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의 어둠
사와무라 이치 지음, 김진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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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때는 저녁마다 친구와 공포영화를 보는 게 일상의 낙이었다. 『곤지암(2018)』으로 시작해 『온다(2018)』, 『악마와의 토크쇼(2024)』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봤다. 지금은 서로 바빠져서 못 보고 있지만….
그때 봤던 공포영화를 생각하면 호러 장르의 책은 뭔가 아쉬울 때가 많다. 각자의 읽는 속도가 제각각인 탓에 점프 스케어도 무의미하고, 잔혹한 묘사 역시 독자의 상상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저 글일 뿐이다. 효과음은 잘못 쓰면 그저 웃기기만 하다. 물론 공포영화도 어설프면 시시하고 코미디 영화보다 웃기다. 그렇기에 더욱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 아닐까?

'공포소설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하고.


2015년 <보기왕>으로 제2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하며, 'J-호러의 혁신'으로 불리는 사와무라 이치가 처음으로 초단편 괴담집을 출간했다. 21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책 제목은 『한 치 앞의 어둠』. 표제작 없이 제목만으로 이 괴담집의 성격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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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선빌리지 B동' 13층에서 1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의 층계참은 투신○살의 명소이다.
이곳에 대해 설명하는 누군가.
나는 설명을 들으며 그곳으로 따라가고 있는데,
이 사람은 이곳에 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걸까.

【수로】
초등학생 남자아이 세 명이 축구를 하다 그만 축구공을 수로에 빠뜨린다.
속을 들여다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결국 한 아이가 수로 속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들린 건 '으아악'하는 단말마와 함께 쑥 하고 떠오른 피투성이 축구공.
이 수로 아래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

【검푸른 죽음의 가면】
그 결혼식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정문은 아무리 애를 써도 열리지 않고,
카메라맨은 넘어져 얼굴 전체가 까졌으며,
요리사는 한 시간 동안 손가락을 세 번이나 베였다.
단순한 불행일까, 아니면 응보일까, 천벌일까.
신부의 죽은 옛 연인 A에 대한 소문이 그 결혼식에 유령처럼 감돌고 있었으니.

한 치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매우 짧은 거리를 뜻한다. 그 앞에 놓인 어둠 같은 이야기들. 사와무라 이치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상태로 독자를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꼭 종이에 적힌 대로만 행동해야 한다. 지시는 때론 의미를 알 수 없다. 규율을 어길 시 화자를 잡아먹을 듯한 무언가의 웃음소리와 불안에 떠는 화자의 감정은 거대한 폭의 낙차를 그린다. 정확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고 금기나 추측만이 존재하는 불친절한 여백은 텍스트로 사람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방법에 대한 사와무라 이치만의 답변이 아닐까.

2ch 괴담 같은 짧은 괴담류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무조건 취향일 것이다. 한때 그런 글들을 미친 듯이 읽었던 사람으로서 스레드 괴담 특유의 맛이 느껴졌던 책. 텍스트가 주는 공포에 아직 희망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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