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로드 - 라이더를 유혹하는 북미 대륙과 하와이 7,000km
차백성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었다. 자전거의 중심을 잡아주시던 아빠의 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곡예하듯 비틀거리다 내리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를 몇 시간, 남은 건 손바닥과 무릎의 쓰라린 상처요 얼룩진 자존심이었다. 내 기필코 너를 타고야 말리라, 독기를 품고 매달린 끝에 겨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엔 마침내 도움의 손길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전해지는 그 짜릿함이란! 자전거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직 자전거가 서투르던 때에 큰 사고가 일어날 뻔한 아찔한 경험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달릴 때의 황홀한 기분은 잊을 수가 없어 어딜 가든 자전거와 함께 움직였었다. 물론 그 덕분에 집안의 단거리 뿐만 아니라 장거리 심부름까지 혼자 떠안아야 하는 험난한 세월이 시작되었지만.

기껏해야 동네 주위나 어슬렁거리는 어설픈 실력의 자전거 라이더인 나는 북미 대륙과 하와이를 합쳐 7,000km, 차로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광활한 북미 대륙을 두 바퀴의 자전거로 여행했다는 이야기에 그만 입을 쩌억 벌릴 수 밖에 없었다. 햇빛과 비,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페달을 움직이는 두 다리에 의존해야 하는 자전거 여행은 웬만한 용기와 체력이 아니고는 힘든 여행이다. 그러나 저자는 더 늙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품어왔던 꿈을 이루고자 남들보다 이른 퇴직을 하고 자전거와 함께 태평양을 건넜고, 자전거에 몸을 싣고 아메리카 여행을 시작했다. 그의 용기와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적지 않은 나이에 북미 자전거 여행에 도전한 차백성 씨의 고단하지만 짜릿한 여행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바로 <아메리카 로드>다.

한 번에 다녀온 여행기록일 거라는 나의 생각과 달리 <아메리카 로드>에는 모두 세 번의 여행에 대한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30일의 여정으로 달린 서부 해안길 여행,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인디언을 찾아 떠난 평원으로의 여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년 전 이민간 우리 선조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하와이 여행이다. 첫 북미 여행의 시작인 서부 해안길의 여행이 온전히 자전거에만 의지한 여행이라면, 인디언을 찾아 떠난 평원으로의 여행은 광활한 북미 대륙을 환경을 고려해 자동차와 자전거를 함께 병행한 여행이었다. 우리 선조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하와이에서는 자전거를 중심으로 하되 상황에 따라 버스를 이용하는 융통성을 발휘해 여행을 이어나간다.

책을 읽는 동안 30kg에 육박하는 짐을 자전거 앞뒤로 싣고 낯선 북미 대륙을 쉬지않고 달려가는 그의 여정의 고단함과 피로함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야영지에서 야생 동물에게 음식물을 도둑맞고, 무리한 일정으로 무릎이 아파오고, 간만의 만찬으로 배탈이 나고, 도로를 달리던 중 경찰차를 만나는 등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그의 여행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길을 나설 때마다 그를 반기는 황홀한 풍광들과 길에서 만난 자전거 라이더들의 격려와 낯선 여행자에게 건네는 현지인들의 따뜻한 배려, 타국에서 만난 동포들의 훈훈하고 넉넉한 인정 등은 지쳐가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가슴 뿌듯한 보람을 남겨 주었다.

자전거로 만나는 지역에 대해 저자는 해박한 지식으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중에서 처음 알게 된 내용도 꽤 많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만 그가 말하는 지역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세 개의 여행에 대한 단락마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그가 여행한 곳을 표시한 지도를 실어두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명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 못하는 터라 어디쯤을 언급하는지 헛갈리 때가 많았다. 나같은 독자들을 위해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작게나마 그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함께 보여주는 배려를 해주었다면 그의 자전거를 따가는 여행이 좀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서부 해안 여행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저자가 찍은 사진들을 위주로 실려있어 그곳의 풍경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평원 여행부터는 풍경 사진도 넉넉하게 실려있어 그에 대한 갈증은 조금 풀렸다. 

그러나 자전거로 달려간 여정과 그의 열정이 대단함은 알지만 정작 그것을 전달해주는 글은 전체적으로 단조롭고 심심했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곳을 거쳤고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정도에 그친 글들이 많았고, 여행지의 풍경이나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 등이 좀 더 깊고 풍성하게 다뤄지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그가 들려주는 해박한 지식들은 재미있었지만.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에 꿈을 이루기위해 먼 길을 달려온 도전 정신과 온갖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과의 약속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마지막 선배로서 자전거 여행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부록 부분은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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