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생명 - 지구의 위기 앞에 다시 생각하는 신학과 경제
샐리 맥페이그 지음, 장양미.장윤재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9월
품절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활동하며 존재한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와(피조물의 모든 작은 부분과) 가깝다. 하나님은 우리의 숨 중의 숨이요, 우리를 사랑하게 만드는 사랑이며, 우리의 행위를 지탱하는 힘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하나님을 알게 되면, 만물과 모든 생명, 사랑 그리고 힘의 근원이자 목적인 하나님을 알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삶 안에서 이러한 실재들의 매개가 된다.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게 되고(건강과 행복을 회복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을 도울 수 있게 된다. 구원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우리 각자는 지구의 일부만을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임무다. -41쪽

사물들은 나와 내 욕망과의 관련 속에서 혼돈에 빠져 있지도, 그렇다고 질서를 이루고 있지도 않다.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련 속에서 질서 지워져 있다. 현실은 이 세상의 기준(이나 나의 기준)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이들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사랑에 의해서 비로소 '이해된다.'-41쪽

특권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십자가의' 삶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여부라기보다 우리가 저지른 무거운 죄 - 다른 이들의 빈곤화와 지구의 붕괴에 침묵으로 동조한 죄 - 를 회개할 것인가다. 찰스 버치(Charles Birch)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소박하게 살 수 있도록 더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 모든 북미 그리스도인들이 '부유한' 것은 아지만 대부분은 탐욕스러운 소비자들이다. 그런데도 풍요로운 삶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교회들은 거의 없다. 우리는 대안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스스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은 물론 끝없는 소비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대안적 삶이 선하고 풍요로울 수 있는가?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질서 지운 현실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 안에서는 지구를 위해 좋고 올바른 관계들이 우리의 기준이 된다. -44쪽

가장 기본적으로 성장이라는 목적이 의심스러운 이유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구 중산층의 생활양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지구가 4개나 더 필요하다!
나아가 성장이라는 가치는 다른 많은 가치를 배제한다. 이 점은 성장 지표인 국내총생산(GDP)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GDP란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금전거래의 총합이다. 이 수치는 한 나라의 경제가 '건강하다'고 간주되기 위해 계속 올라가야 한다. 사실 이 수치가 빨리 그리고 더 높이 상승하면 한 나라의 경제는 더욱 건강하다고 판정받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국가의 GDP가 성장했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모든 금전거래가 이 측정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131쪽

예를 들어서, 1989년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엑슨 발데즈 기름 유출 사고의 청소와 소송 비용도 GDP상승에 기여했다. 어떤 사람이 암을 치료하거나 강도를 당할 때도, 창문을 여는 대신 에어컨을 켤 때마다, 혹은 걷기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마다 GDP는 상승한다. GDP에는 '유익한' 활동들뿐만 아니라 '유해한' 활동들도 포함된다. 오래된 숲의 나무들을 깨끗이 없애버려도, 그리고 범죄와 사회적 부패도 만약 그로 인해 누군가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간다면 성장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131쪽

하지만 성장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돈을 지불하지 않는 가사노동이나,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일, 자원봉사와 같이 돈이 개입되지 않는 활동들이다. 만약 우리의 복지를 그리고 우리의 좋은 삶을 오직 GDP에 의해서만 측정한다면, (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이) 가치 있는 많은 일들을 배제하는 것이며, 또한 (기름 유출과 같이) 우리 자신과 지구에 유해한 일들을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결정적으로 GDP는 자연자원의 고갈이나 공기 및 물의 오염 그리고 토양의 악화를 경제의 고유한 부분으로 계산에 넣지 않는다. -131쪽

우리가(일반 사람들이) 결정해야 하는 것은 어떤 사회와 지구를 원하는가다.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원하는가, 아니면 단지 운이 좋은 소수만을 위한 좋은 삶을 원하는가? -177쪽

북미의 중산층 그리스도인들이 검약이라는 전복적인 미덕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다. 이는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만물이-우리 인간과 지구 안의 이웃 그리고 지구 자체의 - 번성을 도움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았다면, 이를 거스르는 삶의 방식이 바로 죄다. 우리에게 고도의 소비적 생활양식은 죄받을 일이다. 실제로 그것은 악이다. 그런 생활방식은 부자를 더 부자로,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조직적 구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180쪽

죄와 악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 개념은 시대마다 번영의 기반을 침식하는 태도와 그와 동반하는 제도에 따라 변화한다. 우리에게 죄는 '나쁜' 행위를 하거나, 나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번성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방식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실행되고 있는 시장 자본주의를 가장 명백하고 분명한 죄의 형태로 보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 21세기 북미 중산층 미국인들에게 죄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다. 즉, 특권을 누리는 수백만 개인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부터 자라는 구조적 악과 조용히 공모하는 것이다. -1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