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의 고요를 즐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끔 그 고요는 내가 미처 신경쓰지 못한 새 적막으로 변해버리곤 한다.

어스름이 지는 시간에 눈을 뜨게 되거나

노트북을 덮고 문득 고개를 들거나 하는 그런 때.

그러고나면 적막이 있는 곳에 찾아드는 손님들이 내 곁으로 온다.

아니, 적막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곁으로 내가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힐끔 옆을 쳐다본다.

역시.

희뿌옇긴 해도 시야의 끝에 분명히 보인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이가 그곳에 서 있다.

그이의 이름이 '불안'이라는 건 알지만 그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고개를 홱 돌린다.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그이가 더 빠르다.

어느새 내 시야의 끝, 정확하게 그이를 볼 수 없는 곳으로 움직였고,

그 어른거리는 모습이 나를 왠지 불안하게 한다.

 
내가 한 번 움직였으니까 이번엔 그이 차례.

그이는 슬며시 내 옆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움직이는 걸까.

다가오고 나서야 나는 그이가 바로 옆에 와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물론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이가 원하는 것이 언제나처럼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는 것이라는 걸,

긴 속눈썹에 내 귓볼에 닿도록 얼굴을 파묻을 것이라는 걸,

그로인해 결국 난 그이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난 이 과정 속에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냥 다시 한 번 고개를 홱 돌려본다.

이번에는 몸까지 움직여질 정도로 격하게 아까보다 더욱 빨리 움직인다.
 
하지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잊지 못하기에, 두 눈은 누군가를 쫓는 것을 멈춰버렸다.


격한 움직임의 잔향이 사그러질때쯤 나는 잊을 수 없는 포옹을 받는다.

나보다 키도 크면서 내 목에 얼굴을 묻곤 두 팔을 내 등 뒤에서 포개어 감싸안는다.

나는 무력감에 젖어들며 눈을 감곤, 얼굴을 모로 기댄다.

시간이 흐름을 알 수 없다.

공간의 구조를 알 수 없다.

온전히 우울에 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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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우울이 나를 안은 저녁, 불안이 바라보고 있었다'가 원제로

글의 내용이 더 있지만, 조금 천천히 써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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