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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고백
미키 아키코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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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블루홀식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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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현 호쿠토시 XX마을 모토무라 히로키 씨의 별장 2층 베란다에서 모토무라 씨의 아내와 아들이 추락했다.
약 13미터 아래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토무라 씨의 아내 미즈카 씨와 아들 도모키 군은 추락 당시 충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살인'이 아니라 '사망'이었다. 모토무라 미즈카를 취재한 잡지사의 편집자, 후지이 유리코가 받은 미즈카의 수기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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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이런 메일을 받으셔서 분명 당혹스러우시겠죠.
모토무라 미즈카가 미친 것 아닐까.
그렇게 의심한다고 해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 사실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 피해자 모토무라 미즈카의 수기 中
이 수기로 인해 히로키는 모자 살인 혐의로 체포를 당한다. 별장의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한 히로키는 순식간에 피고인이 되고, 그의 변호인으로 변호사 무쓰기 레이가 선임된다. 죽은 자의 고발, 산 자의 변명. 모토무라 가와 얽힌 주변인들의 진술이 진행될 때마다 사건의 양상은 뒤집히고, 망자는 말이 없으니 피고가 된 히로키에 대해 무고, 혹은 정당방위, 때론 연민이 느껴질 정도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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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는 실로 다양한 살의가,
그것도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진술을 몇 번이고 되새기다가
어느 순간 문득 이 재판에서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던
또 다른 살의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작은 위화감에서 시작됐습니다.
─ 변호사 무쓰기 레이의 편지 中
변호인 무쓰기 레이는 이들의 언어 속에서 어떻게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고 하나의 결론을 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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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가 '추리의 정밀 기계'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가, 미키 아키코의 2014년 출간작, 『패자의 고백』이 블루홀식스 출판사를 통해 마침내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미키 아키코의 작품 중 『기만의 살의』와 『귀축의 집』이 이미 같은 출판사를 통해 선보인 적이 있는데, 이미 두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패자의 고백』에서도 전작(前作)들의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 『패자의 고백』은 『기만의 살의』와 『귀축의 집』이 가진 저마다의 특징이 잘 녹아있는 미키 아키코스러운 작품이었다.(*일본에서의 출간 순서를 따지면 사실 『귀축의 집』이 제일 먼저고, 그다음이 『패자의 고백』, 『기만의 살의』가 비교적 최신작이지만….) 『기만의 살의』에서는 서간체 형식으로 42년 전 독살 살인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는 추리물을, 『귀축의 집』에서는 진술 형식의 독백체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다뤘는데, 이번 『패자의 고백』에서는 '편지를 보낸 망자'와 '살아있는 이들의 진술'을 통해 변호사 무쓰기 레이가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
미키 아키코는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어서 그런지 진술이나 재판 과정에 대한 설정이나 문장이 치밀하다. 기사와 편지, 증언 외에는 소설에서 흔히 묘사되는 서술 같은 것도 없지만 흐름에서 어색한 부분을 느낄 새도 없이 한 편의 극을 보는 느낌이 들 것. 놀라운 반전이 있는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거짓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쪽에 더 가까운 추리물이었다. 관계자 여덟 명의 저마다 다른 증언에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야 흥미진진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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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축의 집』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을 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장 집안에 정신이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패자의 고백』역시 그런 복잡한 가정사가 있긴 하지만 비교적 순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진상에 대한 궁금증을 한시도 놓지 못하면서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국판 기준으로 미키 아키코의 전작(全作)을 탐독한 독자로써 미키 아키코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귀축의 집』보다는 『패자의 고백』을, 이미 전작(前作)을 읽은 독자에게는 이전 작품들의 잔상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패자의 고백』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변호사 무쓰기 레이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미네르바의 보복』도 빠르게 만나보기를 고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