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기억·서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오카 마리 지음, 김병구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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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좋아서 전자책으로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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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하는 일
조지프 엡스타인 지음, 권진희 옮김 / 사람in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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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크게 가리는 것 없이 책을 읽고 있지만, 어릴 적에는 만화책 아니면 오로지 흥미 본위의 오락 소설만 읽었다. J.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로 환상 문학에 눈을 떴고,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으로 공포 소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만화풍 그림 표지에 삽화도 있는 라이트노벨도 읽었다. 사건이 명확하고, 질문을 던지지 않고, 누군가 감상을 물어본다면 "재미있었다" 외에는 별달리 할 말이 없는 책들에 나는 더 익숙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며, 어릴 때에는 잘만 읽었던 '소설'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읽었던 소설과 지금 읽는 소설이 많이 달라진 탓도 있겠지만, 국어 수업 시간에 어떤 식으로 문학을 접했었는지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쉽게 떠오른다. 나는 때로 모호하거나 난해한 소설들을 접하며 스스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누군가 하나의 명확한 답을 내려주기를 원했다. 마치 국어 수업 시간에서 문학을 접했던 것처럼. 한동안 내가 평론가의 글이나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으리라. ​

─ 작가 조지프 엡스타인의 에세이, 『소설이 하는 일』은 '소설'이라는 문학의 한 갈래에 대해 깊게 파고든다. 저자는 오랜 기간 소설을 읽고, 소설과 관련된 강의도 하며 그렇게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이라는 문학 형식을 총 18개의 주제로 이야기한다.


​나의 오래고 묵은 고민, 소설을 읽을 때의 고민에 대해 좋은 답이 되어줄 것 같아 집어 들었다. ​소설의 행간에서 무언가 느끼려면, 우리는 어떤 것들을 확인해야 하는가. ​─ 이 한 권의 에세이는 '소설 읽기'에 대한 하나의 강의를 듣는듯한 느낌을 준다. 책은 '소설 읽기'를 통해 우리가 변화하는 방식을 짚어주고, 때로는 우리가 이 형식에 너무도 익숙해 무감각해져버린 소설의 요소들 ─ 등장인물, 플롯, 심리, 사건 등 ─ 을 다루며 독자에게 '소설 읽기'의 감각을 새롭게 불어넣어 준다. ​저자가 왜 3인칭이 아닌 1인칭 시점을 선택했는지, 왜 몇몇 중요한 장면을 더 극화하지 않기로 결정했는지, 어떤 장소에서는 복선을 만들고 또 다른 장소에서는 그러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소설의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등장인물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행간을 읽어나가며 달라지지는 않았는가. ​저자는 인생의 여러 단계마다 우리는 소설에서 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하면서 하나의 소설을 다른 나이에 다시 읽는 즐거움도 강조한다. ​─ 열거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닌, 우리들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바로 소설이다. 하지만 16세기부터 등장한 대량 인쇄술로 시작한 소설이라는 형식은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무감각해지고 익숙한 형식이 되어버렸다. 하나의 답만 정해진 국영수만 좇다 보니 잊고 살지 않았나, 사람들로 구성된 우리의 세상은 굉장히 미묘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이러한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잘 쓰인 한 권의 소설이다. 굳이 '소설 읽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 ─ 글쓰기와 책 읽기에 대해 쓴 많은 작가들은 '고전 읽기'를 강조한다. 때론 오락 본위의 소설들을 읽는 것을 허튼짓처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기성세대 독서인들이 '고전 읽기'를 아무리 강조해도 오락 본위의 소설 속에서 한참을 빠져있는 독자들은 늘 존재하지 않는가. 어린 나이일수록 특히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저자 역시 어릴 때는 힘 안 들이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선호했다고 한다. 서두에서 말했듯 나 역시 고전은 전혀 읽지 않았다. ​23쪽에서 저자는 소설에도 영화처럼 읽기에 적절한 나이를 나타내는 등급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고전에서 서술되는 미묘한 심리나 사회상, 철학적 메시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우리가 아직 충분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텍스트에 불과하다. ​기성세대가 오락 본위의 소설들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도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세상에 등장해 버린 것들을 다시 추방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는 오락 본위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싶다. ​그렇게 독자들이 텍스트 읽기를 즐기다가 어느 날 진지한 소설을, 아주 모호하고, 아주 혼란스럽고, 아주 어려운 그런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면 이 책이 하나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

어쩌면 부적절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번역 속에서도,

가넷만큼의 러시아어에 대한 깊은 지식 없이도 러시아 대문호들의 위대함은 드러났다.

그리고 품질이 낮은 번역 속에서도 그 위대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면

그 대상은 위대한 소설가라는 정의일 수도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했다.


─ P.87


책 번역의 질적인 문제는 늘 존재한다.

이 책도 솔직히 말해 번역이 아쉽다.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기도 하고,

주어는 있는데 긴 인용구 때문에 문장을 마무리하는

서술어가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자주 보였다.

번역이 아쉬워 책을 덮기도 했고,

번역이 아쉽다는 후기에 내려놓는 독자도 봤다.


낮은 품질의 번역이어도 내용이 괜찮다면 상관없을까?

좋은 책,

하지만 번역 품질이 중요한 독자에게는 권하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최고의 소설이 제공하는 지식은 열거할 수 있는 지식도,
엄격한 시험을 전제할 수 있는 지식도 아니다.
덜 제한적이고 더 넓고 더 깊은 소설의 주제는 인간 존재 그 자체이며,
아주 각양각색으로,
가끔 혼란스러우면서 겸허한 형태를 갖춘다.
훌륭한 소설을 읽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교육에 관한 최고의 정의와 궤를 같이한다. - P31

정치적 올바름이 문화에 대해 제멋대로 질주하게 계속 놔두면, 정치적 올바름은 소설의 비평, 더 나아가 다른 문화 분야나 교육 분야에서 의견이 다른 비평을 파괴하기도 한다. 남성이 어떻게 여성이 쓴 소설을 비평하는 게, 백인이 어떻게 흑인이 쓴 소설을 비평하는 게, 이성애자가 어떻게 동성애자가 쓴 소설을 비평하는 게 가능할까? - P146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슈라이버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은 훨씬 더 미묘하다.
더 애매모호하고 더 우회적이다.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약간 어려워야 한다.
단, 메시지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메시지는 대개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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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이름 붙이기 (어나더커버)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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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수업 중에 '짜증 난다'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한다고 이야기했다. '짜증' 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기 때문에, 내 안의 다채로운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최근 한국의 부모 사이에서는 아이에게 다양한 감정의 표현을 교육하는 육아 활동이 대세이기도 하다.

나, 너, 우리,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은 마치 포토샵의 색상 피커처럼 참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내 마음을 얼마나 온전하게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는지 곱씹어 보면 참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 색의 삼원색처럼 단순했지만...

누군가는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고,

다른 누군가는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 표현하고자 한다.

2009년, 존 케닉은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직 이름 없는 감정들에 하나하나 이름 붙여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라는 개인은 찰나의 순간에 느낀 모호했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도, 아니 되려 인식조차 하지도 못했었는데 저자의 생각과 그에 대한 집요함에 마침내 온전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는 윌북 출판사를 통해 『슬픔에 이름 붙이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제롬 케이건은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라는 책에서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독자에게 첫 질문을 던진다. 물론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게 그 장에서의 주된 골자였지만, 이를 조금이라도 반증하듯이, 존 케닉은 세상의 언어들을 최대한으로 끌어와 조합해 모호한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Mamihalpinatapai라는 단어가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 있는데, 그 단어처럼 어느 나라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이지만 다소 복잡한 무언가에 대한 것을 한 데 모아 엮은 책인 줄 알았는데 직접 만든 단어들이라고 한다. (※mamihlapinatapai: (명)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굳이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

책의 부제인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이라는 문장답게 대부분의 텍스트들이 단어와 뜻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어의 뜻을 확인하기 위하여 종이 사전들을 재빠르게 손으로 뒤적거렸던 때가 떠오르지만, 그때와는 달리 한 페이지를 펼쳐놓고 오래 음미하게 된다.

모호한 감정들은 텍스트화되어 우리는 이런 감정도 있음을, 있었음을 인식하고, 지나간 세월을 반추해 본다.

나 역시 이 감정을 살면서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던가, 하고.


일부 감정 단어에는 저자가 애정을 담아 쓴 글이 있는데, 스스로와 우리네 삶에 대한 글이라 그런지 나에 대입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이 그저 단어와 뜻만 있었더라면 분명 아쉬웠을 텐데, 이렇게 중간중간 삽입된 에세이가 책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개념을 만들어내는 순간 실재는 방을 떠나고 만다던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확인받고 싶고 복잡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건 사람의 본성일까?

아니면 나만의 집착일까?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기에는 좋다 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함께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그런 대담(對談)을 말이다. 또, 오래 곁에 두다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다가 언젠가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정을 이 책으로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 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

예전에 서평단으로 받아봤던 책이었지만, 좋아서 굳이 다시 사는 수고를 한 책.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사도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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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the 23호 - 책으로의 도피 브리드 Breathe 23
Breathe 편집부 지음 / 브리드코리아(계간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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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주제와 관심이 가는 기고문이 있어서 시험 삼아 구매해 봤습니다.
계간지 제목이 주는 느낌이 안정을 주고 따뜻한 느낌인데 제목에 걸맞은 기고문들이 많이 있었어요.
책으로의 도피라는 부제를 보고 산 건데 요가나 여행, 유스트레스 관리법, 사랑과 상실 이런 글들도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전혀 관심 없을 이야기였는데, 읽다 보니 또 흥미도 생기고 책에서 제안하는 요가 동작은 한 번 해볼 마음도 들더라고요.

외국에서 쓰인 글을 번역해서 만든 계간지라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제공하는 정보 중에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라던가 하는 부분에서요.(예를 들면 중간에 참고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 발행한 건 4권 중 1권뿐이었어요.)

개인적인 성향과는 달라서 정기구독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이런 치유 문화적 성향을 좋아하신다면 이 계간지가 정말 잘 맞으실 분도 계시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에 또 흥미로운 주제가 보이면 구매해서 읽어볼 마음은 충분히 있습니다.



유스트레스를 이해하려면 해당 이벤트와 관련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든 경험을 인지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개인적 관련성을 살펴보는 게 좋다. 이벤트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벤트로 인한 신체적·현실적 스트레스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일반적인 스트레스 증세는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 놓는 것이다. 부정적 상황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한 어려움(예: 수면 장애, 질병, 피로)은 긍정적 상황에서 생기는 유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어려움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미리 알고 계획한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에 휩싸일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를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 두는 것도 유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축복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순간, 오히려 불안해하고 있는 자신을보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긍정적인 이벤트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사실이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 "좋다", "나쁘다", "고맙다", "고맙지 않다" 등의 딱지를 붙이지 않고 유스트레스 자체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 P.11


결핍needy ─ 이 단어에 함축된 의미는 썩 좋지 않다. 냉정하고 참을성이 강한 상대에게 관심과 확신을 요구하는 것 같은 관계의 불균형이 느껴진다. 또한 동정받아야 하거나 심지어 피하고 싶은 대상이라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다. 물론 독립심이 강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부족한 것이 있겠지만, 이들을 결핍이란 단어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에는 비하 혹은 모욕의 의미가 있는 한편, 사람들은 이 단어로 표현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그런 범주에 속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 P.16


욕구가 있다는 것은 나약함이 아닌 인간다움의 증거다.
─ 다니엘 버녹


"친구는 가족의 실수에 대한 신God의 사과 방식이다."
─ P.76


사랑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사랑은 불멸이기에……

─ 에밀리 디킨슨


죽음을 대하는 태도
─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해 알아본다.


○ 고인에게 편지를 쓴다.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고, 그 추억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왜 그리운지 적는다. 마음 가는 대로 풀어쓴다. (또는 아래의 내용을 참조해도 좋다.)
○ 오래된 사진을 모으고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인화하여 앨범을 만들어 고인과 함께한 시간을 기념한다.
○ 자신의 애도 욕구를 인정하고,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지낸다.
○ 슬픔은 선형적이지 않다. 슬픔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왔다갔다하며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이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애도 과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애도에는 '해야만 하는 것'이 없다. 고인이 특별했던 것처럼 모든 애도 과정도 특별하다.

기록하며 기억하기
─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아래 질문을 참조한다.


○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
○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충격을 받은 이유는?
○ 살아 있다면 함께 하고 싶은 것은?
○ 아쉬운 것은?
○ 앞으로도 계속 고인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이유는?


에세이의 기원

'에세이'는 '시도' 또는 '해보기'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단어 '에세essai’에서 유래한다. 이 장르의 초기 형태는 고대 그리스로까지 거슬리 올라가지만, ‘에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는 미셸 드 몽테뉴었다. 부유한 공정 신하였던 그는 공직 은퇴를 기념할 목적으로, 1571년 38세의 나이에 자신의 서재에 라틴어 문구를 새기면서 일이나 의무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그런 다음 프랑스 남서부 자신의 영지에 있는 건물 정원의 탑으로 올라가 책과 글쓰기에 몰두했다. 몽테뉴의 접근법은 고대인에게서 인용한 구절 “자신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유로운 사고를 시작한 이 귀족은 하나의 탐색에 돌입했다. 글쓰기를 자기 탐구의 도구로 삼아 여생을 사는 최고의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서사시에서 일상에 이르기까지, 몽테뉴의 정신적 탐욕으로부터 제외된 것은 없었다. 그는 전쟁, 냄새, 엄지손가락, 식인종, 술기운. 괴물 같은 아이들,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모든 것에 관해 썼다. 107편에 이르는 그의 에세이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긴 주제와 관념에 관한 생각을 전달하려는 유쾌하고 진정한 시도였다. 학구열을 지닌 교양인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언가를 모를 때, 따분할 때, 또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을 때, 두려움 없이 이를 드러냈다. 글쓰기를 향한 이 정직하고 숨김없는 접근 방식은 당시 혁명적이었고 큰 영향력을 미쳤다. 다른 작가들은 이를 '날 수 있는 허가'로 받아들였고 에세이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19세기 초에 이르러 에세이스트는 가장 유명한 작가군에 속했다. 영국에서 윌리엄 해즐릿만큼 존경받는 작가는 없었는데, 그의 작품은 1805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그는 예술, 문학, 정치에 관한 글을 쓰면서 엄청난 명성을 쌓았다. 눈부신 문체로, 그는 정치인과 유명인사에 대한 혹독한 비평을 발표했다. 전기 작가이자 저명한 학자 조나단 베이트가 '최고의 영어 산문 작가'로 평가한 해즐릿의 초기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감동을 주지만, 몽테뉴에게 빚졌음을 인정한 후기의 개인적 에세이가 최고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몽테뉴의 영향력은 20세기에도 여전히 강력했다. 그의 헌신적인 추종자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혼란스럽고 다채롭고 불완전한 영혼의 전체 형상과 무게, 색상, 둘레를 묘사하고, 자신의 별난 생각을 따르는, 이 자신에 관한 이야기, 이 예술은 바로 오직 한 사람, 몽테뉴만의 것이다.”
─ P.88


그냥 사람다워질 것

개인 에세이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작가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경험한 것 이상의 아이디어를 찾고 연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에세이스트는 자신이 쏟은 노고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젠이 생각하기로, 그것은 보편적이지만 과소평가 된 글감을 값지게 활용하는 것이다. "느끼는 것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 듣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의 학문 체계는 사고를 우선시하여, 감정은 여성스럽거나 히스테리적이거나 창피한 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그냥 좋은 인간이 되어보는 것이 어때?'라고 묻는다. 에세이를 쓰는 연습은 세상에서 사람이 되는 연습과 아주 비슷하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한계, 즉 자신의 능력 혹은 사고의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에세이 쓰기는 그 모든 것을 글로 옮기는 노력이다."
─ P.92


결핍needy ─ 이 단어에 함축된 의미는 썩 좋지 않다. 냉정하고 참을성이 강한 상대에게 관심과 확신을 요구하는 것 같은 관계의 불균형이 느껴진다. 또한 동정받아야 하거나 심지어 피하고 싶은 대상이라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다. 물론 독립심이 강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부족한 것이 있겠지만, 이들을 결핍이란 단어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에는 비하 혹은 모욕의 의미가 있는 한편, 사람들은 이 단어로 표현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그런 범주에 속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 P16

느끼는 것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 듣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의 학문 체계는 사고를 우선시하여, 감정은 여성스럽거나 히스테리적이거나 창피한 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그냥 좋은 인간이 되어보는 것이 어때?‘라고 묻는다. 에세이를 쓰는 연습은 세상에서 사람이 되는 연습과 아주 비슷하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한계, 즉 자신의 능력 혹은 사고의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에세이 쓰기는 그 모든 것을 글로 옮기는 노력이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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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고독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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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젊은이들이여,

내가 어떻게 여러분을 고독으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듯

고독 역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中


물리학자 출신의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의 데뷔작 『소수의 고독』이 감각적인 표지로 새롭게 재출간되었다. 『소수의 고독』은 소수[素數]라는 수학적 개념을 통해 고독할 운명을 지닌 이들의 서사를 그려낸다. 어린 날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두 남녀, 알리체와 마티아가 등장한다.


알리체는 스키를 타던 중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가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영원히 절뚝거리게 되었다.

마티아는 친구의 생일파티에 발달장애를 가진 쌍둥이 동생 미켈라까지 데리고 가기 싫었다.

미켈라를 잠깐 공원에 두고 다녀오자, 마티아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게 미켈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장애, 죄책감, 트라우마

자해하는 우리들


알리체와 마티아의 실수는 너무도 사소했고, 결과는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겨우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뿐인데, 잠깐 공원에 두고 갔을 뿐인데. 그래서 더욱 비참한 운명이리라. 겉으로는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그들이 지닌 고통은 자신을 해하는 형태로 종종 등장한다. 알리체는 만성적인 식이장애를 겪고 있고, 몸에 타투를 새긴다. 마티아는 자신의 두 손을 칼로 긋거나 불에 그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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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두는 또 다른 삶을 원해요.

정말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아니 거의 없고…

다른 삶을 원할 뿐이죠.


─ 『죽음의 격』  中


  『죽음의 격』이라는 책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로 안락사를 원하는 이들에 대한 이런 설명이 있다. 몸이 아니라 마음에 문제가 생겨서 죽고 싶은 이들은 사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삶을 원할 뿐이라고. 자해의 이유는 저마다 다른 듯하면서도 서로 닮아있다. '다른 삶'을 원하는 우리들. 문신을 새기면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몸에 상처를 내면,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발적으로 몸에 차이를 만들어내며 알리체와 마티아는 그런 희망을 품은 게 아니었나. 다리를 절지 않아도 됐을 나, 미켈라를 잃어버리지 않은 나로 되고 싶은 그런 희망을.


사랑 끝엔 결국 고독해지는 운명이


서로의 운명을 알아보며 알리체와 마티아는 잠깐 가까워지지만 끝내 다시 멀어지는 선택을 한다. 행간을 읽으며 이러한 흐름이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내심 조금은 다른, 의외의 결말을 기대했었다. 마티아도 알리체도 이제 그만 행복해지면 안됐던 걸까.


/

소수(素數)는 오직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진다.

소수는 의심 많고 고독한 수다. 

어느 때는 소수 역시 다른 평범한 수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그럴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P.173


소수는 나누어져도 1과 자기 자신으로밖에 될 수 없다. 소수를 억지로 나누어버리면 숫자는 깨져버린다. 마티아는 그걸 알고 있기에 알리체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으리라. 125쪽에서 마티아는 교과서는 우리가 해할 일이 전혀 없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수학적 난제는 여러 번 부딪히고, 풀어도 다치지 않는다. c.v.d.로 결론짓더라도 서로 후련할 뿐, 두 번 다시 마주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결론이 났다'라는 말은...

"정말 공부가 그렇게 좋아?"
마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거니까." 마티아는 짧게 대답했다.

공부는 혼자 할 수 있고,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은 이미 죽어서 싸늘해진 데다 곱씹을 수 있어 좋다고 그는 알리체에게 말하고 싶었다. 교과서의 모든 페이지가 똑같은 온도를 지녔다는 것, 그것들은 우리가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것, 그리고 전혀 해롭지 않고 우리도 그것들을 해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침묵을 지켰다. - P125

소수(素數)는 오직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진다. 소수는 모든 수가 그렇듯 두 개의 수 사이에서 짓눌린 채, 무한히 연속하는 자연수 안에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다른 수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다. 소수는 의심 많고 고독한 수다. 그 때문에 마티아는 소수에서 경이를 느끼곤 했다. 때로는 소수들이 실수로 그런 수열에 놓여, 목걸이에 꿰인 진주들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때는 소수 역시 다른 평범한 수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그럴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P173

대학 1학년 때 마티아는 소수 가운데 좀 더 특별한 수가 있다는 걸 배웠다. 수학자들은 그들을 ‘쌍둥이 소수‘라고 부른다. 쌍둥이 소수는 근접한, 거의 근접한 두 수가 한 쌍을 이루는데, 그 사이엔 항상 둘의 만남을 방해하는 짝수가 있다. 11과 13이라든가 17과 19, 또는 41과 43 같은 수들이 그렇다. 인내심 있게 계속 세어나가면, 이 쌍둥이 소수들이 점점 희소해지는 걸 발견하게 된다. 오직 기호로만 이루어진 고요하고 규칙적인 세계에서 길을 잃은 채 더욱 고립된 소수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그때까지 만난 쌍둥이 소수들은 우연의 산물이며, 결국 그들의 진정한 운명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더 세어볼 마음이 들지 않아 그만두려는 찰나 서로 꼭 붙어 있는 한 쌍의 쌍둥이 소수를 만나게 된다. 수학자들 사이에선 계속 수를 헤아리다보면 언제나 다음 쌍둥이 소수가 나타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비록 발견될 때까진 어디에 위치하는지 단언할 수 없지만. - P174

어떠한 존재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정확한 경계는 뭘까. - P192

그들이 거쳐온 길은 공통적이었다.
머리 전체를 물속 깊숙이 집어넣었다가 바닥을 치고 나서야 수면 위로 올라와 겨우 숨 쉴 수 있게 되는 그런 길. - P223

부모님의 애정은 수요일마다 전화로 늘어놓는 끼니나 더위, 추위, 피로, 때로는 돈에 대한 걱정들과 작은 배려로 귀결되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 놓여 있었다.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주제들, 주고받아야 할 사과와 용서 그리고 바로잡아야 할 기억들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 응어리 속에. - P374

잃은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다만 서리가 내려 얼어붙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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