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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좀 섬뜩하게 느껴진다. 존경하는 교수님에게 소개받은 책이 아니라면 읽어보지 않았을 책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라벨은 루브르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거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책의 표지가 된 이 그림은 소설 전반을 꿰뚫는 그림이다. 그림 중앙의 왕녀 마르가리타, 그녀를 받드는 시녀와 어릿광대. 이 소설은 한명의 왕녀를 떠받들며 시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파반느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역시 위 그림(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며 과거를 추억한다. 3명의 시녀들 중 오른쪽 맨 끝에 자리한 아주 못생긴 여인, 하지만 자꾸 그 여인이 화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20살에 만났던 그녀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뒤늦게 인기배우가 된 잘생긴 남자였고, 어머니는 그런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못생긴 여자였다. 성공을 거머쥐자 아버지는 결국 화자의 가족을 떠나 유명한 여배우와 결혼을 했고, 어머니는 슬픔과 절망 속에 삶을 이어갔다. 작가의 꿈을 꾸던 화자는 20살이 되던 1986년에 대학진학을 잠시 보류한 뒤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생의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불온한 청춘의 시기에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던 요한이라는 인물과, 그 누구도 쳐다보기 싫어하던 못생긴 그녀를 만난다. 주인공은 외모콤플렉스로 필요이상으로 수줍음을 타고, 낯빛이 어둡던 그녀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느꼈고, 곧 못생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알아갈 수록 매력이 있는 여인이었다. 엄청난 독서량으로 박학다식했고, 예술분야에서도 감각이 탁월했다. 서로를 사랑했고, 즐거웠으며 늘 함께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녀는 외모로 인한 사회적 소수자의 상처를 입고 화자의 곁을 떠난다.
외모콤플렉스가 어떻게 둘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순히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발전과 함께 “아름다워 <져야만> 하는 여자들과, 학력, 차, 또 집, 말하자면 힘을 <가져야만> 하는 남자들. 서로에 의해, 서로에 비해, 올라선 서로를 위해 구축하던“(328) 1980년이었다. 자신의 외모가 자신의 삶을 어둡게 했던 것처럼, 나를 사랑해 주는 그 사람에게도 같은 피해를 줄 것이라 생각하니 떠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 그림 속 뽀얀 왕녀 마르가리타와 못생긴 시녀의 대비처럼 이 소설은 “아름다움과 추함”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부함과 가난함”, “능력과 무능력” 등이 잠재하고 있다.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할수록 자신의 빛을 잃게 되는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며 1%의 스타를 만들어내는 99%의 평범한 사람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속에 담겨있다.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빛을 되찾게 할 유일한 열쇠는 바로 “사랑”이다. 작가는 고린도전서를 인용하며 사랑은 온갖 희생과 손해를 요구하지만,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빛이요 힘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을 끝으로 이 글을 맺는다.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을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 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작가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