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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
김서정 지음 / 책읽는곰 / 2026년 6월
평점 :
🎈📝이 게시물은
책읽는곰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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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른이란 필요한 순간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
그림책은 아이들의 책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읽는 책.'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는 그 익숙한 편견을 조용히 뒤집는다. 오히려 삶을 오래 살아온 어른이기에 그림책을 더 깊이 읽을 수 있고,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김서정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들려준다.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왜 최근 들어 어른들이 그림책을 찾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복잡해지고, 감정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짧은 글과 한 장의 그림이 긴 소설보다 더 정확하게 마음을 건드릴 때가 있다. 저자는 바로 그런 경험들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며 들려준다.
책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림책과 자신의 인생이 만나는 순간들을 담아낸 에세이라는 점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제주의 오름에서, 선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문득 떠오른 그림책들은 삶을 해석하는 언어가 된다. 한 권의 그림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오래 붙잡아 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마음에 깊이 남은 문장은 역시 이 책의 시작을 여는 '부엉이와 보름달' 이야기였다.
🔖"인생은 한겨울 한밤중 깊은 숲속이지만, 우유 같은 눈과 환한 보름달과 부엉이가 있는 곳입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인생을 무조건 아름답다고도, 무조건 힘들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깊은 숲처럼 막막하고 춥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눈부신 달빛과 길을 밝혀 주는 존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견뎌야 할 겨울은 있지만, 그 겨울을 끝내 지나가게 만드는 작은 빛 또한 존재한다는 믿음이 담겨 있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 깊은 울림을 준 부분은 '고함쟁이 엄마'를 통해 어른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아이들이 뒷걸음질 친다고 그냥 받아 주는 건 어른의 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어주고 끌어 주고 격려해 주어야지요."
요즘은 상처 주지 않는 것이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사랑은 때로 단호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말, 침묵으로 기다려 주는 시간, 엄격한 시선 역시 아이를 성장시키는 사랑일 수 있다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낀다는 것은 언제나 다정하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돌아와, 라일라'를 다룬 부분 역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린 나는 지금 나의 해답이며 해결이며 목적지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어린 시절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는 나 자신이라는 의미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답은 새로운 곳이 아니라, 오래전 내 안에 남아 있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트랙터도 데려가!'를 이야기하며 남긴 문장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 인생을 오래 지탱하는 건 한때의 순정한 타오름일 테니, 그런 시간과 대상이 있었다는 건 작은 구원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에게나 끝까지 놓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꿈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첫사랑이나 취미라고 말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흔적으로 남는다. 그 흔적을 '작은 구원'이라고 표현한 문장이 무척 따뜻하게 다가왔다.
또한 감사를 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그림책은 고마움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조용히 말하는 장르입니다."
그림책은 큰 목소리로 교훈을 말하지 않는다. 독자가 스스로 그 감정을 발견하도록 만든다는 저자의 시선이 참 아름다웠다. 좋은 그림책은 정답을 설명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감정을 기다려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공감했던 점은 그림책이 아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사실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그림책은 정답보다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속에 머문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오래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권하고 싶은 책이 아니다. 삶이 조금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 어린 시절의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에세이다.
읽고 나면 그림책 한 권을 펼치는 일이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마음속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저에게 이 그림책은 제 인생 자체, 저 자신이 되었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이 될 수 있다는 말.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책을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책을 계속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길을 잃고, 누군가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지친 어른에게 필요한 책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권의 그림책을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오래 잊고 있던 나 자신과 다시 눈을 맞추게 되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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