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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 이어령 바이블시학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독한 무신론자였던 이어령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딸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지만, 그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본다면 결정적인 사건 이전부터 영적인 허기와 정신적인 허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종교 중 기독교를 선택한 이유는 본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사랑이며, 예수님의 이웃사랑과 그 실천에 대해 배우고 했고, 죽음과 생명 사이에 놓인 우리의 과도기적인 삶을 새롭게 살고자 했다.
이어령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에서의 “빵”은 의식주를 대변하는 것으로, 오늘날 물질주의적인 사고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상에 발 딛고 살지만 끊임없이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 삶의 왜소함을 성서 속의 천상의 말씀,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살찌우고자 한다. 성서는 지상에 묶인 삶을 천상의 것으로 환원시켜주는 유일한 매개체이다.
바이블Bible의 어원은 비블로스Biblos로 “책”이라는 뜻이다. 성서는 기독교인들만 읽는 책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문화도 많이 다르고 성서의 표현도 해석의 어려움이 있기에 저자는 일상과 성서 간의 격차를 좁히고자 문학적 레토릭과 상상력, 문화적 접근을 시도했고, 그 노력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어 TV를 사고, 유흥문화와 퇴폐하는 세상의 흐름을 쫓는 사람들에게 분명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세계의 생명이야기를 전한다.
“성서는 종교 이전에 모든 사람들의 시요, 소설이요, 드라마이며, 생생한 철학이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같이 읽을 수 있는 성경, 우리가 쓰러졌다 일어서는 법과 미움을 넘어서는 사랑의 수사법과 등 돌린 사람을 포옹하는 너그러운 몸짓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11)
제 1부 육체의 굶주림보다 영적, 정신적 허기에 시달리는 인간. 눈물과 땀이 없이는 한시도 지상에서 살 수 없는 치열한 삶과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육체의 허기보다 정신과 영혼의 허기가 알고 보면 더 급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빵 이상의 가치, 진짜 기적은 영원히 사는 빵을 먹는 거지요.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하였습니다”(40)
제 2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살 것인가? 몸의 한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울 때 영원의 집이 됨을 역설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본적이 없는 세계를 온라인상의 세계(사이버 세계)에 접속하는 것으로 비유하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의 몸집이 집으로, 그 집이 점점 더 넓어져서 영원의 집이 되고 그것이 성전, 성막이 되어가려면 우리 몸집 하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돼지 집이라도 ‘영원의 집’,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119)
제 3부 앞뒤가 맞지 않고 비논리적인 듯한 성서의 이야기. 그러나 피가 통하는 생명의 이야기. 의미를 따지고 들면 빈틈없이 앞뒤가 들어맞는 성경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 포도원 농부들,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이야기 등등)
“성경은 겉으로는 믿기 어렵지만 그 의미를 따지고 들면 빈틈없이 앞뒤가 들어맞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 기독교는 도그마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피가 통하는 생명의 이야기로 읽어야지요. (...) (예수님의)비유가 인간의 상상력의 결과인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서만 말할 수 있는 수사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184-186)
제 4부 욥 이야기를 통해 형식논리를 초월한 세계에서 만난 하나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을 때 비로소 이해되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한다. 또한 성경에 나온 독수리는 육체적인 젊음이 아니라 영적이고 정신적인 젊음, Born again(다시 태어남, 거듭남)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세계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마주침,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끝없이 뻗어나가는 수직선과 수평선은 오로지 딱 한 번 만날 뿐입니다. 그것처럼 지구상에서 딱 한번만 일어나는 일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권력, 돈으로 못할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오만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그것을 일깨우려 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 자신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됩니다. 그게 사람에 따라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는거지요. 저는 인생의 막판에 십자가의 의미를 알려고 하는 사람입니다.”(330)
<성서, 나를 읽는 책>을 쓴 한스R.베버 목사는 “성서는 내가 읽지만 내가 읽는 대상으로의 책이 아니다. 나의 믿음과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나를 대상으로 읽어 주시는 책이다. 이것이 성서읽기의 신비요, 은총이다”라고 말했다. 성서는 저 멀리 이스라엘의 이야기나 그 옛날 예수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꼭 필요한 생명의 말씀이다.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성서. 성서가 모든 사람들의 책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