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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도 빛나는 그 꽃 - 황청원 마음단시
황청원 지음 / 책만드는집 / 2024년 9월
평점 :
이 시집은 일흔이라는 나이에 접어든 시인이 쓴 시들의 모음으로, 삶의 무게와 노년의 고요함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한 작품입니다. 이 시집은 제목 그대로, 늙음 속에서도 여전히 피어나는 꽃 같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며, 시인이 일상에서 마주한 사물, 자연, 사람들과의 관계 그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기쁨과 평온을 전합니다.
노년의 깊은 사색과 시간의 흐름에 대한 묵상을 주된 테마로 다루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자신의 시를 '일흔 나이에 이 무슨 가벼움인가'라고 표현하며, 늙음 속에서도 가벼움을 추구하는 모습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결코 얕은 것이 아닌,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얻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겪는 변화와 그로 인한 상실감을 표현하면서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의미들을 찾아냅니다. '젊은 날의 기억은 빠르게 사라지고'라는 구절처럼, 시인은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자주 되돌아봅니다.
시집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자연의 이미지들—꽃, 나무, 바람, 별—은 시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합니다. ‘초여름 푸른 빗소리로 지친 몸을 닦는다’는 시구에서 보듯, 자연과 함께하는 시인의 모습은 삶을 관조하며 얻은 평온함을 보여줍니다. 특히 시인은 지나간 날들과 그때의 말들이 희미해지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떠날 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대를 그리워합니다. 이 시는 인간 관계에서 느끼는 그리움과 고요함을 호수에 비유하며, 떠나간 이들의 자리를 되새기는 심정을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이 남아있음을 상징하며, 그 고요한 아름다움이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남깁니다.
시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교훈을 담은 존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시인은 자연 속에서 위로와 성찰을 찾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을 돌아봅니다. "목어"에서 시인은 '텅 비워질수록 타다닥 탁탁 소리 창창해져 먼 산도 넘지'라고 표현하며, 비움의 미학을 자연의 소리와 연결시킵니다. 목어가 내는 소리는 텅 빈 속에서 더욱 깊고 멀리 퍼지듯, 인간도 비울수록 더 큰 깨달음에 이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연은 시인에게 삶의 이정표이자, 삶의 고요함을 드러내는 거울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자연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이해하는 깊은 철학적 접근을 보여줍니다. 시인이 노년의 삶 속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모습들은, 읽는 이에게도 큰 위안을 줍니다. 자연의 변화를 통해 시인은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겪는 인간의 감정들을 잔잔하게 풀어내며, 삶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테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입니다. 특히, "무(無)"라는 시에서 그는 '나도 나를 아는 너도 너를 아는 누구도 아무도 없다.'라는 구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과 공허를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이는 우리가 누구도 완전히 알지 못하고, 결국 우리는 모두 고독한 존재라는 철학적인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죽음과 사라짐,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는 허무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자연의 일부임을 잔잔하게 그려냅니다.
또한, "닫는 시"에서는 시인이 '많이 아프다고 말할 때... 고통스럽게 아프지 않았다고'라고 언급하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던 자신의 후회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이는 인생의 말미에서 깨닫게 되는 인간의 한계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시로,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시인은 삶의 많은 순간에서 놓쳐버린 것들을 돌아보며 '순간 툭 지는 꽃'처럼 지나가버린 것들을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이 아쉬움조차도 노년의 성숙함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작품 속에는 한 인간이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을 되돌아보는 순간들을 포착한 시들로 가득합니다. ‘많이 아프다고 말할 때 / 많이 눈물 난다고 말할 때’라는 시구는, 시인이 인생을 돌아보며 느낀 미안함과 후회를 절절하게 드러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느낀 아쉬움과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한 사유는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 역시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또한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눈물 날 때 같이 눈물 흘리는 것이 함께 사는 의미’라며,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상기시킵니다.
늙음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그의 시는 노년의 고독과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둠별"에서는 '그 별 이른 새벽에 뜨면 어둠이 가지'라는 표현을 통해, 고통과 어둠 속에서도 빛이 있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늙음과 죽음의 과정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빛과 희망을 은유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인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빛나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시집 속에 담아냈습니다. 자연과의 교감,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인간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노련한 필치로 표현되며, 이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집은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마치 한 송이 꽃과도 같은 존재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짧은 시 속에 담긴 깊은 사색과 담담한 어조는 독자들에게 오랜 여운을 남기며, 삶과 죽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황청원 시인의 서정적인 시 세계를 통해, 인생의 끝자락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그 꽃’을 발견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시집은 반드시 추천드릴 가치가 있다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