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왕일민.유현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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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구경이 소원인 99세의 어머니를 위해 자전거수레로 3년 동안 중국 대륙을 종단한 74세 아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74세라는 나이는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자기 몸 추스리기도 슬슬 벅찬 시기로 접어드는 나이에 자전거로 어머니를 실은 수레를 끌고 중국 최북단 탑하에서 최남단 해남까지 다녀오다니. 선뜻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실화였고, 대단하다는 말 밖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왕일민 할아버지의 효심을 담은 여행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13억 중국인의 가슴을 울렸고, 그 이야기는 중국에 갔다가 왕일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삼고초려 끝에 왕일민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 집필 허락을 받았다는 유현민 님에 의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책이 바로 <어머니와 함께 한 900일간의 소풍>이다. 부모님께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했을 뿐인 자신의 행동이 특별한 일로 비춰지는 게 싫어 수많은 출간 제의를 물리쳤던 그가 한 한국인의 정성에 감탄해 책을 허락했다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밖에선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집에선 가족들 위하느라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늙으신 어머니. 한 평생 여행 한 번 못해보신 어머니가 세상구경 가자는 아들의 말에 설렘을 감추지 않으신다. 74세의 왕일민 옹은 서장(티베트)에 가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그런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탑하에서 티베트를 향한 무모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어머니를 태울 자전거 수레를 완성하고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오른 여행길, 어머니는 자전거 수레에 앉아 뚫린 창으로 세상과 마주하신다. 이 좋은 구경 못하고 죽었으면 어쩔 뻔 했냐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은 무거워져 오는 다리에 다시 힘을 낸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밟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자의 여행길은 그러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긴 여행을 앞두고 돈을 아껴야 하기에 어머니께 맛난 것을 마음껏 사드릴 수도 없었고, 잠자리 또한 노숙을 하기 일쑤였으며, 비라도 오는 날에는 그 비를 고스란히 다 맞으며 자전거를 밟아야 했다. 무엇보다 연로한 어머니가 불편한 여행길에 혹시 편찮으실까 항상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행길을 그 누구보다 즐거워하셨고, 아들이 해주는 초라한 음식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어주셨으며, 길가에 피어있는 꽃향기에 행복해 하셨고, 평생 처음 보는 바다를 마주하며 황홀해 하셨다. 어머니가 행복해하시니 아들은 그저 기쁠 뿐이였다. 

그러다 우연히 북경 방송국 기자의 눈에 띄어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모자(母子)의 특별한 여행은 세상에 알려졌고, 왕일민 옹의 가슴 울리는 효행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었다. 그들을 신기하게 보거나 무시하던 사람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거나 그의 효행을 칭찬했고, 도착하는 곳의 식당이나 호텔 등이 서로 대접하려고 아우성쳤다. 사람들의 호의는 고마웠으나 그들을 홍보에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엔 따뜻한 가슴으로 그들을 맞아주는 사람들이 더욱 많았다. 옛 고향땅이라는 이유로 방을 내어주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거나 길가에 쓰러진 모자 일행을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무료로 치료해준 이름 모를 사람들의 호의는 그들의 여행길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행내내 어머니를 먼저 살피는 왕일민 옹의 마음 씀씀이였다. 자전거 수레를 끄느라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가면서도 혹시 어머니가 불편하신 점은 없는지 살피고, 먹을거리 잠자고 쉬는 것까지 모든 것을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하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효란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 비싼 음식과 좋은 옷을 드린다고 해도 마음이 없다면 그건 올바른 효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 살피고 공양하는 것, 그것이 진짜 효도 아닐까. 어머니를 향한 왕일민 옹의 효가 바로 그러했다.

<어머니와 함께 한 900일간의 소풍>의 문체는 단순하고 평이하다. 긴장감 넘치는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들의 여행을 따라가는 평면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도 많지 않고 글자도 커 부담없이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외형적인 면만 보면 너무 쉽게 씌여진 글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살짝 든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은 할아버지의 효심과 진한 감동에 묻혀 아주 사소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책을 덮으면 그저 그의 지극한 효심만이 기억에 남는다.

'이 시대의 마지막 효자', '효자왕'으로 불리는 왕일민 할아버지. 진정한 효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준 그를 통해 감동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생전에 가보고 싶어하셨던 라싸에 한 줌의 재로 변한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길을 떠난 왕일민 옹이 어머니를 보내며 통곡하는 모습에서 그간 참았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그와 동시에 내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와 함께 한 900일간의 소풍>은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진심어린 효심을 통해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 당연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평가받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되는 일입니다.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효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불효인지는 잘 압니다. 그저 불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117쪽, 왕일민 할아버지의 인터뷰)






* 오탈자

- 176쪽, 181쪽을 비롯한 여러 곳) 이른여섯 → 일흔여섯 ..으로 고쳐야 옳다. 책의 전면에 '이른여섯'으로 표기되어 있다.

* 좀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 국립국어원에 문의했고, 아래와 같은 답변을 받았다.
→ 문의하신 ‘76세’는 ‘일흔여섯’으로 표기합니다. 받침 ‘ㅎ’ 뒤에 모음으로 시작된 어미나 접미사가 결합되는 경우에는 ‘낳은[나은], 쌓이다[싸이다]’와 같이 ‘ㅎ’을 발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발음의 경우와 ‘ㅎ’으로 시작되는 음절 표기를 혼동하여 'ㅎ'를 적지 않는 표기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흔’은 ‘ㅎ’을 꼭 표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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