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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위즈덤하우스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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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필사를 즐기지만, 최근 여러 이유로 구매에 소극적이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가격에 비해 글이 너무 적어서.
두 번째, 내가 왼손잡이라서 책에 글을 잘 안 쓰게 돼서.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만년필과 잉크로 필사를 즐겨 하는데 대체로 책의 종이가 버티질 못해서.
이 세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궁금한 필사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도 일단 구매를 보류하게 된다. 그냥 책 읽고 내가 직접 문장을 수집하지 뭐, 만년필 버티는 노트에, 같은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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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의 필사 책 기강 잡기
위즈덤하우스에서 다양한 필사 책이 나온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두 시인의 필사 책들은 정말이지 보법이 다름이 느껴진다. 이러한 개인적 단점들을 모조리 상쇄해 준 이번 필사 책이 오은 시인의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과 유희경 시인의 『천천히 와』였다. 받았던 그 주의 주말에는 무아지경으로 이 필사 책만 끌어안고 살았으니...
이번에 나온 두 권의 필사 책은 시인의 에세이가 주로 있고, 에세이 편마다 좋은 문장들을 일부 발췌해 말미에 필사할 수 있는 페이지를 따로 마련했다. 시인의 글이라 매 편 유려한 문장들에 깊이 빠지게 해서 사실 통필사를 하고 싶게 만든다. 필사의 페이지가 확 줄어든 건 이 좋은 글들을 더 많이 누리라는 출판사와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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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한 옛날과 선명한 그때 사이로,
속삭이듯 밤이 왔다.
─ P.14, 「속삭이다」
오은 시인의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은 2020년 겨울부터 2021년 여름까지 <한밤중에 찾아온 용언> 코너를 위해 쓴 에세이 24편이 있다. 속삭이다, 흐르다, 그립다, 쓰다 등 밤마다 단어 하나로 써 내려간 글들. 이렇게 써진 오은 시인만의 감성이 녹아있는 글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바탕으로 생각에 침잠하게 만들지 않을까. 이 익숙한 단어로 이런 생각을 하다니, 경탄하게 되는 것은 덤이다. 책은 꼭 필사를 즐기지 않아도, 읽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 필사를 취미로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낮보다 밤을 더 사랑한다면, 이 필사책으로 더 사랑스러운 밤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밤이 좋은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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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필사 책에 권태감을 느끼던 와중 필사 책의 넥스트 레벨을 본 듯해 너무 반갑고 기쁘다. 앞으로 다양하고 많은 시인들이 이런 책을 내줬으면 좋겠다. 그땐 구매?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