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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란 무엇인가 - 노동 멸시의 역사를 넘어 노동 민주주의로 ㅣ 박홍규의 사상사 3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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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들녘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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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불편해지는 말이 있다. 학부모가 자녀에게 공부 열심히 하란 뜻으로 한다지만 멸시의 시선이 꾹꾹 담겨있는 말,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커서 저런 일한다". '저런 일'이란 대체로 몸이 비교적 편한 사무직보다는 흔히 고된 현장직을 일컫는 것이리라. 또 동북아 계열로 아시아인 중에서는 비교적 하얀 피부를 가진 한국인 아이돌이 종종 화이트 워싱 논란의 중심이 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항변하고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얀 피부에 대한 동경은 백인 때문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미적 기준"이라고. 그 미적 기준의 기저에는 노동하지 않는 계급에 대한 선망이 숨어있으리라.
노동 없이 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데, 우리는 절로 노동을 천시하고 멸시하게 되었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멸시하는 노동을 기꺼이 맡아서 하는 자가 있기에 이 사회가 그나마 굴러가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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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명예교수로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 법학자이자 자신만의 사상을 펼치는 저술가 박홍규 교수가 '우정'과 '노년'에 이어 이번엔 '노동'을 이야기한다. 박홍규의 사상사 그 세 번째, 『노동이란 무엇인가』가 지난 8월 들녘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책은 한국인은 게으르다는 일제강점기 이후로 이어진 대대적인 가스라이팅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여는 책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노동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민족이 나태했기에 일본에 침략당했다는 보수 우익 철학자를 인용하며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 아무리 좋은 사상을 남긴 철학자나 작가라 하더라도 저마다 가졌던 노동관만큼은 '노동'친화적이었든, '노예제'친화적이었든 포장 하나 없이 솔직하게 풀어버린다. (글을 읽으며 괜히 또 호기심이 동해 박홍규 교수님의 사주를 찾아보았더니 권위와 규칙에 도전하는 상관[傷官]이라는 글자가 월지에 있었다고….)
세네카는 "당신이 노예라고 부르는 자가 당신과 동일한 기원을 가지며,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것을 먹고 마신다는 점을 명심하라"라고 했다. 그렇다면 세네카가 노예를 존중했던 걸까? 하지만 세네카 자신은 노예를 함부로 해고하기도 했고 음모와 사기를 주인에 대한 노예의 전형적인 태도로 간주했던 태도 역시 밝히며 노예를 두는 시스템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던 뭔가 모순적인 태도에 시대적 한계를 느끼면서도 약간의 실망도 느껴버렸다.
박홍규 교수님이 이렇게 시대적이고 지역적으로 노동관을 살피는 데에는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서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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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멸시의 시대에 노동에 대해 생각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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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도, 선하지도 않고 진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고역이고 고통이고 고생일 뿐입니다.
그러니 가능한 한 열심히 일하지 말고, 적게 일하고 많이 노세요.
이것이 이 책의 결론입니다.
버드에 따르면 인구의 4분의 3에 이르는 양반 계층의 착취, 관공서의 가혹한 세금, 총체적인 정의의 부재, 모든 벌이의 불안정, 비개혁적인 정책 수행 등의 문제가 있었지 애초부터 DNA가 게으른 건 아니라고. 우리가 노동에 회의감을 느끼고 멸시로 이어지는 데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인식하고, 우리들의 그릇된 노동관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하나의 방식만을 단정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경계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노동하지 않는 자와 노동하지 않는 자의 몫까지 노동하는 자가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노동 멸시와 지식 숭배의 봉건주의적인 사회가 아닌, 직업의 귀천이 사라지고 모두가 적게 노동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읽어야 할 책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