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 전에 다녀왔다.

모네 전 자체는 작품의 수나 질에서 조금 만족도가 떨어졌다.

다만 모네가 백내장을 앓게 되면서 그린 그림이 그 이전의 그림에 비해 추상화적인

요소가 훨씬 강하다는 점을 알게 된 -그리고 그 그림들을 보게된 - 수확은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나의 추상화를 보는 눈이 꽤 낮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면 더욱 즐길 수 있었을텐데.

 

내가 느끼기에 형태는 일종의 기호이다.

그리고 색채는 에너지이다.

기호는 우리에게 공유된 의미를 전달하고

 

따라서 기호가 확실한 그림을 보면 우리는 그 의미 도출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아가서는 그림에 담겨진 우의를 해석하는 경지에 나아갈 수도 있다.

 

추상화에서는 이 기호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흑백 추상화가 있는지는 견문이 좁아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본 추상화는 대개 기호를 무너뜨린 면과 선, 그리고 색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색채의 해석이다.

색이 주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일견 난삽하게 흐드러진 색채의 향연에서 어떠한 감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색을 보는 눈에 의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색채 또한 제한된 기호이며,

그 기호가 의미하는 것은 어떤 에너지의 속성과 양과 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가 내가 한계를 느끼는 부분인데,

나는 그 색채의 의미를 보는 눈이 떨어진다.

그 덕에 추상화 앞에서는 작아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러 찾아보는 것도 아니니 과연 이 쪽으로 눈이 떠질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행인 것은 내가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의 기호가 포함된 그림만 해도

내가 죽을 때까지 보아도 다 못볼 정도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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