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 이어령 바이블시학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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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무신론자였던 이어령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딸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지만, 그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본다면 결정적인 사건 이전부터 영적인 허기와 정신적인 허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종교 중 기독교를 선택한 이유는 본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사랑이며, 예수님의 이웃사랑과 그 실천에 대해 배우고 했고, 죽음과 생명 사이에 놓인 우리의 과도기적인 삶을 새롭게 살고자 했다.

 

  이어령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에서의 “빵”은 의식주를 대변하는 것으로, 오늘날 물질주의적인 사고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상에 발 딛고 살지만 끊임없이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 삶의 왜소함을 성서 속의 천상의 말씀,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살찌우고자 한다. 성서는 지상에 묶인 삶을 천상의 것으로 환원시켜주는 유일한 매개체이다.

  바이블Bible의 어원은 비블로스Biblos로 “책”이라는 뜻이다. 성서는 기독교인들만 읽는 책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문화도 많이 다르고 성서의 표현도 해석의 어려움이 있기에 저자는 일상과 성서 간의 격차를 좁히고자 문학적 레토릭과 상상력, 문화적 접근을 시도했고, 그 노력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어 TV를 사고, 유흥문화와 퇴폐하는 세상의 흐름을 쫓는 사람들에게 분명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세계의 생명이야기를 전한다.

 

 “성서는 종교 이전에 모든 사람들의 시요, 소설이요, 드라마이며, 생생한 철학이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같이 읽을 수 있는 성경, 우리가 쓰러졌다 일어서는 법과 미움을 넘어서는 사랑의 수사법과 등 돌린 사람을 포옹하는 너그러운 몸짓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11)

 

제 1부 육체의 굶주림보다 영적, 정신적 허기에 시달리는 인간. 눈물과 땀이 없이는 한시도 지상에서 살 수 없는 치열한 삶과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육체의 허기보다 정신과 영혼의 허기가 알고 보면 더 급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빵 이상의 가치, 진짜 기적은 영원히 사는 빵을 먹는 거지요.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하였습니다”(40)

 

제 2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살 것인가? 몸의 한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울 때 영원의 집이 됨을 역설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본적이 없는 세계를 온라인상의 세계(사이버 세계)에 접속하는 것으로 비유하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의 몸집이 집으로, 그 집이 점점 더 넓어져서 영원의 집이 되고 그것이 성전, 성막이 되어가려면 우리 몸집 하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돼지 집이라도 ‘영원의 집’,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119)

 

제 3부 앞뒤가 맞지 않고 비논리적인 듯한 성서의 이야기. 그러나 피가 통하는 생명의 이야기. 의미를 따지고 들면 빈틈없이 앞뒤가 들어맞는 성경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 포도원 농부들,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이야기 등등)

“성경은 겉으로는 믿기 어렵지만 그 의미를 따지고 들면 빈틈없이 앞뒤가 들어맞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 기독교는 도그마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피가 통하는 생명의 이야기로 읽어야지요. (...) (예수님의)비유가 인간의 상상력의 결과인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서만 말할 수 있는 수사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184-186)

 

제 4부 욥 이야기를 통해 형식논리를 초월한 세계에서 만난 하나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을 때 비로소 이해되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한다. 또한 성경에 나온 독수리는 육체적인 젊음이 아니라 영적이고 정신적인 젊음, Born again(다시 태어남, 거듭남)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세계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마주침,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끝없이 뻗어나가는 수직선과 수평선은 오로지 딱 한 번 만날 뿐입니다. 그것처럼 지구상에서 딱 한번만 일어나는 일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권력, 돈으로 못할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오만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그것을 일깨우려 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 자신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됩니다. 그게 사람에 따라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는거지요. 저는 인생의 막판에 십자가의 의미를 알려고 하는 사람입니다.”(330)

 

 

<성서, 나를 읽는 책>을 쓴 한스R.베버 목사는 “성서는 내가 읽지만 내가 읽는 대상으로의 책이 아니다. 나의 믿음과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나를 대상으로 읽어 주시는 책이다. 이것이 성서읽기의 신비요, 은총이다”라고 말했다. 성서는 저 멀리 이스라엘의 이야기나 그 옛날 예수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꼭 필요한 생명의 말씀이다.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성서. 성서가 모든 사람들의 책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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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한국NVC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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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가로등 아래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근처를 지나던 경찰관이 그에게 물었다.

“무얼하십니까?”

취기가 있어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제 자동차 열쇠를 찾고 있습니다.”

“열쇠를 여기서 떨어뜨렸습니까?”

“아니요. 열쇠는 저쪽 골목길에서 잃어버렸지요.”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찰관의 눈길을 느낀 남자가 덧붙였다.

“하지만 저 골목길보다 여기가 훨씬 밝아서요.”

우리의 문화적인 조건과 환경은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는 곳에 우리 관심의 초점을 두도록 가르친다. <비폭력대화>의 창안자인 마셜 로젠버그는 관심의 초점(의식의 빛)이 자신의 욕구를 비추도록 하는 훈련방법으로 비폭력대화를 창안하였다.

 

비폭력대화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들을 때는 상대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든 그 말 뒤에 있는 느낌과 상대가 진실로 원하는 것을 듣는 대화방법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나 명령이 아니라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부탁하는 것이다. 갈등이 있을 때는 모두의 욕구를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해 나가는 대화 방법이다. 비폭력대화는 의사소통 방법, 연민의 언어라고 부르지만 단순한 방법론이나, 말하는 기술, 허무맹랑한 이상이 아니다. 이 책속에는 일상 속에서 쉬이 마주치는 작은 문제들(자녀가 자신의 방을 치우지 않는 것으로 자주 잔소리를 하는 엄마, 밤늦게 들어오며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남편, 비꼬는 말과 무시하는 말을 잘 사용하는 사람)을 사례로 다루고 있다. 비폭력대화는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이며 삶의 언어 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땐 폭력적인 말을 쓰고 그러한 행동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읽은 후 가장 많은 폭력을 썼던 사람이 나였음을 고백한다. 상대방과 진정어린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판하였고, 함께 있는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의 마음에 귀 기울여 공감해주지 못했다. 나 스스로에게도 폭력을 썼다. 내가 했던 말들과 행동을 자책하며 후회스럽게 여겼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대신 –해야만 한다는 강요만 늘어놓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 마음이 삐쳤는지 늘어가는 강요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때로 쉽게 화가 나고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나, 이제 작은 분노 속에 숨어있는 마음의 소리, 욕구들을 충분히 수용하며 들어주고 싶다. 세상이 주목하는 것을 막무가내로 따라하는 내가 아닌, 내 마음 속 깊이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일 것을 선택한다. 또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마음껏 공감해주기를 선택한다!

 

연민의 대화, 비폭력 대화라는 말이 낯설거니 혹은 세상적인 것 같고, 상담심리와도 비슷해 기계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다 읽어본 나로서는 단 한 사람 만이 내 가슴을 치고 올라옴을 느꼈다. 예수.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비판, 평가, 판단의 색안경을 벗으시고 온전히 공감하며 듣고 그들의 욕구를 이끌어내셨다. 가장 큰 연민, 사랑을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행하신 예수님. 그 사랑을 먹고, 기반으로 여전히 잘살고 있는 우리들은 조금 더 쉽게 비폭력대화를 삶으로 살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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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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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선거>는 <인더풀>, <공중그네>에 이은 오쿠다 히데오의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와 그의 환자들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 장편 소설이다. 겉으로 보기엔 정상인 같지만 속내는 신경증으로 과민증으로 고민하며 까맣게 타들어가는 4명의 환자들. 그들이 천진난봉꾼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를 만났다.

 

“구단주”의 주인공은 다나베 미쓰오. 그는 일본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사 대표이자 인기구단 구단주이다. 고령의 권력자인 그는 권력의 종말을 의미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패닉 장애를 일으킨다. 증상은 어둡거나 폐쇄된 공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시야가 하얗게 변하는)을 경험할 때 동시에 죽음과 영면, 천국 등이 떠올라 식은땀이 나고 급기가 기절하는 것이다. 다나베 씨는 “자기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같거나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되는 것이 두렵다.

그런 그에게 이라부의 처방은? 다나베에게 목숨처럼 귀한 지위와 권력 따위는 개무시. 무작정 포도당 주사 주입하기. 복잡하다고- 고민된다고- 심각하다고 말하는 문제를 단순하게 답해버리기(예를 들어, 플래시가 무서우면 조명을 가지고 다녀라, 플래시 터지지 않아도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참 쉽다.

 

“안퐁맨”의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일약 재계의 스타로 떠오른 사람, 안포 다카아키가 주인공이다. 그는 논리적 사고와 합리성의 종결자이다. 안퐁맨이 자주 쓰는 말을 살펴보면, “그건, 시간 낭비예요.”, “쓸데없는 낭비에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납득할 수 없어요.” 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지나친 효율성 추구로 인해 가장 일상적인 언어, 히라가나 쓰는 법을 잊어버리는 등 청년성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이라부의 처방은? 나라가 주목하는 재계 스타의 지위와 권력, 개무시. 무작정 포도당 주사 주입하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딴지 걸기. 히라가나도 모르는 바보 취급하기. 유치원에 데리고 가서 원생들에게 무시당하게 하기. 참 쉽다.

 

“카리스마 직업”은 마흔을 넘기고도 변함없는 미모와 젊음을 자랑하는 여배우가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눈물 나는 노력과 강박관념에 휩싸여 사는 이야기이다. 남들 앞에서는 자연스러움을 과장하고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는 듯 위장하는데, 정작 미용과 다이어트 문제에 병적으로 매달리며 이성을 잃고 집착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라부의 처방은? 어린애처럼 굴면서 무례하게 들이대기, 지위와 권력, 개무시. 무작정 포도당 주사 주입. 살쪄도 괜찮다고 꼬시기. 다이어트 하는 여자배우 앞에서 하던 대로 마구 먹어대기. 쉽다. 단순하다.

 

책의 제목이 된 “면장선거”는 온갖 비리가 난무하는 센주시마 섬의 면장선거 회오리 속에 휘말려든 젊은 공무원, 미야자키 로헤이의 이야기이다. 두 파로 갈라서서 몇 십 년째 싸우는 센주시마 섬사람들은 도시에서 온 료헤이를 자기편으로 만들고자 돈 다발 공세를 펼친다. 성실하지만 융통성 없는 료헤이, 두 파 사이에서 골머리를 썩는다. 그러던 중 이라부 이치로가 봉사차 섬에 2개월 동안 머물게 되고, 또 그는 료헤이가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방법으로 섬의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해 나간다. 그 방법은? 뇌물은 주는 대로 감사하게 받기. 섬에 사는 할머니들이랑 놀아주기. 면장선거 방법을 가위바위보나 장대눕히기(게임)로 결정하라고 건의 한다.

 

이 책에서 주목하여 볼 점은 이라부가 만나는 환자의 신경증이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약간의 신경증을 가지고 산다. 권력욕, 죽음과 소멸에 대한 공포, 과도한 효율성 추구(정작 중요한 것 까지 잃어버리며 사는),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는 것, 융통성이 없어 복잡하게 일을 생각하는 것 등이다. 나 역시도 해당사항이다. 다만 소개된 환자들은 그 증상이 조금 더 과장될 뿐.

또 하나의 포인트는 이라부의 독특한 처방이다. 스스로 바보가 되어 막힌 담(지위, 권력)을 허물어 버린 다는 점이다. “면장선거”에 나오는 센주시마 섬의 할머니들은 이라부의 광팬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바보’라서. “허지만 말이여, 모두 이라부 선상님을 좋아혀. 바보는 귀엽잖어. 마음이 편해서 좋고.”, “아무렴.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신경통도 좋아졌다니께. 우리 노인네 들이야 누군가 보살펴주고 마음 써주길 바라는거 아니겄어. 이라부 선상님은 우리 상대가 되어 주니께.”

 

신경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살려고 욕심내서 그러는 건 아닐까?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며 살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이 세워놓은 기준에 집착하면서 살기 때문은 아닐까?

삶이 너무 복잡하다고 느껴져 모든 것에 권태를 느끼거나 혹은 과민해지는 사람들에게 바보 같지만 아주 쉽고 단순한 천진난봉꾼 이라부 이치로 의사아저씨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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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ㅣ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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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다들 중고등학교 때 세계사 배우셨죠? 여기서 질문입니다. 보스턴 차사건은 몇 년도에 일어난 것일까요? 일본의 근대화 운동은?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때와 원인은? 종교개혁 언제 일어났나요?"

  우리는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때도 교회사를 통해 세계의 역사를 배웠다. 아마 역사를 배운 것을 년 수로 계산하면 못해도 3-4년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나와 관련 없는 어떤 사건으로 치부해버린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모두 역사를 발판 삼고 있으며 과거를 등에 업고 성장했음에도 현실에만 집착하며 살아가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야도 매우 좁다.

사이토 다카시는, 세계사는 단순한 암기과목이 아니며,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분석력, 거시적인 안목을 갖게 해준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지 못한다면 당면한 현실을 정확히 읽어내고 눈앞에 닥친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사건별, 연도별로 나열하지 않고, 세계사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간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만들어낸 다섯 가지 힘, 즉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에 대해 말한다.

욕망이라는 중요한 코드는 '물질'과 '동경'이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은 물질을 동경하고 유행에 좌우되면서 생활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커피가 세계 역사를 움직인다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이다. 17세기 유럽에 전파된 커피의 '잠이 오지 않는 속성'과 자극이 끊임없이 인간의 나태함과 한계를 극복하게 만듦으로써 근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커피의 '각성하게 하는 요소'와 '지칠 줄 모르고 기관차처럼 돌진하는' 근대화의 매커니즘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역사가 혁명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갈 수 있는 데 까지 가고싶다'는,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이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와 맞물리면서 제국을 만든 것이다. 과거 로마제국과 알렉산드로 대왕의 제국을 떠올려보라. 오늘날 어떤 나라든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국제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핏 보면 제국주의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제국의 야망은 영역을 바꿨을 뿐 지금도 엄연히 살아있다. 제국의 야망이 가장 심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은 경제 분야이다. 우리 손에 쥐어진 아이폰을 보라. 보이지 않을 뿐이지, 우리는 애플 제국에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종교의 관점으로 세계사를 바라본다. '일신교 3형제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인류의 거의 모든 전쟁사의 주범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 '사랑과 종교'인 기독교가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고, '관용적'인 이슬람교가 전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역사도 짚어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서두에 질문한 것에 답할 수 있는, 없던 능력이 생기지는 않았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의 근원에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기호를 소비하는 시대, 보이지 않는 지적, 경제적 부를 통해 제압하는 시대, 이런 시대의 아픔 속에 이기적인 '축복'을 이야기하며 '민중의 아편'이 되는 종교. 저자가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고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때론 밖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세계사를 움직인다는 욕망의 거대한 힘이 교회라고 피해갈리 없다. 교회 안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가는 흐름이 "예수님의 사랑"이 아닌 인간의 "욕망"일 때가 많고, 거룩한 무리인 성도가 밖에 나가서는 보장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돈과 명예에 목숨 거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쉬지 않고 달리며 일하고 사역하는 이유가, 혹 인간적인 욕망이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뜻보다, 예수의 사랑보다 다투고, 경쟁하게 만드는, 제압하려고하는, 미래를 보장하려고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는가?

이 책을 통해,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내 안의 작은 세계가 무엇을 목적 삼고 있는지 반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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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
김요셉 지음 / 두란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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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수원중앙기독초등학교 교목이신 김요셉 목사의 그림이 있는 기독교교육 에세이이다. 그는 먼저 자신의 삶의 터전인 가정과 학교에서 삶으로 배운 것이 어떻게 자신을 이끌었는지를 소개한다.

<가정> 저자의 아버지인 김장환 목사님은 가난한 전쟁고아로 미군의 하우스보이를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때 미군의 칼 파워스 상사는 자신도 가난하고 집이 어려웠지만 김장환 목사님을 미국에서 교육시켰고 한국의 지도자로 만들었다. 칼 파워스의 사랑과 희생에서 감격한 김장환 목사님은 이후로 교육을 통해 값없는 은혜를 베풀고자 하였고, 그것이 이 집의 결정적인 배경이 되어주었다. 어머니인 트루디 사모님도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여 중앙유치원을 세워 기독교교육을 실천하였다. (가정배경이 매우 사랑스럽고 따듯할 걸 예상하겠지만, 값없는 은혜에 감격하신 아버지는 의외로 매우 엄격하셨으며 혁대로 자녀들을 다스리셨다고 한다.)

<학교> 저자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여름, 어머니의 고향인 미시건에서 기독교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첫 수업시간은 스펠링 시간이었다. 들을 줄만 알고 스펠링은 잘 알지 못했던 저자에게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그 때 샤프 선생님은 저자를 칠판 앞으로 불러 내 영어 스펠링 대신 한국말로 자신의 이름을 써보게 하면서 '영어도 못하는 아이'를 '한국어 잘하는 아이로'로 만들어주셨다. 이 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교수법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기독교학교의 핵심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 교육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는 명제는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결국 가르침과 배움의 역동은 삶의 터전 속에서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타남을 말한다. 행동으로는 누구든지 노력하기만 하면 할 수 있겠지만 더 나아가 여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기독교교육만의 힘이 있었다. 수원기독초등학교는 수억 원을 들여 기독교교과서를 만들고 최고의 교사진들을 배치하는 것 보다 기도하면서 기도의 삶을 살도록 가르친 것,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아이들의 시각이 바뀌게 된 것(기독교 세계관을 갖게 한 것)으로 열매를 맺었다.
  누군가 중앙기독초등학교에서 기독교교육을 시킨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기도가 최후 반응이 아니라 최우선의 반응이죠. 살면서 문제를 만나면 이 아이들은 하나님 앞에 바로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우리 학교의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기독교세계관을 품도록 가르치는 것은 학교와 교회의 몫일 뿐 아니라 모든 부모의 역할,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즘은 자녀를 '교육'시키려하며 좋은 학교와 좋은 학원에 보내는 걸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의 영적 양육을 부탁하셨다. 저자는 가정에서 영성으로 가르치는 것은 기독교교육의 가장 중요한 철학임을 강조하며 학교와 교회, 가정이 하나 되어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기독교교육을 이루길 당부한다.

  이 책은 기독교교육의 본질을 저자의 삶에 나타난 크고 작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삶을 통째로 들어 가르치신 예수님을 스승으로 받들고 구원자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아이들을 삶으로 가르치기를 소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라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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