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인간과 교육에 대한 성찰 -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홀든 콜필드'이다. 홀든은 후튼과 엘크론 힐즈 고등학교를 차례로 퇴학(혹은 자퇴)당하고, 이어 펜시 고등학교에서 5과목 중 4과목을 낙제해 퇴학을 당하게 되었다. 홀든은 방학을 맞이하면서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방학까지는 며칠이 더 남았지만 룸메이트와 싸움을 계기로 펜시에 온갖 정이 다 떨어져 예정보다 서둘러 학교를 떠난다. 홀든의 이야기는 떠나는 날, 토요일 밤부터 집에 돌아가기까지(원래는 수요일에 가는 것이었지만 월요일에 돌아감)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홀든은 마치 연극 무대에 홀로 앉아 독백을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관중이 되어 홀든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홀든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할 뻔 했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지겨운 친구들 이야기를 했고, 곧 학교를 떠나서도 이 사람 이야기를 했다가, 곧 저 사람을 떠올리고. 전력을 쏟아 집중 하려해도 무엇에 어떻게 집중을 해야 하나 헷갈렸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엉덩이가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잘 이해하지 못할 뻔 했다'는 말은, 결국엔 이해했다는 거다. 홀든의 몇 가지 특징적인 태도가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홀든은 언변이 좋고, 재치가 있어서 종종 웃음을 자아냈지만 대부분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우울한 말투의 볼멘소리들이었다. 그는 대상과 상황, 사건들만 바꾸어가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먼저는 펜시의 더렵고 지저분한 애클리, 가식적인 마초 스트라드레이터, 그들을 담고 있는 껍데기뿐인 펜시 학교에 대한 것이었다. 곧 그곳을 떠나 묵게 된 호텔에서 만난 못생긴 노처녀 3인방, 냉소적인 서니와 사기꾼 엘리베이터 보이 모리스 등 모두가 홀든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거침없이 욕을 해댔다.

이런 홀든도 호감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펜시 학교를 떠나던 기차 안에서 만난 친구의 엄마와 일요일 아침 식당에서 만난 싸구려 가짜 가죽 가방을 가진 수녀가 있었다. 호감일지라도 두 가지 모습을 보였는데, 친구의 엄마에게서는 매력을 느꼈어도 자신을 끝까지 다른 사람으로 속이며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 수녀에게는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또 지나가던 꼬마를 마음에 들어했든데, 그 꼬마는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을 부르고 있었다. 홀든은 그 모습을 보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을 느끼며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홀든은 집을 가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현실을 살아가는 듯하지만 지난 추억들을 자주 상기시켰다. 그 중에서 계속 기억에 맴돌고 그리워했던 몇 사람이 있었는데, 한 때 품을 뻔했던 제인 갤러허와, 백혈병으로 죽은 동생 앨리, 그리고 9살짜리 여동생 피비였다. 홀든에게는 형 D.B도 있었지만 한 때 진정한 작가였지만 변절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하고 있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죽은 앨리와 피비를 그리워했는데, 우울한 일이 생길 때마다 허공에 대고 대화를 하거나, 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일요일 밤, 피비를 그리워하던 홀든은 마침내 집에 몰래 잠입해(아직은 갈 때가 아니었기에 부모님에게 들키면 안되었다) 피비를 만나 대화를 하게 된다. 피비와의 만남은 홀든의 독백을 깬다. 피비는 어렸지만 매력있을 뿐 아니라 똑똑하고 영리했기에 오빠 홀든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홀든은 피비의 물음에 대답해 주어야 했고,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홀든의 '꿈'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했다. 그 호밀밭에는 어린아이들만 있을뿐 어른이라고는 자신 한명 뿐이며, 자신은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절벽에 떨어지려고 할 때 막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피비와 춤을 추고, 그러고는 여유있게 다시 집을 빠져나온다.

피비와 대화를 끝내고 홀든은 다시 집을 빠져나와 엘크론 힐즈 학교에 다녔을 때, 친하게 지낸 앤톨리니 선생을 찾아간다. 앤톨리니 선생은 홀든의 상태를 가늠하여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 그는 홀든의 현재 상태에 대하여 '무서운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같다고 하며, 학교로 돌아갈 것을 충고한다. 홀든을 설득하려 한 것이다. 그는 선생으로서 '교육'에 대한 위엄을 잘 알고 있었으며, 학교의 기능에 대해 건전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홀든은 앤톨리니 선생의 충고를 피곤해 잘 못들은 것 같았다. 곧 잠에 들었지만 앤톨리니 선생의 호의를 오해한 나머지 그 집에서도 도망치듯 나온다.

다음 날 월요일, 홀든은 멀리 떠나기로 작정하고 동생 피비를 만나 작별인사를 하려하지만, 피비는 따라나서겠다고 온갖 생떼를 부린다.
결국, 홀든은 집으로 돌아갔고, 어떤 병에 걸려 병원에 있으며, 이야기 하고 싶은 전부를 다 말했다. 그는 지금 자기가 말한 모든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몇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는 홀든이 왜 그렇게 불평불만이 많은지, 도대체 좋아하는 것이 있기나 한건지 궁금했다. 홀든의 이야기를 듣다가 도저히 답답해서 이 질문을 해버리고 싶었는데, 그러면 그의 독백이 무너질까봐 참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답답함을 해결해준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홀든의 독백을 별 생각 없이 깨버린 '피비'였다.

"오빠는 왜 그렇게 된 거야?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오빠가 싫어하니까. 학교마다 싫다고 했잖아. 오빠가 싫어하는 건 백 만 가지도 넘을 거야. 그렇지?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봐. 진짜 좋아하는 것.…그럼 다른 걸 말해줘.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건지 말이야."

홀든은 피비의 말을 듣고 좀 슬퍼지는 것 같았다고 했지만, 곧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꿈들, 생각들을 말했다.

"앨리가 좋아. 그 애가 죽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그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거니? 그래도 좋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던 것 까지 그만 둘 수는 없는 거 아니야?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천 배나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야. 정말 사람들은 실제적인 걸 실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니까. 정말 환장하겠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여기서 피비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혼자의 목소리만 높이고 있었던 홀든에게 중요한 질문을 함으로 가슴 속 저변에 묻힌 진짜 이야기들을 하게 했다. 난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홀든은 왜 그렇게도 피비와 앨리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을 좋아하는걸까? 그들의 순수성, 직관성, 감각성 때문이리라. 숨기는 것도 없이 자신이 맘에 들지 않으면 한번의 걸림도 없이 그대로 표현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가식과 꾸밈, 속임, 거짓 속에 절어 사는 어른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홀든은 그것들을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 홀든은 어린아이들을 절벽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다.

절벽은 세상의 왜곡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빈부귀천을 따지며 그것에 따라 대우가 전혀 달라지는 세상, 연극이나 영화 속 배우들처럼 쓰여진 대본대로 연기하는 가식과 꾸밈으로 점철 된 세상이 절벽 아래의 모습이다.

홀든은 자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졌던 한 어른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세상 속에서 참된 배움과 사귐을 얻지 못한 채 '퇴출' 당한 것을 우울해 하면서 말이다. 홀든은 자신을 누군가 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는 펜시학교를 당차게 떠난 것은 못된다. 사실 그는 학교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나름대로 석별의 정을 느껴보려고 애쓰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도 잡아주지 않은 것이다. 아무도 왜 그가 낙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왜 배우려 하지 않았는지, 사귀려 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은 것이다.

절벽 밑으로 상징화 된 곳이 펜시라고 볼 수 있겠다. 펜시 학교에서 퇴학당한 홀든은 자신의 학교를 기억하며 추상적인 욕들만 늘어놓지만 그는 앤톨리니 선생과 대화하며 자신이 구두시험에 낙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연설을 하는 거예요. 그냥 즉흥적으로 말이에요. 그러다가 연설을 하던 아이가 조금이라도 주제에서 벗어나게 되면 모두들 "탈선"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는 일이었죠. 결국 F학점을 맞았지요.… 그 "탈선"이라고 소리 지르는게 신경이 쓰여서요. 누가 "탈선"이라고 소리지르면 그게 더 듣기 좋다고 느껴졌다는 게 문제였다고나 할까요. 그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저도 주제를 벗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거기에 충실한 것도 싫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주제에 대해서만 성실하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건가봐요. 우리 반에 리처드 킨셀러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는 항상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탈선"이라고 모두들 외쳤어요. 그 애는 아주 소심한 아이였죠. 그래서 자기 차례가 되니까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버지가 장만했다는 농장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삼촌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멋있었어요.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한테 "탈선"이라고 소리지르는건 비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야, 가장 재미있는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거죠. 그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다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겠다는 거지요. 전 누구라도 신나게 이야기 하는게 좋습니다. 빈슨 선생님이나 그분의 수업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죠. 노상 일관성을 가지고 간결하게 말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에 대하여, 앤톨리니 선생은 홀든이 "무서운 타락의 길에 들어서 있는 것"같이 보인다고 하며, 학교 교육에 대해 벗어나려는 홀든의 도피성을 지적한다. 도피하기만 하다가는 잘 못된 것을 보고도, 그저 감정만 상할 뿐이지 어떤 변화를 야기시키지도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도 않고 그냥 단념하려는 홀든에게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충고한다.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 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냥 재능 있고,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불행히도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걸 들을 수 있어.… 그 밖에도 학교 교육이란 건 많은 도움을 주지. 학교 교육이라는 건, 어느 정도까지 받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지. 자기의 사고에 맞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돼. 나중에는 자기 사고의 일정한 크기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이용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거야. 게다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들을 하나한 시험해 보는 데 드는 시간도 절약해 주고 말이지. 결국 학교 교육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알게 해주고, 거기에 맞게 이용하게 해 주는 거야."

앤톨리니 선생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 이유는 학교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앤톨리니 선생에게 학교는 결코 절벽 밑이 아닌 것 같다.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곳, 자기 자신을 가늠 할 수 있는 곳, 즉 자신을 알 수 있는 곳이 학교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홀든에게 다시 학교로 돌아가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하는 것이 먼저 되야 한다며, 구두 표현 과목의 학점도 따야하고, 지식을 키워나가라고 말한다.

홀든은 많이 지쳐있다. 학교의 규격화된 수업 방식들, 그것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면 '탈선'이라고 외치며 주눅들게 하는 교실 안의 권위들에 대해 지쳐있다.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하는' 지루함을 반복해야 하는 것은 홀든을 더욱 우울하게 할 뿐이다.

참된 교육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 교육인가? '탈선'이라는 말이 두려워서 입술을 파르르 떨고 서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인가? '성숙한 인간'은 '주제'에서 동떨어진 말을 하지 않는, 마치 짜여진 대본에 충실하는 배우와 같은 것인가? 아니다. 교육은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은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교사, 학생)들이 진실로 마음이 열리고 움직여서 스스로의 힘으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돕고 격려하는 것어야 한다.

나도 피비가 좋다. 친구한테 트림하는 법을 배웠다며 그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빠에게 자랑하는 순수함, 영화를 보고 시시한 영화인지, 잘된 영화인지 알아차리는 직관을 가진 피비에게 매력을 느꼈다. 순수함과 직관을 가진 피비는 궁금한 것을 토해내듯 질문했다. 그 질문은 상대방을 당혹케 했지만 곧 마음속에 생각지도 않은 것을 내뱉어버리게 하고야 말았다.

교육은 중요한 질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심연에 묻힌 꿈들을 뱉어뱉어 내게 할 수 있는 질문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 질문들은 때론 수업이라는 틀 속에서 의도한 것일 수도 있고, 수업 밖의 관계와 만남 속에서 의도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교육철학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나는 교육이 이렇기를 바란다. 네가 가니, 나도 가고, 가라하니 가고, 가다보니 그냥 가게 되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동(動)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당부한다. 교육은 지식적인 차원을 배움으로써 자신이 가는 이 길이 옳고 그른지 시비를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도야', 혼자서 깨우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동(動)하길 원한다. 혼자 있을 기회를 노리고, 누리길 원한다. 그래, 내 교육철학은 이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기로운이끼 2010-05-2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려던 참인데....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