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초기작을 지나서 그의 장/단편 전편과 몇몇 에세이를 완독하게 되었다.
원래 책들을 모두 옆에 두고 조금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책들을 어딘가로 보내게 된 상황인지라 간단히 정리해야겠다.
가장 처음에 읽었던 것은 '상실의 시대'였다.
한국판 제목을 따로 붙이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이지만,
이 제목은 정말 잘 붙여진 것 같다.
상실감이라는 키워드가 배어나오는 제목이다.
상실감은 하루키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무엇에 대한 상실감인지에 대하여 평론가들은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무엇을 잃는다.
자신이 잃은 것을 통해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상실감이 변화하지 않는 키워드라면,
하루키 작품 속에는 변화하는 키워드가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저 너머의 세계, 또 다른 세계이다.
최초 '댄스댄스댄스'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이 이공간은 여러 작품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에게 사건전개의 힌트를 주는 공간이기도 하고,
죽어버린 사람들의 잔재가 남아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내 자신이 구현화한 닫힌 세계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이 공간의 의미를 잘 알수 없어서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하여 동원한 도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읽어나가면서 각 측면을 조합해보니,
세계의 의미가 드러났다.
그것은 내가 상실한 것들이 모여 있는 세계이다.
그래서 내가 잊혀진 기억이 나에게 힌트를 주기도 하고,
나의 삶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잔재가 남아있기도 하고,
내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모아 세계가 구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와 이를 대하는 주인공들의 반응이
하루키 후기로 갈수록 삶에 긍정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결국 내가 상실한 것은 그 세계 속에서 살아 있으면서
내가 현실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현실세계에서 끊임없이 스텝을 밟아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상실한 가능성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선택한 길을 꽃피워야 하겠고,
내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온전한 하나의 인간으로써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모로 보면 우리가 상실한 모든 것들은 어딘가에서 우리의 삶을 응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실한 것들에 대해 후회할 줄만 알았을 뿐,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옛 광영의 기억을 가진 기사는 아무리 쇠락해도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상실의 바람이 가슴 속 상처를 헤집으며 불어오더라도,
그로인해 눈물흘릴지언정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기리기 위해 우린 쓰러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