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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 조선 백성들, 참다못해 일어서다 ㅣ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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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만 보고도 선택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분이신 故 이이화 선생님.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완독이 목표인 저로서는 선생님의 마지막 역작인 [동학농민혁명사]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책이 나오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의 숙원 사업이셨던 동학농민혁명 전체를 통괄하는 통사를 저술하고자 하셨던 소원을 이루신 것은 무척이나 감사한 일입니다. 한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가인 이이화 선생님. 한국사 추천도서인 [동학농민혁명사]는 정확히 근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2019년은 3.1 혁명 100주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3.1 혁명의 뿌리가 1894년에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이란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들여다보면 볼수록 한숨만 나오는 우리의 근대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살고자 했던 이들,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민중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동학농민혁명입니다. 그러나 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된 한국사 추천도서라고 볼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이번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저항적 민족주의 또는 생존적 민족주의로 규정합니다. 동학이라는 "종교"를 내세우고는 있으나 신분 차별의 타파를 주창하는 것이 주가 되는 모습으로 보통의 종교와는 차이가 있으며 당시 생산계층의 대다수인 농민을 내세운 혁명으로 농업생산물의 국가 수탈에 저항, 농민 권익의 보장 등을 지향하였습니다. 이는 유럽에서 일어난 독일 농민전쟁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농업 사회에서 농민들이 자신들의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한국사 추천도서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에서 1권은 19세 전반기의 여러 역사적 사실들과 동학의 전파와 농민과의 결합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정조 대왕의 죽음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산 정조대왕이 계속 살아계셨다면? 저자는 정조의 죽음을 무척 안타까워 합니다.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내리던 조선 후기, 위민사상을 바탕으로 한 개혁정책을 펼쳤던 성군 정조. 독살이라는 음모론이 퍼질정도로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선봉장이었던 정조가 어린 세자의 뒷일을 부탁한 것이 왜 하필이면 김조순이었을까요? 12살짜리 자기 딸을 순조의 왕비로 앉히며 세력을 잡은 김조순. 이때부터 조선의 안동 김씨 중심의 세도정치, 문벌정치가 들어서게 됩니다. '세도'라는 말은 권력을 틀어쥐고 마구 휘두른다는 뜻이요 '문벌정치'라는 말은 문벌끼리 벼슬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으로 영조와 정조가 그토록 걱정한 파행 정치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사 추천도서답게 한국사에서 쉽게 사용되는 용어들을 잘 설명해주니 이해가 수월합니다.
이 세도정치의 폐해를 직접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이중, 삼중의 수탈을 당해야만 하는 중소 지주와 소작농들입니다. 이들을 수탈 대상이 바로 삼정. 쉽게 말해 세금입니다. 국가의 기본 재정 수입으로 전정, 군정, 환정 이 3가지를 합해 삼정입니다.
먼저 전정(田政)은 토지의 다과에 따라 부과하는 토지세 또는 농지세로 대개 소득의 1할을 내게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온갖 잡세를 부과하여 농민을 괴롭혔습니다.
군정(軍政)은 군역의 의무가 있는 장정에게 군복무 대신에 부과하는 군세로, 대상은 16살에서 60살까지의 장정으로 매해 무명 한 필을 납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규정을 어겨 불법으로 군포를 이중, 삼중으로 부과하고 대상이 아닌 이들에게도 부과합니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어떻게 이런 불법이 자행될 수 있는지... 그것도 정부에서... 그러니 봉기가 일어난 것이겠지요?
환정(還政)은 춘궁기에 곡식을 나누어주고 가을에 추수할 때 이자를 붙여 거두어들이는 곡식으로 기민을 구제하고 이자를 관아의 경비로 쓰려는 목적의 세금입니다. 그러나 나누어 줄때는 모래나 지푸라기를 섞어서 주고 징수할때는 깨끗한 쌀만 받고 이자를 터무니없이 올려 받는 등의 폐해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사 추천도서라 이런 당시의 시대상들이 잘 설명되어 이해하기 수월합니다)
1862년 임술년 2월 18일 진주성을 시작으로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개를 잡아 피를 입에 바르고 맹세합시다. 우리가 벼슬아치와 악질 토호를 징치합시다"
이들 봉기군의 분노는 보이는 양반마자 짓밟고 옷을 찢으며, 구실아치들을 잡아 곤장을 치고, 불구덩이에 던지고 짓밟아 죽입니다. (아... 분노한 민중의 무서움이라니..) 1년간의 농민들의 봉기는경상도 18고을, 전라도 54고을, 충청도 43고을에서 각각 일어납니다. 농업이 집중된 호남지역에서 봉기가 가장 많이 일어어납니다. 그러나 이때의 봉기는 앞으로 일어날 동학농민혁명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입니다. 봉기가 분산적이고 고립적이어서 이웃마을과 연계되지 못했고, 수령과 아전들은 남은 향촌 권력을 쥐고 아직 버틸 힘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동학은 1860년 몰락 지식인인 최제우가 "사람이 한울이다"라는 가치를 내걸고 창도한 종교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되 인간중심적 사화종교이며 나라와 시대의 모순을 고민하고 돕는 보국 종교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신분계층의 차별과 민중의 고통을 너무나 잘 이해한 최제우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웁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뜻은 "한울님을 모셔 조화가 정해짐을 길이 잊지 아니하면 온갖 일을 알게 되니라"라는 뜻으로 동학도들은 이 주문을 외워 마음의 안정을 찾고 주술적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주문은 최제우가 살아 있을 때 경주를 중심으로 경상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누구나 함께 평등한 세상, 즉 '개벽 사상'을 제시했던 최제우는 "이단"으로 유교의 가르침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1864년 대구에서 처형당하게 됩니다.
2대 교주였던 최시형은 열성어린 포덕활동을 펼치며 쉴새없이 노동을 하며 실천적 삶을 함으로써 동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특히 1893년 봄 보은 장안 마을과 금구 원평에서 대규모 평화집회가 열리게 됩니다. 이들은 "시천주조화정" 주문을 외우고 "떄가 왔네, 때가 왔어, 다시 못 올 좋을 때로다"라는 검가를 부르며 민회를 펼칩니다. 무기는 커녕 죽창하나 없이 평화적인 집회입니다. (제발 우리나라의 모든 집회들이 이러하길...) 3월에 열린 원평 집회에서는 강경파인 남접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데 그 중심에 녹두장군 전봉준이 있습니다.
이런 두 집회에 대해 정부는 미봉책으로 일관할 뿐 정세를 읽지 못합니다. 오히려 정세를 정화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보은 집회를 보고 "동요는 1893년에 시작되었다"라고 외칩니다. 이들은 약장수, 유학생으로 위장한 첩자를 보냄으로써 민심의 동향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왜 정부는 민심 동향 파악에 실패하고 오히려 외세가 더 정확하게 민심을 파악할 수 있었을까요?
본격적인 보국안민의 깃발이 올라갑니다. 체구는 작지만 코는 우뚝하고 귀도 크며 눈빛이 형형하며 당당한 위풍의 전봉준. 그의 진두지휘하에 동학은 더 단단하게 뭉쳐집니다. 동학농민군의 첫 횃불이 시작된 곳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대한 항거입니다. 1894년 1월 10일 밤, 예동의 공터에 농민군과 고을민 수천 명이 모여들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죽창을 꼬나들며 임시 깃발인 석기를 들고 고부관아로 진격!! 군중심리는 계기가 생기면 한순간에 흥분해 발동하기에 이들은 전봉준의 지휘 아래 하나로 뭉쳐 11일 새벽 고부관아 동헌을 장악합니다.
전봉준은 고부 봉기를 발판으로 삼아 호남뿐 아니라 전국 전역으로 봉기를 확대하려는 구상을 세웁니다. 이어 무장에서 농민군 훈련장을 만들고 전면적 봉기를 결행하기로 합니다. 3월 20일 창의소라는 이름을 내걸고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순으로 서명하고 포고문을 발표한 농민군. 이 포고문은 민씨 정권을 향한 전면적 선전포고였고, 벼슬을 독점하고 특권을 누리는 양반 유림을 향한 질타였습니다.
그리고 관군과의 첫 본격 전투인 황토현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둔 동학농민군, 이어 장성 황룡에서 경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주성에는 무혈로 입성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5월 7일 전주화약을 맺으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후 집강소를 통해 민중에 의한 직접 통치가 조금씩 자리잡게 됩니다.
한국사 추천도서를 여러 개 본적 있지만 그동안의 역사들이 '상류층' '가진자'의 역사 나열이었다면 이번 동학농민혁명사는 '하류층' '못가진자'의 역사를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한번은 꼭 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