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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는 왼쪽에 -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
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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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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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무기력이 꽤 학습된 상태이다. 사건사고에 대한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그런 뉴스가 있어도 '선을 넘는 일'은 줄어들기는커녕 증식하니, 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겠다는 그런 절망 말이다. 개인에서 전방위로 뿜어져 나오는 혐오와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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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부르주아 사회는 사회주의로 이행하느냐,
야만으로 후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
지금까지 우리는 이 말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반복해서 말했을 것이다.
(Junius, 1916)
자본주의가 가진 야만의 속성에 대한 분석이자 이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인류는 야만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적대가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비롯했으며,
그것이 인류를 야만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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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무한경쟁과 노동멸시의 사회를 지나, 마침내 계엄사태까지 이르게 되자 한 교수가 펜을 들었다. 노동 빈곤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보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연구해온 강신준 교수가 사계절 출판사를 통해 『비상구는 왼쪽에』를 출간했다.
『비상구는 왼쪽에』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마르크스의 사상을 다시 불러들이고, 그간 쌓여온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으며 한국사회가 야만이 아닌 문명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제대로 된 마르크스를 들여다보는 데에 있음을 말하는 책이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인데, 혐오와 적대, 폭력적 약탈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책은 그 갈등이 자본주의에 있음을 밝히며 책은 방벽을 세웠던 로마 야만의 역사부터 살핀다. 야만은 현재의 시간만을 보는 단면적 인식 때문에 타인을 '관계'의 대상이 아니라 부정의 대상으로만 간주했다고. 이 문제에 마르크스는 고쳐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변증법'이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혁명이 번번히 시행되었으나 늘 실패로 돌아가는 역사도 조명한다. 혁명이 단번에 완성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저자의 지적에 세상을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선이 조금은 희망쪽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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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로 태어나 꽤 좌편향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했었는데, 책에 공감하면서도 뭔가 풀뿌리를 씹는 듯 소화는 잘 안되었던 책이다. 이미 두 세기가 넘게 이어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 정작 중요했던 마르크스의 사상은 잘못되었거나 삶에서 아예 빠져버렸으니 어려웠던 게 아닐까. 맑스엥갤스연구소를 설립해 번역 작업을 꾸준히 해온 저자의 저작물을 조금 살펴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님의 필사책에서 받아 적은 문장이 떠오른다. 카를 만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문장을 발췌하고 교수님의 코멘트가 달린 글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다고 믿지만, 어떤 경우 우리의 생각은 특정 시대의 지배적인 생각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일 수도 있다고. 카를 만하임은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려는 욕망 때문에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식의 존재구속성을 알아채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에게 이 글은 그 절망을 의식하면서 꼰대 세대가 MZ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밑천을 긁어모은 것이라는 따뜻한 고백을 한다. 자본주의 시대의 지배적인 생각 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비상구를 들여다볼 것인가? 패배와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 책 한 권에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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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의지가 사라진 세상에는 왼쪽도, 오른쪽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