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그렇게 시간이 흐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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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 두여자와 그 옆의 조연이라하기엔 아쉬워 할 두남자. 어쨌든 자매라는 운명으로 얽혀, 서로 핡히고 뜯기고.. 누가 태양의 여자인 거지? 꼭 둘 중에 누구 한명만 콕찝어서 지목해 보고자 했었다. 그게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줄 모르고.. 음 그래도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사월(지영)이를 택할 것이었다. 그녀의 복수는 언니를 죽음까지 밀어넣고자 하는 극도의 증오심으로 불타올랐기에.. 가히 태양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월이 20년 동안 부모없는 슬픔을 혼자 감내해야 만 했던 그 고된 시간이 생각 할 수록 분함과 원통함으로 다가오는지 용서할 기미가 보이다가도 스스로 복수의 화신을 꿈꾸는 듯 하다. 처음에 그녀를 태양의 여자라 생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의 밝은 모습과 20년 동안 부모의 정을 받진 못했으나 그 간절함이 서려있어서 일까 따듯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 점점 반전을 거듭하면서 태양의 빛은 따듯함 그 이상으로 태울듯한 고통으로 드러났지만,.. 그녀의 모습, 영락없는 태양의 여자다.

어제, 태양의 여자 마지막회-1회가 방영되었다. 처음으로 꽂꽂하고 차갑고 어두웠던 도영의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냉혈인으로만 느껴졌던 그녀에게 뜨거운 눈물이라... 어색함이었을까? 아니.. 분명 연민의 마음이었으리라. 그녀 또한 태양의 여자였다.

두 여자에게 비추어지는 조금 다른 태양의 모습, 순간순간 변질되었으나 그 느낌만은 고이 간직해 두고 있었다. 사월이에게선 태양의 발광하는 정도에 따라 따듯한 봄과 무더운 여름을, 도영이에게선 그토록 추위에 떨고만 있었던 그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릴적에 마치 사막 한 가운데 태양의 직사광선의 희생양이 되어, 속절없이 녹아 흘러버리는 빙산의 조각처럼.

두 태양의 여자, 부모에 대한 갈망과 희망이 성취되는 동시에 그 희망의 줄기를 끊고자 했던 한 여자에 대한 복수와 증오로 변질되어 기승하는 무더위가 되어 여과없이 쪼여되는 태양, 사월과, 자신은 희생양이라는 것을 피하고자 숙명을 어기고자했던 욕심의 탈을 벗자 드러나는 새하얀 속살이 그 숨어있던 빙산 마지막 조각까지 .. 남김없이 태양의 희생양이 된 도영...

 

마지막까지 놓칠 수없는 태양의 여자.

그들의 결말과 나의 생각의 끝은 어떻게 가름할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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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스운 일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자 근처 분식집을 찾았다. 김밥과 떡볶이를 잔뜩 시켜놓고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는데, 뒷자리에 고등학생쯤 되어보이는 남자친구들 셋이 앉았다. 저녁밥 대신 할 양으로 온듯해보였으나 별 관심없이 우리들 먹거리에 미쳐 있었다. 그렇게 한참 먹고 있는데 한 아이가 방구를 꼈는지 친구놈이 큰소리로 '아 이새끼 방구꼈어, 야 00고등학교 0학년 0반 000. 아~ 방구꼈어' 라고했었지?아마? 분명 우리보고 들으라구 한 소리었겠지 나도 예전에 그러면서 친구들이랑 장난쳤었지만. 근데 이상하게도 함께 웃을 맛이 안났다. 단지 식당에서 큰소리로 저들끼리 떠들고 모잘라 남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친구 비웃는 것이 그리 웃겨보이지도 좋아보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생각이 찰나에 스치고 났는데, 번뜩이는 무언가는 내가 참 꼴이 차갑고도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랑 목욕탕을 가면 꼭 그렇게 못을 다 벗은 모습으로 아주머니들이랑 얘기를 주고 받을 때가 있다. 아는 분이시냐고 하면 모르는 분이라고 단언하시는데 무슨 자신감이고 무슨 동감하는 말이라고 금방 말을 트시고 얘기를 주고 받으시는지... 난 모르는 사람 누가 뭐래도 딱히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면 잘 귀기울이거나 동감가는 내용이어도 못들은척 하기 일수이다.

남의 우스갯 소리 몇 마디에도 함께 웃어주지 못하는 나, 여태껏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 덕분이라고 변명해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합리화시키고 있었던거야...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짐만을 지고 살 수는 없었다. 때로는 이쪽이 저쪽의 짐이 되는 수도 있었고, 저쪽의 그것을 이쪽이 함께 나눠 지게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사람의 사람다운 길이었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였다.
                                                                    - 이청준 <낮은데로 임하소서>165p

 
   
위 인용은 웃음 조차 나눠 웃지 못하는 나를 깨우치기 위한 본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각박해진 세상이라며 밖을 바라보고 탓할게 아니라, 나 하나의 변화를 돌아보는게 어떻게느냐고 속삭이는걸. 역시 그랬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짐만을 지고 살수는 없었다. 그것이 사람의 사람다운 길이었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였다. 어렸을 적, 독후감상문을 써오라거나 글쓰기를 시킬 적에 꼭 마지막에 당부에 글을 남겨두곤 하엿다. 나부터 변화하고 나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이 작은 숨결과 나지막한 목소리, 굼뜬 행동이 어떤 세상을 변화 시킬 수있겠느냐만은 스스로 그 숙명을 지고 살 용기를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숙명은 인간전체의 피할수없는 운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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