삶의 예외가 아니라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과정처럼 느껴졌다.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부분은 철학서라기보다 한 편의 문학 작품처럼 읽혔다.
🔖"헤어짐은 늘어지면서 일어난다. 일시 정지, 침묵, 망설임 속에서 길을 잃는다... 모든 걸 파괴하고 싶어도 항상 파괴의 흔적은 남을 것이다. 벽에서 뜯어낸 사진들의 흔적, 책장의 빈자리, 홀로 있는 칫솔."

관계는 끝났지만 습관은 남고, 공간은 기억을 붙잡고 있으며, 마음은 가장 늦게 헤어진다. 그래서 단절은 순간이 아니라 아주 긴 시간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때때로 엄청난 정신적 힘을 지닌 사건은 우리가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만든다."

어떤 사건은 이전의 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화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전의 정체성은 조금씩 무너진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비극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는 인간이 살아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것은 '상처를 이해하는 언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큰 상실을 겪고도 우리는 다시 살아가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무조건 긍정하거나 빨리 잊으라는 위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를 설명해주는 언어다. 《단절(들)》은 바로 그런 언어를 건네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설명되지 않던 감정들이 문장을 통해 이름을 얻는 순간, 고통은 조금씩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우리는 늘 선택하는 사람인 동시에, 선택당하고 상처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수동성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스스로를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생긴 질문은 후반부에서였다. 저자는 결국 타인뿐 아니라 '나라는 상(像)'과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나'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놓지 못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믿고 있는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절 이후의 고통은 상대를 잃어서가 아니라, 이전의 나를 잃었기 때문에 더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단절을 겪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고,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언젠가 또 다른 이별과 변화가 찾아오겠지만, 그 순간에도 이 책의 문장을 떠올릴 것 같다. '한 사람과 단절한다는 것은, 더 총체적인 재시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라는 말처럼, 끝이라고 믿었던 순간이 사실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나뭇잎의 색이 달라져 있듯, 사람도 그렇게 조금씩 이전의 자신과 멀어진다. 우리는 그 변화를 성장이라 부르기도 하고, 상실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책은 그 모든 이름을 하나의 단어로 묶는다. 단절.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고정된 존재라고 믿지만, 저자는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아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자아를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단절(들)》에서 말하는 단절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구조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은 위로를 건네기보다 삶을 이해하게 만든다.
언젠가 찾아올 단절을 두려워하기보다, 그것 또한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해주는 철학 에세이였다.

지금 삶의 변화 앞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에 걸맞는 질문과 사유를 선물해 줄 것이다. 우리는 끊어졌기 때문에 무너지는 존재가 아니라, 끊어짐 속에서도 다시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책은 끝까지 믿게 만든다.

사람은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다고 했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같은 사람으로 같은 내일을 살아갈 수 없다.
지금은 단절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덜 두려워졌다.
단절은 끝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작일 수도 있으니까.

_

#단절들 #클레르마랭 #사람인
#인문에세이 #에세이추천 #에세이 #인문 #교양
#새로나온책 #신간도서 #신간 #신간소개 #베스트셀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소개 #도서소개 #도서추천
#추천도서 #책추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서평 #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