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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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에 푹 빠지기 시작하면 특정 작가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보이게 된다. 좋은 문장을 인용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그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 나에게 있어 횔덜린도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었다. 『히페리온』을 꼭 읽어 보고 싶어서 샀지만, 산 책은 잘 읽지 않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어서 그만…(중략).


​문학 작품을 포함해 거의 모든 글은 작가의 삶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런 걸까, 독자들이 실제 작가의 삶까지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드문 느낌이다. 하지만 어떤 작가의 삶에 특정한 키워드가 들어간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횔덜린'의 '광기'라든지….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횔덜린이 밀회를 하던 수제트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다가 발각되어 추방되고, 수제트 사망 이후에 점점 말과 행동이 비논리적이게 되며 교사 생활을 실패하며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했던 1806년부터 임종까지의 횔덜린의 삶을 주목한다. 연대기의 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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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이 구원의 역사에서 결정되든,
혹은 온전히 자연적인 역사에서 결정되든
연대기 작가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 P.10



프롤로그로 횔덜린의 광기가 드러나는 시점과 이 이전의 삶을 빠르게 보여주고, 연대기 시작의 첫 몇 페이지는 같은 시기의 괴테의 삶을 병치하고 있다. 1806년 1월 14일, 횔덜린의 어머니는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남편에게서 상속받은 유산마저 모두 소진했다"라며 횔덜린의 질병 치료를 위한 지원 요청으로 시작하는 글과는 대조적으로 괴테는 같은 날 저녁에 극장에서 자신의 5막 중 비극인 <스텔라>의 리허설에 대한 일기를 기록한다. 횔덜린이 정신병원에 실려가며 처방을 받는 그 사이에도 괴테는 작품 네 번째 권이나 『색채론』의 교정쇄에 대해 출판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등 여전히 잘나가는 작가였다. 횔덜린의 1809년 마지막 문장은 '결국 이 출판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로 끝난다.


이 대비가 선명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이후의 횔덜린의 삶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데, 이는 저자의 의도적인 삽입이었을까? 횔덜린이 괴테와 실러의 명성에 가려져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던 말이 있지만, 횔덜린과 괴테, 이 두 인물의 역사를 병치해서 보니 그 비운이 깊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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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라도나 6g
- 디기탈리스 푸르푸레아 2g
- 캐모마일 및 아니스 축출물 희석, 1일 3회 한 스푼씩 복용

─ 9월 16일 기록자 아우텐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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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이후에는 횔덜린의 삶의 연대기만이 등장한다. 횔덜린은 그럼에도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부정적인 느낌의 '광인'같지는 않았다. 글이라서 횔덜린의 언행이 정제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지지와 연대가 횔덜린을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게 도와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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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폐허와 광기 속에서 시를 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들이지만요.

─ P.141


비록 ​말년에 이르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를 쓴다는 진술이 있지만 이 책이 그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니, 그의 작품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횔덜린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의 삶의 연대기 또한 놓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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