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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 조선 백성들, 참다못해 일어서다 ㅣ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7월
평점 :
주화약에 따라 농민군이 해산한 뒤 조정이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였던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의 군사들이 물러나는 것! 그리고 호남의 평온함을 만들어야 할 전라감사에 김학진이 임명됩니다. "편의종사"를 요구한 김학진
여기서 편의종사란 수령이나 장수가 현지 사정에 따라 임금의 결재를 받지 않고 먼저 일을 처리할 수 잇는 권한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전주에서 해산한 농민군은 각자 살던 고장으로 돌아가 차분한 마음으로 지역의 폐단을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게 됩니다.
전봉준은 농민군이 고을 단위로 폐정의일을처리할 대도소, 곧 집강소 설치를 독려하며 여러 마을을 돌아다닙니다.
집강소를 아시나요?
군현단위로 설치된 집강소. 이를 통해 농민군은 면, 리를 넘어 읍 단위 고을의 행정력까지 장악합니다. 전라감사 김학진과의 바른 의견 조율로 의견 일치를 보여가던 관군과 농민군. 김학진은 "함께 국나에 대처하기 위해 감사는 도인을 거느리고 힘을 합해 전주를 지키기로 약속하자"고 제의합니다.
김학진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된 집강소는 수령들을 보조 또는 협조자로 끌어들인 농민통치기구였고, 반봉건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합니다. 이러한 집강소가 설치된 곳으로 김개남이 남원에 자리하면서 운봉과 금산 등지를 석권하였고, 손화중이 광주, 최경선이 나주에서 집강소를 운영합니다. 김인배는 순철을 김덕명은 금구의 집강소를 원평에 설치합니다.
평화롭게 잘 진행되면 좋았을 것을... 남원을 중심으로 임실, 장수, 무주, 운봉, 금산을 관할하던 김개남. 김개남은 노비, 백정, 승려, 장인, 재인 등이 중심인 "천민 부대"가 잇었는데 이들이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없애는 데 있어 과격한 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지나가는 양반의 갓을 찢거나 폭력을 행사합니다. 완강한 반봉건 의지를 가지고 있던 김개남은 전라감사 김학진과의 타협도 거부하고 현직 수령들과도 마찰을 일으킵니다.
본디 집강소는 동학 교주 최시형이 포덕을 하면서 육임제를 만들어 각기 역할을 맡긴 데서 비롯된 것으로 종교 활동을 위한 일종의 점조직입니다. 농민군이 이를 변혁운동을 펼치는 곳으로 활용한 것인데 기층 민중에 의한 직접 통치기구로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농민군 집강소는 지방관의 역할을 대행하기도 하는데 조세, 공물, 군비 등 국가 수추의 징수를 수령 대신 담당했고, 형벌권을 행하였으며, 덕화를 펴고, 풍속을 장려하는 등의 일을 수행합니다.
농민군 집강소 기간 동안 도집강인 전봉준은 감사 역할을, 고을 집강들은 수령 역할을 대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강소의 농민군은 종, 상전, 백정, 양반, 남년노소 모두 예외 없이 서로 접장이라 부르며 만나면 맞절을 했습니다. 서로 동등한 호칭사용과 같은 자세의 절은 그들이 추구한 신분 해방과 평등의식의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동등한 호칭을 통해 평등을 실현하고자 한 시도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동무(토바리시)'를 사용한 것을 처음올 꼽는데 실제 동학과 동학농민군은 러시아보다 최소 20년 앞서 평등의 호칭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순조로와 보이는 집강소 활동에도 점점 먹구름이 드리우는데 그 원흉은 바로 일본입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