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 인간공학에 대하여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문순표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있었던 독서모임에서 잠깐 나의 독서가 어떠했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어릴적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당시 좋아했던 책들은 만화책 그리고 로맨스소설들입니다.

조금 더 커서는 잠시 종교에 심취하여 종교서적들을 (기독교 서적) 미친 듯이 읽었고

그 다음에는 자기계발서에 빠져서 성공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면 또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제대로(?) 고전을 읽고 문학을 읽고 양서들을 읽기 시작한 것은 3~4년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등 고전을 읽어나가고

철학토론 모임에서 [에밀][몽테뉴 수상록] 등을 읽으면서 어느정도 난 문해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전했습니다. 페러 슬로터다이크의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책을 받아들고.. 두께에는.. 뭐 다른 충분히 두께있는 책들도 있으니까.. 하고 그닥 걱정을 안했습니다.

그런데 1장을 읽고.. 헉....

번역과 관련된 제안과 토론은 언제든 환영한다. 이제 독자들이 이 해제를 부족하나마나 장비로 삼아 높고도 깊어 보이는 산의 등반에 도전할 차례다.

출처 입력

왜 옮긴이가 이러한 해제를 남겼는지 알것같습니다..

번역과 관련된 제안을 하고 싶지만.. 정말 10%도 이해가 되지 않기에 무엇을 제안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몰라도 되는 것일까?

정말 나만 모르는 것일까?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철학서가 저자의 <냉소적 이성비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자의 문체가 그렇게 어렵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은데..

아니면 내가 너무 독일 철학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칸트의 글도 잘 이해를 못했는데 저랑은 독일 철학이 잘 안맞는 것일까요?

독일에는 특수한 지식인 저널리즘 전통이 있다. 이 지식인 저널리스트는 전문 저널리스트가 아닌데도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고, 학자가 아닌데도 학술서를 출간하곤 한다. 강단 철학에 경멸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슬로터다이크가 스스로에게 철학자 대신 자유저술가라는 정체성을 부여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출처 입력

이렇게 어려운 책인데.. 심지어 학자도 아니고 전문 저널리스트도 아니라고 합니다.

칼스루어 국립조형대학의 총장까지 지낸 분인데..

(근데 조형 대학이면 미술대학인가?오오 찾아보니 미술대학 맞습니다. 예술대학)

2009년에 나온 이 책은 독일 <슈피겔<이 선정하는 베스트셀러에 선정됩니다.

영미권에서는 이 책에 대해 "신자유주의 자기계발서"라고 표현합니다.

저도 제목을 보고서는 약간 자기계발서의 일종이 아니야?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계발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개선시켜나간다고 한다면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할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하게 보는 자기계발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높은 수준이..

도저히 번역가의 해제만으로는 등산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적어도 푸코와 니체 이 두 철학자의 사상을 어느정도는 이해해야만 이 책이 이해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4년 우리나라에 내한한 적도 있는 슬로터다이크를 우리나라 언론은 '21세기판 니체'라고 표현한 바 있스브니다.

이 당시 '포스트 휴머니즘'과 관련된 내용이 핫했다고합니다. 배아복제 연구와도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명복제와 관련한 포스트 휴머니즘 논의가 '슬로터다이크 논쟁'과 연관되며 언론의 주목을 잠시 받았다고 합니다.

이 책의 부제인 인간공학에 대하여 번역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인간공학이란 한마디로 인간 개인이 주변환경에 대하여 최적화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하여 활용하는 정신적, 육체적 수행들을 전부 다 가리킨다. 이 짧은 문장에 독일의 지적 특수성을 보여주는 대문자 '철학적 인간'과 자기관계로서의 윤리형식을 고대의 문헌을 통해 정식화하던 말녀의 푸코 그리고 도덕 없이 위험하고도 자유로운 자기 극복의 시도를 설파하던 후기 니체가 교차하고 있다.

출처 입력

다시 한번 서평이라고 이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전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너무 어렵다. 뭐라고 하는거냐..

이것이 제가 이 책에 대한 평이 전부입니다.

도저히 평점을 매길 수도 없습니다.

평점을 매길려면.. 적어도 책 내용에 대한 호불호가 있어야 할텐데.. 이건 뭐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

그래서 과감히 이 책은 1년간 한번 쭉 읽어볼까 합니다.

정말 한 문장 한 문장을 뜯어가며 읽어볼 생각입니다.

과연 그렇게 까지 뜯어먹어도 이 내용이 이해가 안될런지 저에게 도전을 불러 일으키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인가 저는 죽음의 시간을 정해놓고 살아갑니다.

어플리케이션 중 D-day를 표시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남은 날들을 확인합니다.

처음 이 어플을 사용해서 죽을 날까지 남은 날들을 생각해보려고 했던 이유는

그만큼 남은 날(?)들을 제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저에게 찾아온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도 이러한 맥락의 책입니다.

우리가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잊고 있었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20년 가까운 시간을 종양내과 의사로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김범석 작가님입니다.

삶을 잊고 있을 때 떠나간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나를 향해 묻는다.

언젠가 당신도 여기에 다다르게 될 텐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당도하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한번 생의 감각이 팽팽해진다.

어쩌면 죽음만큼이나 삶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처 입력

저자의 이야기들은 정말 단 하나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싶은 이야기들입니다.

여기에는 드라마가 없습니다.

드라마가 각색되어지고 무언가 교훈을 주기 위함이 있다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냥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입니다.

임종의 순간에도 갚지 않은 2억원에 대한 이야기를 유언으로 남긴 사람의 이야기

끝까지 자신의 고집대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

이기적이라는 이름으로 타인들의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하는 이야기

도대체 인간은 존엄한 죽음을 반드시 맞이해야만 할 이유가 있는가?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라는 것은?

누구를 위해 계속 연명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삶이 죽음보다 낫다'라는 것이 정말 진리인지?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옆에서 지켜본 삶의 모습들은 단 하나의 해답이 아닌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출처 입력

저자의 [이야기를 마치며]에서 풀어내는 말들이 왜 이리 마음에 와닿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다 읽고 거실에서 열심히 게임 중인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00아, 엄마가 만일 암에 걸려서 더이상 치료가 불가하다고 하면 더이상 치료보다는 잘 죽을 수 있게 해줘."

아들이 식겁합니다. 왜 또 이상한 이야길 하냐고 질색입니다.

"00아, 엄마는 단 하루를 살아도 정말 제대로 살고 싶어. 백년 천년 사는 것보다.. 단 하루의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고 정말 잘 살았노라 말하고 싶어"

아들에게 책을 읽어보길 권했습니다.

이 책은 의료계의 책이 그러하듯 삶의 중요성, 생명의 소중함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닙니다.

당연히 그 부분에 촛점이 맞추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사람들의 이기적 태도등도 이야기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가 <3월의 신부를 위한 인사>입니다.

항암 치료를 하는 환자의 딸이 내년 3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환자의 보호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과정에서의 짧은 성찰을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가 함께 하지 못해 어떻하냐'라는 어설픈 위로를 하려던 자신의 말을 붙잡아 삼킨 내용입니다.

남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내 몫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다.

그 같은 슬픔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이 그들의 잣대로 규정짓고 재단하려 할 때 슬픔을 견뎌야 하는 사람에게 더 큰 슬픔이 되곤 한다.

출처 입력

저자는 본인 또한 젊은 시절 자신의 생애를 가지고 함부로 동정하고 판단하던 이들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얼마전 [싱 어게인]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제는 웃고 싶다고, 내가 웃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다고 말하던 11호 가수도 생각이 납니다.

[레이디스 코드]라는 그룹의 비극적 사건 이후에 함부로 웃을 수도 없다고 말하는 그녀가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그렇게 그녀를 웃을 수 없게 만들었던 타인의 시선의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기준으로 내 인생을 재단하고 내 현실을 동정하고는 가버렸다.

그들에 의해서 나는 불쌍한 사람이 된 채 그것으로 끝이 났다.

나는 그런 가볍고 얄팍한 동정이 싫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내 인생을, 내 이야기를 멋대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출처 입력

저 또한 얼마나 이렇게 많은 이들의 인생을 많은 이야기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저자는 이 에피소의 마지막을 다음 이야기로 마무리짓습니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선생은 <제법 안온한 날들>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라고 했다. 의사가 보기에 아무리 불행해 보이는 환자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갈 것이며 불행은 그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그 말이 옳다.

"결혼 축하해요" 그 짧은 말 외에 어떤 말도 더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삶에 더 깊이 관여할 권리나 지분이 없다.

단지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남은 가족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낼 것이고 살아낼 것이다.

그 슬픔의 빈 공간은 나의 안타까움과 걱정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채워나가야 하는 각자의 몫이다.

출처 입력

이것 말고도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가족은 어디까지 가족인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죽음이라는 삶의 한 과정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지 않고도 그러한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 저널리스트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영진 엮고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칼럼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애용하는 위키트리에서는 칼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문, 잡지 따위의 특별 기고. 또는 그 기고란. 주로 시사, 사회, 풍속 따위에 관하여 짧게 평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이러한 칼럼을 쓰는 사람이 바로 칼럼니스트 또는 기고가입니다.

그럼 저널이란 것은 또 뭘까요?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신문이나 잡지..

표준국어대사전

저널리스트는 이러한 정기적 간행 신문이나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쓰는 사람이겠지요..

단발적이거나 언론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쓴다면 칼럼니스트

주기적이고 언론사에 소속되어 글을 쓴다면 저널리스트

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냥 정말 저만의 정의)

그래서 제가 되고 싶은 것은 칼럼니스트입니다.


하지만 칼럼니스트이든 저널리스트이든 중요한 것은 시사, 사회, 풍속 따위에 관하여 짧게 을 한다는 것 입니다.

어떤한 문제 사안이나 이슈 등에 대해서 호불호를 밝히는 것,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 생각이 과연 옳을까?

혹시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어떻하지?

또 과연 내 이야기가 먹힐까?

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변할까?

나의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보니 더 주저주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저에게 조금은 자신감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에 읽은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 자신감을 완전 잃었습니다.

아.... 정말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글을 쓸수가 있지요.

글 하나 하나마다 정말 내가 스페인 전쟁의 현장에 있는 것 같고, 복싱경기장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1930년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그 당시의 거리 냄새가..

약간의 화약 냄새와 흙 먼지 냄새가 섞인 그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널리스트가 어떠해야 하는지

기사를 쓸 때는 어떠한 마음으로 써야 나는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을

하나하나의 기사를 읽으면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알게됩니다.

지금까지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소위 선진국들이 묵시적으로 가했던 폭력에 대해서도 말이죠

그러한 폭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마치 그들은 좋은 편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잘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문학을 읽다보면 1900년대 초반, 중반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있습니다.

특히 1,2차 세계대전은 작가들에게 어마어마한 인사이트를 준 사건이었지요.

아마 지구 전체가 들썩였을 겁니다. 지금의 코로나처럼 말이죠.

그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그리고 일어난 후의 모습이 어떠한 지를 이번 작품을 통해 정말 가까이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냥 전쟁의 참혹함이 아니라..

전쟁 정말 그 한복판의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죠..

저널리스트로서 헤밍웨이는 포탄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모습도 과감없이 촬영하고 기사에도 실습니다.

이번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에서도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참혹합니다.

다시 한번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당연히 그럴 수 밖에)

헤밍웨이는 무겁지 않은 필체로 풀어나갑니다.

그런데 그게 마냥 가볍지만도 않습니다. 여운이 많이 남는 글이라고 해야 할까요?

특히 존 스타인벡이 극찬을 보냈다는 에스콰이어에 실린 [나비와 탱크]라는 글은 읽는 내내.. 이게 진짜인지? 소설인지? 헷갈립니다.

정말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 그속에 담긴 전쟁이라는 비극..

만일 이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면 .. 무엇보다 155페이지의 [나비와 탱크]를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번째 꼭 읽어야 할 것은..

저처럼 글 쓰기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지막 CLOSING의 글입니다.

1935년에 실린 글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 청년 마이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똑똑히 들어. 사람이 말을 할 때는 그 말을 완벽하게 들어야 하는 거야.

네가 무슨 대답을 할지 생각하고 있지 말라고.

사람들은 대부분 들을 줄을 몰라. 관찰할 줄도 모르고.

어떤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네가 그 방에서 뭘 봤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해.

그 방에서 어떤 감저을 느꼈으면 그 감정을 불러일으킨 대상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거고.

이런 연습도 괜찮아.

시내에 나가거든 어디 영화관 앞에 서서 관찰하는 거야.

택시나 자동차 안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 그게 어떻게 다른지.

연습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방법이야 수천 가지지. 항상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야 돼.

[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중에서 (253페이지)

👍👍👍👍 강력추천합니다.

단순히 그냥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글이 아닌 사회 문제에 대한 비평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칼럼은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난 헤밍웨이처럼 글을 써보고 싶다 하는 사람이라면

완전 추천하는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입니다.

👎👎👎 이런 분들에겐 이 책이 별로 일수 있습니다.

단편 단편의 이야기들보다는 쭉 스토리가 이어지는 걸 좋아하시는 분

반전론에 대해서 무조건 싫으신 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 더 저널리스트 2
조지 오웰 지음, 김영진 엮음 / 한빛비즈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평소 생각했던 것들인데 그게 막연한 느낌뿐이어서 분명하게 그림을 그리지 못했는데

책을 읽다가 저자가 그 부분을 딱 이야기하며 명확히 그려주면 이보다 더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읽은 [더 저널리스트] _ 조지 오웰 편이 이렇게 시원했습니다.

헤밍웨이와 동일한 시대 제 2차세계대전이라는 전지구적 사태를 바라보는 조지 오웰의 시선이 왜 이리도 명쾌한지요.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다음 3가지로 나누어보았습니다.

1) 반전론 : 무조건 전쟁은 반대다. 이유불문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

2) '정당한 전쟁론' : 부득불 전쟁을 해야한다면 '정당한' 전쟁을 해야한다.

3) 친전론 : 나라의 이득과 국민들을 위한 전쟁은 필요하다.

대체로 극단주의자들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2번 정당한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대해 조지 오웰은 자신은 공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정당한, 인도적인 전쟁이 있냐는 말입니다.

전쟁은 원래 야만적이다.

차라리 인정하는 게 낫다.

우리가 야만인이라는 걸 먼저 인정해야 문제를 개선할 엄두라도 낼 것 아닌가.

이러한 조지 오웰의 문체는 시원하다 못해 뼛속이 시린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강하게 말하면 과연 괜찮았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는데 역시나 이어지는 칼럼에서 '지난 칼럼'에 대한 반박 편지를 받았다 라는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어찌보면 자신들은 양심이 있고, 지식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위선떨지 말라고 하는 조지 오웰의 말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을 것입니다.

한빛 비즈에서 이번에 출판한 [더 저널리스트]에서도 이러한 조지 오웰의 특성을 주목한 듯 합니다.

조지 오웰의 여러 말 중에서 딱 이 말을 핵심 메시지로 정하고 책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내가 반대하는 건 위선이다.

앞에서는 전쟁을 비난하면서

뒤로는 전쟁을 유도하는 그런 위선 말이다.

사람들의 드러난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위선을 이야기하는 조지 오웰

그의 이야기가 눈에 쏙속 들어오는 이유는 바로

내 안에 드러나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위선이 가득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미처 나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이러한 위선들을 조지 오웰이 속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헤밍웨이의 글보다 조지 오웰의 글이 더 신랄하고 저널리스트로서 경각심을 더 일으키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던 조지 오웰의 모습은 [동물 농장]에서 보여주는 어쩌면 위트 속에 숨겨진 신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저널리스트] 속에서 조지 오웰의 글은 돌려 말하는 일 없이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네 안의 위선을 알라!"고 말입니다.

영국인들의 자국민 주의, 배급제의 위선, 또한 지식인들이 소위 말하는 전쟁에 대한 가식적 태도등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시대에 적용해서 읽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을 보며..

결국 인간의 사회모습은 크게 변화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자조적 마음도 드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정치가 우리들의 삶과 크게 멀지 않다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의 힘이 사보타주. 행동의 힘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해준 조지 오웰

사회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준 좋은 책 [더 저널리스트 _ 조지 오웰] 잘 읽었습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로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카이브 취향 채석장 시리즈
아를레트 파르주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심차게 시작한 [문학과 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

처음으로 펼쳤던 무대는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가 안되는 신비함을 저에게 안겨주었습니다.

‘ 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으니 괜찮을거야 ‘ 자신하며 시작했던 [자본]에 대한 노트.. 는 완독은 했으나 아직까지도 서평을 제대로 못쓰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도전했던 [아카이브 취향]

아카이브가 뭐지? 하는 것때문에 시작부터 떨면서 했기 때문일까요?

그나마 세 권 중에서는 제일 읽기도 편하고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카이브는 쉽게 말해 어느 한 시대에 남겨진 모든 기록들입니다.

책이 아니더라도 남겨있는 광고포스터, 쪽지, 형사재판기록, 심지어 낙서들까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카이브 기록을 왜 보는 것이지?

이 사람들은 굳이 아카이브 열람을 어렵게 어렵게 하는 이유가 뭐지? 했는데

뒤로 가보니.. 아 역사가들입니다.

그제서야 처음부터 뭐하러 18세기 기록들을 들춰보는 것이지 하고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근데 저자가 누구지 하고 보니..

역사학자였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를 해석하는지 그 과정에서 아카이브 기록들은 어떻게 쳐다봐야 하는 지를 남긴거였습니다.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과거의 삶들을 글로 되살리기 위해 아카이브를 선택했다면 픽션을 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책의 제목인 아카이브 취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카이브 취향은 아카이브에서 골라낸 하나에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 골라낸 것들을 하나로 엮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을 보고나니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역사학자들의 역사 들여다보기 작업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느껴집니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읽었던 당시의 시대상을 이야기하는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 그 역사학자는 얼마나 많은 자료들, 아카이브들을 확인하고 또 그것을 취향대로 골라내어 사용하기 위해 고민할까요!

이젠 역사책 하나를 보더라도 그냥 편하게 보기보다는 한권을 써내려가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생각날듯합니다.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취향때문에 배제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것은 아닐지도 들여다보게될 듯 합니다.

지성인으로서 교양을 쌓고,

무언가 생각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채석장 시리즈]

정말 삽질을 여러번 해야만 간신히 하나 얻을 수 있을만큼 난해하고 어려운 내용들이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하나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

1) 어려운 글 좋아하시는 분

2) 역사가가 어떻게 역사자료를 수집하는지 궁금하신 분

3) 얇은 책 좋아하는 분(다해서 168페이지)

비추천합니다.

1) 철학적이고 어려운거 딱 질색인분

2) 논지가 분명하지 않은 글 싫어하시는 분

3) 프랑스 작가 싫어하시는 분... (약간 프랑스 작가들의 글은... 회전목마 타는 느낌이 있습니다. 왔다리 갔다리 하는 느낌이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