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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평점 :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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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 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 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 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 원리이다.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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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다시 출판하게 된 선생님은 웃음이 쿡 났다지만 나는 죽음의 연기가 도사리는 문장들을 연말연시에 거쳐 읽고 있으니 뭔가 아이러니 하다가 결국엔 웃어버렸다. 심지어 연신 끌어안고 좋아했으니 다시 생각해도 웃을 일이 맞는 것 같다.
20쪽, 「산다는 이 일」만 몇 날 며칠, 몇 번이나 정독했는지 모르겠다. 한판 놀러 나온 삶을 향해 '될 대로 되라지', 던져주는 그 신명을 맞받아 힘을 얻어 괜신히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지만, 사실 그후로도 계속 어느 페이지에선 시간을 할애하며 머무르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내 발목을(손목인가) 붙드는 , 스스로 매이기를 원하는 문장들을 마주칠 때마다 바람에 일렁이는 촛불이 된듯한 기분이다.
꺼질듯 말듯한 몸뚱이의 눈앞엔 '죽음'이 자주 고개를 쳐들고 덩달아 '절망'이나 짙은 '고독'같은 것들도 한몫 거든다. 시리거나 씁쓰름하거나. 그것들을 그대로 응시하는 것이 퍽 괴로운 일일 수도 있으나 결국 삶과 맞닿아 있음을 눈치챈다. 하나의 끈으로,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한 순간부터 끝에서 끝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그렇게 웃다가도 울 수 있고, 울다가도 웃을 수 있는 것이 삶과 죽음의 공통된 맥락 아닌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겨울밤을 지새우고, 이 시대에 이토록 순도 높은 글을 다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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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서로 다른 형식들, 육체적 죽음 이전에 마음이 먼저 죽고, 마음이 먼저 죽는 그 형식들이 바로 절망, 고통, 아픔 등등 불행의 감정들이고,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죽음의 형식들을 마지막으로 물리적으로 완성시켜주는 게 육체적 죽음이라는 거 아닐까? 그 모든 죽음의 의식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나의 경우, 그것들은 공포로부터 왔던 것 같아. 세계에 대한 공포로부터. p160
🔖내 어머니는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으며, 조만간에 그녀가 살았던 한 문장 전체가 차례차례 지워져나갈 것이다. 그 길고 아, 그러나 너무도 너무도 짧고, 지루하고 지겹고 고달프고 안간힘 써애 했던 한 문장이, 쓰일 때보다 몇억 배 빠른 속도로 지워져 마침내 텅 빈 백지만 남으리라. 그뒤엔 이윽고 그 백지마저 없어져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살았던 문장의 문장 없는 마침표 하나, 지구상의 외로운 표적 하나, 그녀의 무덤 하나만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그 어떠한 동사도 이제는 모두 과거형을 취하리라.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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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서포터즈 '신난다'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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